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순신 5 - 아, 한산대첩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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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성웅 이순신을 먼저 배운 우리 세대는 이순신 개인의 가졌던고민이나 그 시대 상황을 분석하고 상상해보는데 매우 인색하다. 그는 시대를 뛰어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장애도 그에겐 거칠 것이 없어야 하고,  난세를 구한 불세출의 영웅이기에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드라마 중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을 가지고 만든 사극이 매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나도 가끔 보는 편인데 아직은 극이 불멸의 이순신에 많이 편중된 느낌이 든다. 사실 "칼의 노래"에서 밝힐 수 있는 내적인 긴장감과 주인공의 갖는 심상의 편린들을 어떻게 극화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시대와 공간을 한없이 확장시켜놓은 "불멸의 이순신"이 사극의 소재로는 훨씬 다루기 쉽고 매력적일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는 불멸의 스토리로 계속 이어지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은 어떤 인물에도 편중됨이 없이 양난의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며 변혁을 꿈꾸었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내고 연결시켜보고자 애쓰고 있는 장점이 있다. 이를테면 요순과 같이 비교되었던 선조의 출현과 왕위를 지키려는 치열한 갈등, 왕위를 꿈꾸며 중립외교의 기치를 드높였던 광해군, 서애 유성룡과 이항복, 이덕형, 오음 윤두서, 죽어서도 말하는 율곡 이이,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순신과 끝없이 행동하고 도전하고 싸우는 원균, 허준과 최중화, 초희와 미진낭자, 돈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애쓰는 곱사등이 임천수, 당취를 이끌면서 불국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야심많은 변혁가 월인, 백성을 무서워하라며 그들의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애쓰던 시인 하지만 스스로 유학자의 길을 끝내 못버린 허균, 食人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삶의 극한 상황까지 몰고갔던 허균의 스승 손곡선생, 남궁두와 방진 그리고 휴정과 유정, 등등 총체적 위기상황을 설정한 국난을 통해 시공간을 무한대로 팽창시켜놓는 작가의 넓은 시야에는 비현실적 공간이 역사 현실보다 더 넓게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확장이란 개념보다는 전지적 시점에서 과거를 마음대로 주무르며 현대를 투영하는 느낌이 명쾌함보다는 거북한 느낌을 많이 가져오게 한다. 이를테면 이런 인물들이 조선의 산하에 비일비재 했는데 임진왜란 같은 전란을 왜 당했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재구성 해보기는 쉽다. 하지만 총체적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조선과 일본의 전국시대를 이어가며 또 건주위 문제를 불러일으킨 야인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시대감각이 가능한 것일까? 국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왕권에 집착하면서 눈물을 보이는 것으로 왕노릇을 다했던 선조가 난이 끝난 후에 중국의 도움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었을 뿐 백성들의 희생과 의병활동까지도 평가절하했던 역사성을 알고 있는데 소설적 상상력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이순신과 원균은 전란을 바라보는 눈이 그렇게도 다르고 합치될 수 없었던가? 서애 유성룡의 시국관은 한없이 넓어보이지만, 실제로 그럴까? 그 나머지 소설적 허구의 경우는 질문을 하지 않기로 한다.

  영웅에 대한 생각을 한 시대를 철저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인간의 모습으로 바라보았다는 점, 그리고 한 영웅적 인간에 대한 다른 관점의 두 소설이 나를 즐겁게 긴장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져본다. 6권이 끝인줄 알고 열심히 읽어댔는데 7,8권이 또 있다니 언제까지 다 읽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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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1 - 잃어버린 계절
이병주 지음 / 기린원 / 198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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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은 참 도전적이고 대단한 책이란 느낌이 강했었다. 아마도 1980년대 중반이나 후반쯤에 읽었던 듯 한데, 그의 책을 찾아 읽었던 기억도 난다. 관부연락선이나 소설 알렉산드리아 같은 걸 말이다.

  올해 나의 목표중 하나가 지리산 종주이고 내 경험의 범주내에서 지리산을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 이 소설이란 생각에 재독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거의 이십년만에 읽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남부군이라든지 혹은 태백산맥 같은 소설들을 통해 그리고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쓰여진 많은 기록물들을 통해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에 익숙해져 있던 탓이었을 게다. 그의 소설이 죽기를 각오하고 쓰여졌다는 말이 거짓처럼 여겨지는 것은. 지리산에 대한 기록도 내 기억보다는 훨씬 적었고 또 골짜기 골짜기 마다 오르내렸던 파르티잔의 삶의 흔적을 치열하게 엿볼 수 없었다. 스토리로 보더라도 혁명의 정열을 잃은 자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남한사회에는 끼일수가 없어서 그냥 죽고 만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리고 민족사의 치열성을 해외로 나가 십년쯤 도피하고 돌아온 사람이 변호사나 대고 기록을 찾아내고 한다는 것도 그리 훌륭한 행동은 아닌 것 같고. 최소한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민족과 사회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이규나 박태영은 주인공이 될 인물은 못되는 것 같다. 태백산맥의 치열성이 전혀 없이 남부군에 혹은 유격대에 속했던 모든 인물들이 공산당에 환멸을 느끼면서 그들이 빚어낸 정치현실에 환멸을 느끼면서 살았다는 것은 너무 심한 편향성이다. 이런 작품을 쓰면서도 목을 내놓고 썼다면, 7,80년대의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얼마나 경직되었던 것인지를 오히려 느끼게 해준다.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안고도 언제나 웅장한 혼을 그대로 간직한 지리산, 그 속으로 나는 걸어가 보면서 하준규나 노동식, 혹은 순이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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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등지고 숨어사는 선비인 일사(逸士)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은 허균 이후에도 박지원의 '허생', '김신선전', '예덕선생전' 등을 거쳐 김려의 '장생전', '가수재전', 이옥의 '유광억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조동일은 "한국소설의 이론"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일사소설의 작자들은 집권층에서 이탈되어, 집권층에 대해 불만을 품고 세계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대부이다. 세계를 개조할 수 있는 탁월한 경륜을 지니고 있으면서, 또는 그렇다고 자부하면서도, 불우하게 생애를 마친 사람들이 소설을 쓰고 그 속에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작품의 내적 자아를 설정한 것이다.

  자기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믿었던 허균은 자기처럼 세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일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지으며 시름을 달랬고, 더 나아가서는 "홍길동전"을 지으면서 혁명의 꿈을 키웠다.(p.248)

- "남녀의 성정은 하늘이 주신 것이니 예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인간의 본성을 즐기겠다"(허균의 주장)

- 허균은 때를 잘못 만났기에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르지 못한 이무기였다.(p.383)

나의 느낌  ---   글쎄,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허균의 삶의 일관성이 잘 안보이고, 혁명을 꿈꾼 반역아라고는 하였으나 공초의 기록에서 보여지는 것이 적어 행동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상상할 수 있을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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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평전 - 시대를 거역한 격정과 파란의 생애
허경진 지음 / 돌베개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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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에 관한 지식인의 소설(김탁환, "허균 최후의 19일")을 읽으면서 관심을 가져본 인물이다. 좀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것 아닐까 싶은 호기심이 약간 있었고, 역사적 반항아에 해당하는 그 인물을 잘 접근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였다.

  소설을 읽으면서는 실천성이 부족했던 관념만의 19일이라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는데 평전은 더 답답증을 일으킨다. 당대의 가치를 뛰어넘으면서 살고자 했고 그의 이념과 지향점이 매우 근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사대부의 삶과 그 기초를 버리고자 아니했던 인물로도 보여진다. 벼슬 외에는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길도 없고 안일함 속에서 시와 노래 속에 살고자 하는 베짱이 같은 모습이 한 줄기를 이루는가 하면 신분의 벽을 뛰어넘고 성리학의 갇혀진 세계로부터 일탈하여 살고자 한 인물, 오히려 교산보다는 허난설헌에 대한 매력이 더하고 너무나 젊은 나이에 죽어간 그녀의 삶이 오히려 안타까웠다.

  평전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시에 대한 격조가 없으니 그냥 번역시를 한번씩 읽어 훑어나갈 뿐이고, 그의 가계에 대한 존경심도 별로 없고 심지어는 그에 대해 막연히 알고있었던 게 오히려 상상력의 차원에서나 앎에서나 오히려 자유로왔던 듯 싶다.  많이 지겹게 읽어 내렸다. 역동적인 그의 삶을 생각한다면 이래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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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 하나
김훈.박래부 지음 / 따뜻한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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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이 왜 이럴까?'  약간은 촌스럽고 시대성도 없는 듯한 제목에 내심 의아해하면서 읽어간 이 책은 거의 끝 부분에 소개한 이오덕님의 "일하는 아이들"에서 나온 아동시(안동 대곡분교 3년 정장교 1970.06.13) 중에  나오는 절절한 체험의 한 행임을 알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안 읽었던 책도 아닌데......" 이오덕 님이 청송 출신이라는 것도 벌써 돌아가셨다는 것도 다 새로운 사실처럼 느껴지고 이제서야 알게 된 것 같은  낯설음, 그리고 이로 인한 까마득한 기억으로 당혹해 하면서 가슴 울렁거림을 여행지에서 느꼈다. 여러 날 동안 조금씩 읽어 낸 책이라서 여행지까지 짊어지고 갔고, 소위 문학소녀였던 과거의 빛바랜 기억들이 무색해져 버린 회한을 담아낸 책이기도 했다.

시는 이렇다.     비료지기                    /아버지하고 / 동장네 집에 가서 / 비료를 지고 오는데 / 하도 무거워서 / 눈물이 나왔다. / 오다가 쉬는데 / 아이들이 장교 비료 지고 간다 / 한다. / 내가 제비 보고 / 제비야, / 비료 져다 우리 집에 / 갖다 다오 하니 / 아무 말 안 한다. /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고 / 나는 슬픈 생각이 났다. /

  삶의 감당할 수 없는 무게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맨 몸으로 걷기에도 무리일 것 같은 그 먼 길을 비료를 지고 가는 초등 3학년 아동의 모습과 그의 삶의 무게가 뒷목을 뻑뻑하게 만든다. 몸으로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삶을 곁에 놓고 정신이 어떠하다느니,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사치로 느껴졌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더 많은 슬픔의 무게를 짐지워 주신다고 하는데 육체의 무게를 말하는 것으로는 생각지 않았었다. 슬픔의 몫으로 따진다면 겪어내야 할 정신적 불행의 무게일 거라고 짐작하였었는데 제비는 푸른 하늘 다 구경하는데 열살짜리 아이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짊어져야 할 한 부대의 비료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고개가 그냥 떨어져 버릴 것 같고 그로 인해 삶이 슬픈 생각이 났다면, 정신과 육체가 비교의 대상이나 되겠는가. 나의 호사스런 생각과 사치가 너무 부끄러웠다.

  우리 문학을 좀더 치열하게 들여다 봐야 겠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한 권의 문학기행을 뽑은 김훈과 박래부의 글이라면 우리 문학의 정수에 해당되는 작품이 선정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며, 스물다섯 명의 작가와 작품들이 소개된 것인데 그 중엔 읽어보지 않은 작품(장난감 도시, 변방에 우짖는 새, 에미, 아메리카, 소시민, 요한시집, 태평양)도 여럿 있고,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작가(요한시집의 저자인 장용학같은)도 있었다.

  난 왜 이렇게 제대로 해내는 것이 적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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