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든 조언이든 들려주어야 할 것 같았지만, 한마디라도부주의하게 내뱉었다간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아진 그 학생의 마음에 쨍그랑 금이 갈까 봐 두려웠다. 마음속으로 맞갖은 어휘와 표현을 조심스레 고르고 이리저리 배열하는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다음 순간, 학생의 표정에서 타인에게내보이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속내를 털어놓고 나서 밀려드는 참담한 평온함 같은 것이 읽혔다. 그때 알았다.
이 친구는 지금 위로나 조언을 구하려는 게 아니구나. 누구한테도 말 못한 채 품고 있던 내면의 무거운 돌덩이를 감내하기 힘들어, 상담 형식으로나마 꺼내어 보이고 싶었던 거였구나.
KR솔직히 말하면 나는 학생이 겪고 있을 고통의 크기나 밀도를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거기에 오롯이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상의한다는 구실을 빌려서라도 누군가에게말하고 싶었을 간절함만큼은 온전히 알았고, 또 공감했다.
말한 다음 순간 밀려드는 참담한 평온함에 대해서도.
고르고 다듬던 조언의 문장들을 버렸다. 대신 밤늦게 불쑥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 학생에게
"고마워"라고 답했다. -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