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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1 - 잃어버린 계절
이병주 지음 / 기린원 / 1985년 3월
평점 :
품절
이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정은 참 도전적이고 대단한 책이란 느낌이 강했었다. 아마도 1980년대 중반이나 후반쯤에 읽었던 듯 한데, 그의 책을 찾아 읽었던 기억도 난다. 관부연락선이나 소설 알렉산드리아 같은 걸 말이다.
올해 나의 목표중 하나가 지리산 종주이고 내 경험의 범주내에서 지리산을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 이 소설이란 생각에 재독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거의 이십년만에 읽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남부군이라든지 혹은 태백산맥 같은 소설들을 통해 그리고 민중사관의 입장에서 쓰여진 많은 기록물들을 통해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에 익숙해져 있던 탓이었을 게다. 그의 소설이 죽기를 각오하고 쓰여졌다는 말이 거짓처럼 여겨지는 것은. 지리산에 대한 기록도 내 기억보다는 훨씬 적었고 또 골짜기 골짜기 마다 오르내렸던 파르티잔의 삶의 흔적을 치열하게 엿볼 수 없었다. 스토리로 보더라도 혁명의 정열을 잃은 자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남한사회에는 끼일수가 없어서 그냥 죽고 만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그리고 민족사의 치열성을 해외로 나가 십년쯤 도피하고 돌아온 사람이 변호사나 대고 기록을 찾아내고 한다는 것도 그리 훌륭한 행동은 아닌 것 같고. 최소한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민족과 사회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이규나 박태영은 주인공이 될 인물은 못되는 것 같다. 태백산맥의 치열성이 전혀 없이 남부군에 혹은 유격대에 속했던 모든 인물들이 공산당에 환멸을 느끼면서 그들이 빚어낸 정치현실에 환멸을 느끼면서 살았다는 것은 너무 심한 편향성이다. 이런 작품을 쓰면서도 목을 내놓고 썼다면, 7,80년대의 우리나라 정치현실이 얼마나 경직되었던 것인지를 오히려 느끼게 해준다.
민족의 수난과 아픔을 안고도 언제나 웅장한 혼을 그대로 간직한 지리산, 그 속으로 나는 걸어가 보면서 하준규나 노동식, 혹은 순이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