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6-06-16 장익준 기자

미국 8개 도시에서 개봉했다"
"2주 연속 박스 오피스 50위권을 지켰다"
"미국 주요 언론들이 칭찬했다"

영화 <태풍>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는 기사를 봤을 것이다. 아마도 CJ엔터테인먼트에서 보낸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했겠지만 어쨌든 <태풍>의 할리우드 개봉 성과를 알리는 기사들도 지면을 장식했다.

<태풍>은 CJ엔터테인먼트가 의욕적으로 나선 탓에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미국 현지에서 대규모 언론 시사회를 가졌다. 또한 적지 않은 홍보비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풍>은 150억원이라는 한국영화 최대 제작비를 들였지만 국내 관객 동원 420만 명으로 흥행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영화다. 기대를 걸었던 일본에서도 큰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미국에서라도 선전한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6월16일자 <중앙일보>는 LA에서 직접 <태풍>을 본 주정환 기자의 소감을 실었다. LA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 '래믈'에서 영화를 보았는데, 관객은 20명 남짓했고 그것도 주로 동포 관객들이 있었다고 전하면서 미국 내 흥행순위도 '47위에 그쳤다'며 비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기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일본 출장길에 당시 일본에서 대박을 터트렸다는 <쉬리>(일본 발음으론 '슈리')를 보러 갔는데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작은 영화관이었다. 알고 보니 여러 개봉관은 개봉 몇 주 차만 이뤄졌고 이후엔 작은 상영관으로 옮겨 상영 기록을 갱신하는데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미국선 '자막' 있는 영화는 흥행 어려워

<태풍>이나 <쉬리>의 제작사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나라마다 배급 환경에는 차이가 있고 시장 규모나 특성도 다르다. 상대적으로 선진국이라 할 나라에 배급할 때는 그 차이가 더 커진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47위에 그쳤다'는 말도 맞는 말이고 '50위권을 2주나 지키니 잘했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기본이지만 미국에서는 자막을 거는 영화는 흥행이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차라리 영어로 더빙을 하는 쪽이 유리하다고들 한다. <태풍>이 자막 처리를 했는지 더빙을 했는지는 정보가 정확하지 않지만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할 동양인들이 단체로 나오는, 그것도 자막으로 봐야 하는 영화라면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흥행하기엔 이미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큰 히트를 쳤을 것 같은 오우삼 감독 영화들도 미국에 컬트 팬들이야 많겠지만 대중적인 흥행 면에서 보면 기대 이하다. 주로 예술영화 전용관들을 통해 배급되었는데 다른 영화와 묶어서 상영된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할리우드가 아닌 영화들이 미국에서 팔려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얘기.

CJ엔터테인먼트가 미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입장에서, 밑지더라도 경험을 쌓고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사업적인 판단이지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이 경우 공격 목표가 미국 시장이 되어야지 그걸 가져와서 국내에 환상을 퍼트리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미국시장 노린다면, 좀 더 신중해야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만약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미국에서 팔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잘 팔리고 미국에서도 잘 팔릴 수 있는 문화 상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특히 다른 문화 상품에 비해 영화라면 더 그렇다. 왜냐하면 인종이나 국적성이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착각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재미있게 본 것은 남들도 재미있게 보겠지 하는 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아카데미 외국어상을 노린다고 했을 때 우리에게 이 영화는 흥행 대작이요, 감동의 화제작이지만 할리우드에서 이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기법을 조금 배운 저예산 액션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시장을 노린다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일단 내수용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경우 대중적인 흥행작으로 배급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내에서 제작비를 회수하고 수출은 일종의 예술영화 경로로 욕심 부리지 말고 파는 쪽으로 가야 한다.

만약 처음부터 수출용을 노린다면 미국 어느 시장을 공략할 것인가를 고려해서 접근해야 한다. 제작비 대비 산출만 좋다면 저예산 액션영화도 마다할 것은 아니고 극장이 아니라 케이블, 위성만 돌아도 알찬 장사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동양이라는 이미지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시침 뚝 떼고 미국산처럼 위장할 것인가 선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좀 급이 있는 시장을 노린다면 미국에서 제작되는 영화에 제작 투자 같은 방식으로 들어가면서 한국인 배우나 감독을 들이대는 작전도 가능하고 아니면 한국에서 제작하더라도 미국 사람이 등장하고 영어로 대사를 치는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다. 찾아보면 한국과 미국을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들은 얼마든지 있다.

다시 <쉬리>로 돌아와 보자. 일본은 그래도 정서가 통하는 쪽이고 당시 북한 관련 아이템이 주목받던 때라 <쉬리>는 나름 인기를 끌었다. <쉬리>를 보고 나서 일본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최대 인기는 단연 최민식씨가 연기했던 캐릭터였다. 일본인들 심정에는 자기네들 사무라이처럼 비장하게 목숨을 바치는 캐릭터가 마음에 닿았다 보다. 김윤진씨도 단연 인기였다. 한국 사람치곤 선이 굵은 그녀를 두고 '눈 크고 시원시원한 게 너무 멋지다' 난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제일 큰 충격은 한석규씨에게서 왔다. '그런데 왜 그 눈 작은 남자가 주인공이에요? 한국에서 유명해요? 미남은 아니던데...'(헉!)  우리에게 한석규씨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대(당시) 최고 인기 배우이고 미남 배우였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일본인들에겐 낯선 한국인이었을 뿐이었다. 당시 일본에 뭔가를 팔아보려고 애쓰던 기자는 한석규씨 덕분에 내수용과 수출용의 차이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었지만.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에서 사실 10위권 밖은 규모나 영향력에서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50위권이라도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을 이미 상황 끝인 영화를 되살리려는 소재로 쓰기보다는 앞으로 할리우드 공략을 위한 재료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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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9-2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석규씨가 연기는 잘 해도 미남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