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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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평생 숙제 같은 것. 숙제라고 하면 해결해야 할 것이란 느낌이 강하지만, 해결해야 한다기보다 의문스럽고 이해하기 힘들어서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픈 문제랄까. 사건을 끊임없이 되돌려 보면서 스스로 납득할만한 설명을 찾는 것. 가정폭력 아니, ‘아내 폭력은 내게 그런 문제다.

 

아주 친밀한 폭력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또하나의문화, 2001)의 개정판이다. 그 사실을 모르고 구입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는 예전에 구입해 놓고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얼마 전(불과 1~2개월 전) 중고로 팔아버렸는데, 같은 책을 제목이 바뀐 줄 모르고 산 것이다. 이건 읽어야 할 책인가 보다 싶어서 펼쳐 들었다. 읽는 내내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폭력 남편들의 인터뷰. 워딩 하나하나가 어쩜 그렇게 우리 아버지가 하는 말 같지? 설마 우리 아버지도 인터뷰에 참여했던 건가 의심할 정도로 익숙하고, 한 걸음 떨어져 글로 읽는데도 직접 듣고 있는 것처럼 거북했다. 그 말들을 숱하게 들으며 자랐지만 내겐 그걸 분석할 능력이 없었으니(있었다 해도 크게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진 않지만) 안타깝다.

 

나는 아내 폭력이 다반사로 이뤄지는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의(지금도 결혼 전의) ‘가족’, ‘가정’, ‘을 생각하면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이 거의 없다. 숨기고 싶고 혼자(우리 가족만이)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 우울한가? 다시 되짚어 봐도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선택된 기억일 뿐인가? 내게 집이란 언제나 도망가고 싶은 곳, 기가 빠지는(‘기가 빨리는’) 느낌, 무기력한 곳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적도 많고, 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 적도 많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데에 죄책감을 느낀 적도 많다. 부모님의 불화,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집에서 자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무엇이?),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하찮게, 가엾게 여길까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이 이혼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살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아버지는 왜 저럴까?’ 생각했다. 알고 싶었다. 이해하게 된다면 아버지를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더불어 어머니의 삶도 이해하고 싶었다. 나의 삶, 나 자신도 설명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책에는 내가 했던 생각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우리 집은 왜 이 모양일까, 엄마는 왜 저럴까, 엄마가 참으면 안 되나, 엄마만 가만히있으면 집이 평화롭지 않을까. 아빠는 왜 저렇게 화를 낼까,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저런 방법 밖에 없는 걸까, 아빠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부모님은 왜 결혼했을까, 둘은 왜 이혼하지 않을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가장의 권위라는 게 뭘까, 부모님 둘 다 일하는데 왜 엄마만 집안일을 하는 건가, ‘여자는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다른 집도 이런 모습일까. 그리고 나도’ ‘행복한 가정에 살고 싶다는 생각. 차츰 가정이란 게 꼭 필요한가, 결혼을 꼭 해야 하나로 바뀌었지만. 나는 내가 ‘N포 세대여서가 아니라 행복한 가정에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 엄마처럼 산다는 것, 행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행복한 가정이란 뭔가? 구타(폭력)만 없으면 행복한가? 꼭 제도권의 결혼 제도에 편입되어야 행복할까? 부부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그럼에도 나는 결혼을 함으로써 한 가정에서 또 다른 가정으로 도망을 온 셈이다(내게는 결혼이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의 탈출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세상에, 저런 경우도 있단 말이야?’라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아야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책 내용에 놀라는 사람이라면 평화로운가정을 경험했을 것이고(적어도 아내 폭력은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가정에 대해서, 가족 제도에 대해서, 폭력에 대해서, 여성에 대해서, 가정 내 권력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책을 통해 저자의 분석을 따라 가다 보니 한껏 차분하게 내 기억을 더듬을 수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기가 어려웠다. 내 경험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나는 분노와 좌절, 무기력, 슬픔, 외로움, 곤란함 따위를 느껴야 했다. 지금 내 생활도 돌이켜본다. 나는 행복한가, 나는 과연 가부장제 가족 제도와 얼마만큼 가깝거나 먼 것인가, 내가 여자라서감당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게 당연한가, 당연하지 않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 폭력은 비정상적인 사람(알코올중독, 사회 부적응, 분노조절장애, 우울, 실직)의 일탈적인 행동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아내 폭력이 가부장제 가족 제도의 산물이라 본다. 가부장제 가족 제도를 유지하는 한 비정상적인 사람정상으로 돌리려는 노력은 ‘아내 폭력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 ‘아내 폭력자체가 가부장제 가족 제도를 지탱하고 있는 하나의 축이기 때문이다. ‘아내 폭력은 왜 잘못되었는가? 그것이 가족 구성원 모두를 힘들게 하고, 가족 해체의 원인이 되기 때문인가? ‘아내 폭력은 예외적인(비정상적인) 상황일 뿐인가? 이 모든 질문은 가정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상적인가정은 행복하고 바람직하다는 환상을 부추긴다.

 

가부장제 가족 제도는 규범적인 성 역할을 중심으로 돌아갈 뿐이다. 남자는 어떠해야 하고,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것.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머니, 아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 가장은 어떠해야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어떠해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이 제대로돌아갈 때 가정은 화목하고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서 제 기능을 한다는 거다. 그림이 그려진다. 내게는 무척 익숙한 풍경, ‘여자만 참으면 만사가 평화로운상태.

 

저자는 여기에 질문을 던진다. 나도 함께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정답으로 주어졌던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우리가 평화, 화목, 정상(正常) 따위를 말할 때는 되물어야 한다. 누구의, 누구를 위한 평화와 화목, 정상인가. 모두에게 평화로운 상태가 과연 있기나 한가. 그리고 부모님이, 특히 아버지가 왜 그런 언행을 일삼았는지 이해가 된다. 아버지의 언행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는 가부장제 가족 제도에서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뜻에서다.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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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음 2016-11-03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이 좀더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네요. 솔직한 글 잘 읽었습니다

cobomi 2016-11-05 23: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6-11-2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꼭 사서 읽어볼게요. 불끈!!

cobomi 2016-11-27 07:55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리뷰가 벌써 기다려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