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정말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까요? 날씨 얘기가 아니라 이달 초 미국에서 야심차게 개봉한 영화 '태풍'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한국 영화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대규모 언론 홍보 행사를 열었고, 국내 영화배급 1위인 CJ엔터테인먼트가 직접 미국 시장에 뛰어드는 첫 작품이라 나름대로 기대가 컸지요. 그러나 현재까지 드러난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토요일인 10일 오후 로스앤젤레스(LA) 현지에서 '태풍'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가까운 '래믈'이라는 예술영화 전용관인데 LA 시내에선 유일한 '태풍' 상영관이었지요. 오후 4시 50분에 시작하는 2회를 봤는데 관객은 불과 20명 남짓이었습니다. 거의 재미동포인 것 같았고, 순수 외국인은 "쿵후 영화인 줄 잘못 알고 왔다"는 브라이언 피츠(35)와 그 부인.아들뿐이더군요. 3회에도 관객이 20명 정도 들었는데 모두 동포로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어도 LA에선 동포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을 보니 '반미 코드'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장면은 상당부분 잘려나갔습니다. 탈북자 출신 해적 씬(장동건)이 핵 폐기물을 풍선에 달아 한반도로 날려 보내려고 하는 영화 후반부에서 미국 정보기관 책임자가 한국 정부에 전화를 거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미국은 "한국 내 군사작전권은 한미연합사에 있으니 한국 정부는 당장 손을 떼라"고 압력을 넣지만 미국 관객은 이 장면을 볼 수 없습니다.

해군 장교 세종(이정재)이 연합사의 통제를 무시하고 사관학교 동기들을 설득해 출동하는 장면도 빠졌습니다. 극장 안내문을 보니 상영시간은 105분으로 국내 개봉판(124분)에 비해 20분 가까이 줄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장면이 삭제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유일한 외국인 관객이던 피츠는 "액션은 그런대로 볼 만했지만 복잡한 정치적인 관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현지 언론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태풍'의 정서는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통하는 생생함이 있다"고 좋게 봤지만 시애틀 포스트는 "줄거리 연결은 엉성하고 액션은 넘친다"고 지적했습니다. 주간지 이스트베이 익스프레스는 "찻잔 속의 '태풍'"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미국 내 흥행순위는 첫주 41위, 둘째 주 47위에 그쳤습니다.

국내 관객 420만 명을 동원한, 제작비 150억원의 대작인 '태풍'이 이 정도라면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에 제대로 명함을 내밀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LA=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중앙일보 2006-06-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