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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류동수 옮김 / 양철북 / 2016년 9월
평점 :
올해 초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5)를 읽고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의욕에 불타올라 갖고 있던 책 800여 권, 책장 두 개, 식기류의 절반 이상, 조리도구 절반 이상, 가전제품 몇 가지, 문구류의 절반 이상, 안 듣는 음반, 안 입는 옷, 오래 되고 낡은 신발, 초등학교 때부터 써서 모아온 일기장 등을 처분했다. 내가 이렇게 부자였다니!
가장 덩치가 크고 탈이 많았던 물건은 소파였다. 남편과의 협상이 필요했다. 결혼 준비를 하며 "나는 TV 잘 안 보니까 그건 없어도 된다"던 남편이었으나(그래서 사지 않았는데 선물로 받았다), 내가 TV를 처분하겠다고 선언하자 크게 반발했다. 지난 5년 동안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설득하고 협박해도 TV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 그렇다면 소파라도 처분하겠다고 하니 TV와 소파는 세트 상품이라나. 어이가 없었다. 당시 나는 '심플 라이프'에 상당히 꽂혀 있었고, TV와 소파 둘 다 나의 심플한 삶을 방해하는 짐짝으로 보였다. 여러 날을 협상한 끝에 우리 부부는 소파를 처분하기로 합의했다.
일사천리로 소파를 처분한 후 한동안 내 기분은 최고였다. 환해진 거실을 보니 집이 몇 평은 더 넓어 보였다. 거실에 놓여 있던 TV도 골방으로 옮기고, 남편에게 '당신만의 방'이라며 맘껏 TV를 보라고 선심 쓰는 척했다. TV까지 사라진 거실은 휑뎅그렁한 나머지 목소리마저 울릴 지경이었다. 그래, 이게 심플 라이프지!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살기로 한 결심 자체를 후회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몇 가지 선택들을 후회했는데, 이를테면 앉아서 쉴 곳이 마땅찮아졌다는 사실(바닥에 주저앉을 때마다 어쩐지 슬프다)... 처분한 책 대여섯 권을 다시 구입했고, 심지어 그 사이 품절된 책도 있었다는 것... 기분에 휩싸여 성급하게 행동한 탓이다.
물론 '심플 라이프'를 향한 내 실천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매우 느리게 진행중이다. 그 사이 읽게 된 〈우리는 플라스틱 없이 살기로 했다〉는 언뜻 '심플 라이프'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내 생각에 둘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플라스틱 없이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는 가족의 이야기에서 '소비를 줄이는 것이 곧 환경보호'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플라스틱 없이 사는 게 가능해?'라고 묻기 전에 방향을 조금 바꾸는 것이다. 플라스틱만이 환경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과생산, 과소비, 과폐기(?) 아닌가. 필요도 없는 걸 마치 꼭 필요한 것처럼 여겨서 사고, 버리는 것. 물건이 나에게, 나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이를테면 편리함)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도 여유(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심리적...)는 별로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 생활방식에 있다.
또 하나. 저자는 상품 포장이 지나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는 포장 뜯다가 열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그걸 처리하느라 받은 열로는 물도 끓일 수 있다. 식료품의 경우에 '장기 보존'이 꼭 필요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깨끗해 보이는 것일수록(손질 과정이 더 많은 상품일수록) 뭔가 덜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찜찜하다. 꼭 그렇게까지 포장을 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까? 그렇게 해야 더 잘 팔리는 건가? 왜 더 잘 팔리는 거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플라스틱 없이 살기'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프로젝트를 다루는데도, 책은 시종일관 유쾌하며 술술 읽힌다. 번역가의 솜씨에 감탄한 대목이 여럿 있었다. 낄낄거리며 읽었지만 머릿속 한켠에서는 '나는 어떤 실천을 하면 좋을까'를 계속 생각했다. 결론은 '심플 라이프'지만, 기왕이면 플라스틱을 더 줄이는 걸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