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이런 상징과 희망과 야심은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인정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음… 만약 그 모든 잉여를 제거한다면(혹은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파괴되지 않는 그것을 찾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카프카는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 그는 우리가 파괴되지 않는 것을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주지 않아),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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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요지는 단순하다. 인간의 정신이 세상을 조각해내는 일을 늘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만물에 붙인 이름들은 잘못된 것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는 존재였던가? “마녀”는 화형을 당하는 게 마땅한 존재들이었나? 그가 의자를 예로 든 의도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겸손을 유지하라는 것, 우리가 믿는 것들, 우리 삶 속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늘 신중해야 한다는 걸 되새겨보게 해주는 사례인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5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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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양장) - 194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해불가 요령부득 문장들이 간혹 있었는데 번역의 문제인지 까뮈가 일부러 그렇게 쓴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는 점만 빼면 완벽. 세상의 부조리에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천착하면서도 가장 마지막까지 인류애를 놓지 않을 분, 까뮈는 역시 휴머니스트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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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불행 속에는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추상이 당신을 죽이기 시작할 때는 분명 그 추상에 마음을써야 한다. 그리고 리외는 단지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예컨대 그가 책임을 지고 있던 보조 병원(지금은 세 개가 되었다.)을 관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진찰실을 향해 있는 방을 접수실로 꾸미게 했다. 바닥을 파크레졸(cresol)수로 욕탕을 만들었는데, 그 중앙에 벽돌로 된 작은 섬이 있었다. 환자를 그 섬으로 옮겨 빠르게 옷을 벗기고, 옷은 물속에 넣었다. 몸이 씻기고 말려져 거친 병원용 내의를 입은 환자는 리외의 손으로 넘어왔다가, 그다음 단계로 병실 중 한 곳으로 옮겨졌다.

자기가 영위해 온 은둔 생활에 대해 놀라는 타루에게, 이 늙은 천식 환자는 대략 이렇게 설명했다. 즉, 종교에 따르면, 한사람의 반생은 상승이고, 나머지 반생은 하강인데, 하강 중에그 사람의 하루하루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어서 언제라도그것들을 빼앗길 수 있으니, 그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최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있다고 말이다.

사실 수많은 우리시민들이 서술자의 입장이라면, 오늘날 보건위생대의 역할을과장해서 기술하고픈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서술자는 오히려 이런 훌륭한 행동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국 악에 대해 간접적이고 강력한 찬사를 바치게 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런 훌륭한 행동이 그렇게도 대단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주 드물기 때문일 뿐이고, 또 인간의 행동에서 악의와 무관심이 더 흔한 원동력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술자는 이런 생각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 시의 많은 신도덕주의자들은 백약이 무효이며, 따라서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타루도 리외도 그들의 친구들도 이런저런 대답을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결론은 항상 그들이 알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든 저런 식이든 간에 계속 싸워야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죽는다든가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페스트와 싸우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 진리는 대단한 것이하나도 없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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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앙이란 항상 있는 일이지만, 막상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그것에대해 생각하기 어려운 법이다.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페스트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페스트나 전쟁이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우리 시민들이 그랬듯이 의사 리외도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가 망설였던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가 걱정과 자신감을 나눠 가졌던 것 역시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 안 갈거야, 너무 어리석은 짓이잖아." 그리고 분명 전쟁은 너무 어리석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계속되지 않는 건 아니다. 어리석음은 항상 끈덕진 법이다. 만일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여서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인간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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