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죽었는가. 한때 문화의 맹주였던 소설이 통 팔리지 않는다. 영화 한 편에 1천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들 동안 소설책은 1만부 이상 팔리는 작품을 찾기 어렵다. 웬만한 신간소설은 대대적 홍보에도 불구하고 초판 3,000부를 넘기기 힘들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한국소설의 위치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6월14일 집계한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30위 안에 든 한국소설은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12위)과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25위)뿐이다. 교보문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10위, ‘아내가 결혼했다’가 23위에 랭크됐을 뿐이다. 오히려 외국소설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의 제작진이 선택한 책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비롯해 ‘다빈치 코드 1, 2’,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이 영화 개봉에 힘입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이를 두고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작가들의 역량 부족부터,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란 분석까지 다양한 진단들이 쏟아져 나온다. 2006년, 지금의 한국소설은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 소설의 회생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소설은 분명 위기에 서 있다. 지난해 출판 물량 중에서 한국소설이 차지한 비율은 5%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을 찾는 독자가 줄고 있다. 지난해에는 문화예술위원회가 복권기금으로 마련한 돈으로 ‘힘내라, 한국문학’이라는 문학회생 프로그램도 시행했다. 우리 소설이 벼랑끝에 몰렸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소설이 팔리지 않는 것은 맞지만 소설의 위기까지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정확히 바로잡자면 ‘독서의 위기’라고 말하는 게 타당하다. 즉, 책 읽는 사람의 숫자가 줄었다. 영화의 인기가 높고 24시간 TV방송이 끊이지 않으며 인터넷을 즐기는 세상이다.

작가 김연수씨는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무용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렸다”면서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출판산업 또는 마케팅 측면에서의 위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소설의 판매 부수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소설의 창작 가치나 문학성까지 위협받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문학과지성사 채호기 대표는 “시장에서의 위기가 창작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면서 “시대가 변하면서 문학의 역할은 더 첨예해지고 날카로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설의 판매 부진은 우리나라만의 상황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서평란을 픽션보다는 논픽션에 주력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독자들이 지식이나 교양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세상은 소설보다 한층 재밌다. 정보와 기술의 발달에 따라 사회 자체가 박진감 있게 변화한다. 세계의 변화 자체가 허구보다 더 짜릿하기에 굳이 소설을 찾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흡입력 강하고 재미있는 소설은 여전히 많다.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새로운 시도들이 많아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좋은 소설이 여전히 문예지 등을 통해서 대량 생산되고 있다”면서 “문제는 독자의 수준이 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작가의 역량이 모자란 게 아니라 독자들의 수준이 예전같지 않아 좋은 소설을 찾아 읽지 못하는 게 위기론의 진실이란 얘기다. 실제로 인터넷, 영화 등의 뉴미디어에 익숙해진 10~20대는 소설을 외면한다. 대학의 문예창작학과나 국문학과 학생들도 제대로 된 소설을 찾아 읽지 않는다는 게 교수들의 전언이다.

소설은 모든 문화 콘텐츠의 출발점이다. 소설을 읽지 않으면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자고 얘기하는 것은 코미디다. 기초과학의 토대가 부실한 상황에서 첨단공학을 육성하자고 떠드는 것과 같다. 실제로 ‘해리포터’ 등을 비롯, 외국의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은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이렇듯 문화의 중심, 책읽기의 기본이 되는 소설이 왜 점점 더 변방으로 내쫓기고 있는가.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도정일 대표는 “문학이란 인간을 형성시키는 가장 요긴한 절차이지만 교육당국은 이를 망각하고 있다”면서 “중·고등학교에서부터 독서습관이 망가져 독서문화 자체와 새로운 독자층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입시위주의 교육이 문제란 얘기다.

한국소설이 쫓겨난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일본소설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팔려나가는 일본소설의 문학적 가치가 우리 소설보다 높은 것은 결코 아니다. 하응백씨는 “지금 언급되고 있는 일본 소설은 쉽고 편하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라면서 “이 소설들의 문학적 가치는 우리보다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정과리 교수는 “지금 대중이 손에 들고 있는 일본 소설은 일본의 전통적인 소설이나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같은 삶의 성찰이 녹아 있는 문학이 결코 아니다”라면서 “감각적 소비를 위한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로 대표되는 ‘잘 팔리는’ 일본소설에는 자본주의의 소비 패턴이 일상적으로 녹아있다. 대중의 소비적 취향을 만족시켜준다. 그래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무라키미 하루키 이후의 일본 문학을 순문학의 상실로 여기면서 못마땅해 하고 있다.











일본소설과 함께 급부상한 것이 ‘판타지’라고 부르는 소설이다. 하지만 문단(文壇)은 이를 철저히 무시한다.(대부분의 판타지 작가들도 순수문학을 동경하지 않는다.) 검유혼의 ‘비뢰도’, 전동조의 ‘묵향’ 등 시리즈 누적 1백만권 가까이 팔린 작품이 많지만 평론가들은 이것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본격문학이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대중의 욕구를 채워줬다는 점을 애써 못본 척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문학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제대로 펼칠 계기를 출판계와 작가가 만들어가는 게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소설가 김연수씨는 “출판계에서는 작가에게 인기있는 외국소설을 예로 들면서 험한 세상에 마음을 달래줄 코엘료 유(類)의 소설쓰기를 강요한다”면서 “소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지 못하고 출판사가 요구하는 소설을 생산해낸다면 이미 소설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글 박재현·사진 정지윤기자〉 경향신문 2006-06-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달 말 나는 지방의 한 도시에서 도서정가제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를 불러준 사람들은 어린이도서연구회 산하 '동화 읽는 어른'의 그 지방 모임이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우리 아동출판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축이다. 자식들에게 좋은 책만을 골라 읽히려는 그들의 열의가 좋은 책을 펴내는 출판사와 이를 유통시키는 전문서점의 수를 늘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근에는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쾌거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흐름을 부정적 방향으로 확 꺾은 것은 '할인경쟁'이었다. 대형할인점과 인터넷서점,홈쇼핑 등에서 '대한민국 최저가 할인경쟁'이 날로 도를 더해가자 대부분의 아동전문 소형출판사와 전문서점은 날개가 꺾여버렸다.

우리 아동출판이 한창 활기를 띨 때에 그림책과 창작동화는 각기 시장의 3분의 1 정도를 점유할 정도로 '강자'였다. 당연히 우리 작가들이 펴낸 화제작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약 5년간의 본격적인 할인경쟁 결과는 어떤가. 이제 그림책의 실제 유통량 중 95%가 외국서적이 차지하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존 버닝햄 등 '검증'된 외국 작가 그림책은 출간될 때마다 늘 상한가를 치지만 국내 작가 신간은 언제나 찬밥 신세다.

앙증맞은 캐릭터,입체와 평면의 독특한 조화,구름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멋진 판타지를 만들어 낸 백희나의 '구름빵'이 평단과 시장에서 동시에 좋은 평가를 얻은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에 속한다. 베스트셀러에 간간이 올라 있는 국내 그림책의 출간일자는 10년이 지난 것이 대부분이다.

창작동화 분야 또한 신진작가의 새 책이 성공적인 시장진입을 하기란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것보다 힘들다. 물론 일부 평자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해를 삼킨 아이들'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 '나의 아름다운 늪' '은어의 강' '내 사랑 사북' 등 신진작가의 매혹적 작품을 예로 들며 몇 년 안에 또 한번의 전성기를 기대해도 좋을 정도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실제 현실로 등장하려면 하루빨리 완전 도서정가제가 확립돼야 할 것이다. 그 지방도시 강의 후 쏟아진 애로사항은 신문의 북섹션이나 인터넷서점을 통해 신간소식을 접하더라도 직접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책을 직접 넘겨보며 평가하는 감식안을 발휘하려면 무조건 서울의 대형서점에 들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신간은 늘 찬밥 신세일 것이어서 유망작가 출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날 강의와 토론에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출판사와 서점 같은 이해당사자들이 책의 할인율을 놓고 밀고 당기는 행위를 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곤란하며,이제 소비자가 앞장서서 책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살아 숨쉬는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부 출판사는 한 권으로도 족할 것을 10권으로 늘리거나 할인을 전제로 정가를 올려왔다. 또 늘 팔리는 책을 추구하다 보니 비슷비슷한 책만을 펴내 시장의 악화만을 불러왔다. 이 같은 현실을 방치한다면 책 읽는 사람의 삶은 늘 팍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한 소도시의 일부 시민이 나선다고 '추악'한 현실이 당장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점차 거세질 때 우리 책문화도 분명 바람직한 방향으로 물꼬를 틀 것은 분명할 게다. 그날 모임에서 내가 우리 책문화의 실낱 같은 희망이나마 읽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기사게재 : <국민일보> 2006.6.21출처: 한국 출판 마케팅 연구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일보 2006-07-01 00:46]    7~8월엔 이 책입니다

[조선일보 신용관기자]

여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여름 매출이 봄·가을의 두 배쯤 됩니다. 출판계에는 “여름 시장은 소설 시장이다”는 말도 있지요. 한국 독자들은 휴가철에 소설을 비롯한 문학서적을 즐겨 찾습니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연도별 7·8월의 종합 베스트셀러 20위권에는 문학작품이 절반 이상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 12종, 2004년 10종, 2003년 13종으로, 매년 50% 이상을 점유하며 여름 시장의 절대 강자로 솟아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여름철 종합 1위는 TV 드라마에 등장해 인기를 끈 미하엘 엔데의 ‘모모’(2005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2004),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2003) 등이었습니다. 2005년 여름의 20위 안에는 문학 12종(소설 6종·에세이 5종·시 1종) 외에 경제 3종, 아동만화 2종 등이 올랐습니다. 또 ‘연금술사’, ‘오 자히르’,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 코엘료의 소설이 3종이나 한꺼번에 들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작년 7·8월엔 국내 최대 인터넷서점인 예스24 집계에서도 ‘어둠의 저편’(무라카미 하루키), ‘유림’(최인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알랭 드 보통) 등 국내외 유명 소설가의 책들이 ‘베스트셀러 20’에 들었지요.



 

 



이런 추세는 올 여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호 교보문고 홍보팀장은 “최근 꾸준히 많이 팔리는 소설가 공지영의 작품과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같은 영화화된 원작소설이 강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삼한지’(김정산), ‘정약용 살인사건’(김상현) 등을 앞세워 대중적 역사소설도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란 예측도 있습니다.











해외 영미권의 여름시장은 전통적으로 추리물이 강합니다. 작년 여름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조앤 롤링) 이후 올해엔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구용 임프리마코리아 상무는 “지난해 4개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제임스 패터슨의 추리소설을 비롯, 예년과 다름 없이 서스펜스·호러 소설이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여름철에 로맨스·연애소설이 강세입니다. 또 대표적 출판사들이 ‘여름에 읽을 만한 문고 100권’을 선정, 독후 감상문 모집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섭니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났던 8월 즈음엔 야스쿠니 신사 관련서 등 역사서가 잘 팔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용관기자 qq@chosun.com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마이뉴스 2006-06-16 장익준 기자

미국 8개 도시에서 개봉했다"
"2주 연속 박스 오피스 50위권을 지켰다"
"미국 주요 언론들이 칭찬했다"

영화 <태풍>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는 기사를 봤을 것이다. 아마도 CJ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낸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했겠지만 어쨌든 <태풍>의 할리우드 개봉 성과를 알리는 기사들도 지면을 장식했다.

<태풍>은 CJ엔터테인먼트가 의욕적으로 나선 탓에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미국 현지에서 대규모 언론 시사회를 가졌다. 또한 적지 않은 홍보비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풍>은 150억원이라는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를 들였지만 국내 관객 동원 420만 명으로 흥행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영화다. 기대를 걸었던 일본에서도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미국에서라도 선전한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6월16일자 <중앙일보>는 LA에서 직접 <태풍>을 본 주정환 기자의 소감을 실었다. LA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 '래믈'에서 영화를 보았는데, 관객은 20명 남짓했고 그것도 주로 동포 관객들이 있었다고 전하면서 미국 내 흥행순위도 '47위에 그쳤다'며 비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기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일본 출장길에 당시 일본에서 대박을 터트렸다는 <쉬리>(일본 발음으론 '슈리')를 보러 갔는데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작은 영화관이었다. 알고 보니 여러 개봉관은 개봉 몇 주 차만 이뤄졌고 이후엔 작은 상영관으로 옮겨 상영 기록을 갱신하는데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미국선 '자막' 있는 영화는 흥행 어려워

<태풍>이나 <쉬리>의 제작사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나라마다 배급 환경에는 차이가 있고 시장 규모나 특성도 다르다. 상대적으로 선진국이라 할 나라에 배급할 때는 그 차이가 더 커진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47위에 그쳤다'는 말도 맞는 말이고 '50위권을 2주나 지키니 잘했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기본이지만 미국에서는 자막을 거는 영화는 흥행이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차라리 영어로 더빙을 하는 쪽이 유리하다고들 한다. <태풍>이 자막 처리를 했는지 더빙을 했는지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지만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할 동양인들이 단체로 나오는, 그것도 자막으로 봐야 하는 영화라면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흥행하기엔 이미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큰 히트를 쳤을 것 같은 오우삼 감독 영화들도 미국에 컬트 팬들이야 많겠지만 대중적인 흥행 면에서 보면 기대 이하다. 주로 예술영화 전용관들을 통해 배급되었는데 다른 영화와 묶어서 상영된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할리우드가 아닌 영화들이 미국에서 팔려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얘기.

CJ엔터테인먼트가 미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입장에서, 밑지더라도 경험을 쌓고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사업적인 판단이지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이 경우 공격 목표가 미국 시장이 되어야지 그걸 가져와서 국내에 환상을 퍼트리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미국시장 노린다면, 좀 더 신중해야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만약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미국에서 팔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잘 팔리고 미국에서도 잘 팔릴 수 있는 문화 상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특히 다른 문화 상품에 비해 영화라면 더 그렇다. 왜냐하면 인종이나 국적성이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착각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재미있게 본 것은 남들도 재미있게 보겠지 하는 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아카데미 외국어상을 노린다고 했을 때 우리에게 이 영화는 흥행 대작이요, 감동의 화제작이지만 할리우드에서 이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기법을 조금 배운 저예산 액션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시장을 노린다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일단 내수용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경우 대중적인 흥행작으로 배급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내에서 제작비를 회수하고 수출은 일종의 예술영화 경로로 욕심 부리지 말고 파는 쪽으로 가야 한다.

만약 처음부터 수출용을 노린다면 미국 어느 시장을 공략할 것인가를 고려해서 접근해야 한다. 제작비 대비 산출만 좋다면 저예산 액션영화도 마다할 것은 아니고 극장이 아니라 케이블, 위성만 돌아도 알찬 장사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동양이라는 이미지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시침 뚝 떼고 미국산처럼 위장할 것인가 선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좀 급이 있는 시장을 노린다면 미국에서 제작되는 영화에 제작 투자 같은 방식으로 들어가면서 한국인 배우나 감독을 들이대는 작전도 가능하고 아니면 한국에서 제작하더라도 미국 사람이 등장하고 영어로 대사를 치는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다. 찾아보면 한국과 미국을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들은 얼마든지 있다.

다시 <쉬리>로 돌아와 보자. 일본은 그래도 정서가 통하는 쪽이고 당시 북한 관련 아이템이 주목받던 때라 <쉬리>는 나름 인기를 끌었다. <쉬리>를 보고 나서 일본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최대 인기는 단연 최민식씨가 연기했던 캐릭터였다. 일본인들 심정에는 자기네들 사무라이처럼 비장하게 목숨을 바치는 캐릭터가 마음에 닿았다 보다. 김윤진씨도 단연 인기였다. 한국 사람치곤 선이 굵은 그녀를 두고 '눈 크고 시원시원한 게 너무 멋지다' 난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제일 큰 충격은 한석규씨에게서 왔다. '그런데 왜 그 눈 작은 남자가 주인공이에요? 한국에서 유명해요? 미남은 아니던데...'(헉!)  우리에게 한석규씨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대(당시) 최고 인기 배우이고 미남 배우였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일본인들에겐 낯선 한국인이었을 뿐이었다. 당시 일본에 뭔가를 팔아보려고 애쓰던 기자는 한석규씨 덕분에 내수용과 수출용의 차이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었지만.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에서 사실 10위권 밖은 규모나 영향력에서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50위권이라도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을 이미 상황 끝인 영화를 되살리려는 소재로 쓰기보다는 앞으로 할리우드 공략을 위한 재료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rine 2006-09-2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석규씨가 연기는 잘 해도 미남은 아니죠^^
 

'태풍'은 정말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까요? 날씨 얘기가 아니라 이달 초 미국에서 야심차게 개봉한 영화 '태풍'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한국 영화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대규모 언론 홍보 행사를 열었고, 국내 영화배급 1위인 CJ엔터테인먼트가 직접 미국 시장에 뛰어드는 첫 작품이라 나름대로 기대가 컸지요.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토요일인 10일 오후 로스앤젤레스(LA) 현지에서 '태풍'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가까운 '래믈'이라는 예술영화 전용관인데 LA 시내에선 유일한 '태풍' 상영관이었지요. 오후 4시 50분에 시작하는 2회를 봤는데 관객은 불과 20명 남짓이었습니다. 거의 재미동포인 것 같았고, 순수 외국인은 "쿵후 영화인 줄 잘못 알고 왔다"는 브라이언 피츠(35)와 그 부인.아들뿐이더군요. 3회에도 관객이 20명 정도 들었는데 모두 동포로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어도 LA에선 동포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을 보니 '반미 코드'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장면은 상당부분 잘려나갔습니다. 탈북자 출신 해적 씬(장동건)이 핵 폐기물을 풍선에 달아 한반도로 날려 보내려고 하는 영화 후반부에서 미국 정보기관 책임자가 한국 정부에 전화를 거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미국은 "한국 내 군사작전권은 한미연합사에 있으니 한국 정부는 당장 손을 떼라"고 압력을 넣지만 미국 관객은 이 장면을 볼 수 없습니다.

해군 장교 세종(이정재)이 연합사의 통제를 무시하고 사관학교 동기들을 설득해 출동하는 장면도 빠졌습니다. 극장 안내문을 보니 상영시간은 105분으로 국내 개봉판(124분)에 비해 20분 가까이 줄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장면이 삭제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유일한 외국인 관객이던 피츠는 "액션은 그런대로 볼 만했지만 복잡한 정치적인 관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현지 언론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태풍'의 정서는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통하는 생생함이 있다"고 좋게 봤지만 시애틀 포스트는 "줄거리 연결은 엉성하고 액션은 넘친다"고 지적했습니다. 주간지 이스트베이 익스프레스는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 흥행순위는 첫주 41위, 둘째 주 47위에 그쳤습니다.

국내 관객 420만 명을 동원한, 제작비 150억원의 대작인 '태풍'이 이 정도라면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에 제대로 명함을 내밀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LA=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중앙일보 2006-06-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