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재앙이란 항상 있는 일이지만, 막상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그것에대해 생각하기 어려운 법이다.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페스트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페스트나 전쟁이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우리 시민들이 그랬듯이 의사 리외도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가 망설였던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가 걱정과 자신감을 나눠 가졌던 것 역시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래 안 갈거야, 너무 어리석은 짓이잖아." 그리고 분명 전쟁은 너무 어리석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계속되지 않는 건 아니다. 어리석음은 항상 끈덕진 법이다. 만일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여서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인간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