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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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하나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한데, 나머지 단편 들도 고루 좋았다. 극단으로 치닫거나 숨겨둔 반전 따위가 없는 스토리를 나는 좋아하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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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러닝은 직관과는 반대로 우리가 앞에 놓인 결정을 평가할때 기계화되는 대신 더 인간화되도록 도울 수 있다. 머신러닝은 ‘실수가 정상이며 실제 데이터에 그것이 내재한다고 가르쳐준다. 실제로 이분법적 선택지는 거의 없으며, 모든 것이 패턴에 들어맞거나 반박할 수 없는 깔끔한 결론으로 수렴하지는 않는다. 예외는 규칙을 만든다. 내가 머신러닝의 관점을 유용하게 사용했던 건, 이관점이 인류의 선천적인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걸러내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보다 더 쉽게 수용하기 때문이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머신러닝의 방식은 내가 무서워할 상황을 대비해 계획을 세우고, 상황이 잘못된 쪽으로 흘러갈때에 더 잘 대비하도록 돕는다.
나무처럼 생각하기는 우리 주변의 복잡성을 반영하며 동시에우리가 회복하도록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상자가 밟히고 부서져서 영원히 사라진 후에도 의사결정나무는 수백 년을 버틴 굳건한참나무처럼 그 어떤 날씨에도 맞설 수 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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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초라해지는 상황은 참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나오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 남자가 늘 불쾌한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가 있는 법이지. 아주 오랫동안 멈췄던 시계가 다시 움직일 때 말이야. 그날 그 시간의 다음이 다시 시작되는 일 말이야.”



나는 더우화를 아주 좋아했다. 특히 할아버지가 아침에 사다 주는 그 자랑스러운 한 그릇을. 몽글몽글한 더우화에 숟가락을 꽂고 달콤하게 졸인 땅콩과 함께 섞을 때,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나는 이 세계에 군림하는 작은 패왕 같았다.



나는 눈물이란 슬플 때 제멋대로 나온다고 믿었기에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몇 주 동안 혹시 내가 슬퍼하지 않나 생각했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 대부분은 다른 이의 시계로 측정되는 것이라 아무래도 이런 오해가 생긴다.


밍첸 삼촌에게 비밀이란 그게 어떤 것이든 개구리에게 비와 같은 것이다. 개굴개굴 울지 않고 배길 수 없는 것이다. 


“공자님 말씀이지, 아마?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하면 작은 일은 어느 정도 어겨도 된다는 소리야. 공자님 제자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거두절미하고 이 말은 진리야.”


  “《논어》 같은 걸 읽어?”


  “내게 적당한 부분만. 



“자네 할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어요.” 위에 씨가 말했다. “가슴속에 아직 희망이 있었던 거죠.”


  “희망?”


  “조바심과 초조함은 희망의 다른 얼굴이니까요.”



이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절대복종과 괴롭힘을 함께 견딘 동료들에 대한 연대감과 소속감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은 분노의 칼끝을 원한도 없는 사람에게 돌리는, 교묘한 자기기만이다. 타인을 모방해 그 욕망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고 한 자크 라캉의 주장이 옳았다. 그렇게 전쟁도 모방하게 되는 것이다.



“운명의 사람을 만날 때는 나쁜 일조차 도움이 되지.”



사람에게는 성장해야 하는 부분과 성장할 수 없는 부분과 성장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혼합된 비율이 인격이고,



“우리 마음은 늘 과거 어딘가에 붙잡혀 있지. 억지로 그걸 떼어내려 해봤자 좋을 게 없단다.”
















“죽을 때만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그런 일은 없어. 만약 내가 내내 행복하다가 죽을 때 차에 치여 죽는다고 해도 지금까지 행복했으니까 뭐, 괜찮네, 라고 생각할 거야. 거꾸로 내내 불행했는데 죽기 전에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지금 새삼스럽게? 라고 생각하겠지.”


사소한 일로 자기 대신 분노를 뿜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늘 조금쯤 친절해진다. 그런 법이다.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헤어지는 원인을 나누려고 했던 거야. 


우리는 끝내 마음을 따르거나 아니면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은지는 죽을 때까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단호하게 마음을 거절하다 보면 우리는 더는 우리가 아니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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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들은 다수파의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어버리는가. 아마 그들은 서른 명쯤만 모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들에게 정당성이 있다고 믿기만 하면 어떤 악한 짓이라도 서슴없이 저지르지 않을까. 그것이 인간성이 아니라 기계적인 시스템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누군가를 인정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싫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짜증난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 누군가를 껴안는다, 누군가와 스쳐 지나간다…. 그게 산다는 거야.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누군가는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하면 즐거운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그래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것처럼.”

수많은 농담을 했고 수없이 웃었고 수없이 서로를 매도하고 수없이 서로를 존중했다.

하지만 어느 누가 잘못한 우리를 비웃을 수 있을까.


  마지막 회가 정해진 드라마는 마지막 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끝이 정해진 만화는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이 예고된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모두가 그것을 믿으며 살아왔으리라. 그렇게 배워왔으리라.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소설은 마지막 페이지까지는 끝나지 않는다, 라고 믿었다.


  그녀는 또 웃을까, 소설을 너무 지나치게 많이 읽었다고?


  웃음을 사도 상관없다.


  마지막까지 꼭 읽고 싶었다. 그리고 읽을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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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사랑한 것은 그의 명랑과 기품이었다. 루시를 보고 있으면 살갗 아래서 펄떡이는 생이 느껴졌다. 앳되고 아름다운 생명만이 누리는 독특한 광채가 있었다. 꽃이 핀 정원에 해가 뜨면 처음 한두 시간쯤 목격할 수 있는 그런 광채였다. 

 지적이고 느긋한 녹갈색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렇게나 즐거운 세상인데, 왜들 그렇게 애를 쓰시나?’ 

그는 매일매일 한결같이 즐기며 살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씩 정원의 꽃을 가꾸었다. 목욕을 한 뒤 어디 다녀올 데라도 있는 것처럼 신중하게 셔츠와 넥타이를 골라 옷을 입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질 좋은 시가에 불을 붙이고는 단 한 순간도 담배의 풍미를 놓치지 않으며 마을로 걸어갔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집을 떠나기 전에 코트에 꽃도 한 송이 꽂았다. 건강과 단순한 즐거움, 푸른색과 금색이 섞인 음악대 유니폼을 제이컵 게이하트보다 기꺼워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어쩌면 그는 해버퍼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으리라.

루시는 생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카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을 발견했다. 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바깥세상이 어둡고 끔찍한 곳인 것만 같았다.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뿐이었다. 

그라면 세상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똑같이 행동할 것 같았다. 분명 많은 것을 겪어보고 많은 것에 능숙한 사람만 지닐 수 있는 담백함이 있었다. 그의 생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속 깊은 종을 두드리는 듯해서 듣지 못하는 것까지 전부 느낄 수 있었다.

“있지요, 이 작은 빨간색 깃털이 길 위로 동동 떠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참 좋더라고. 부러 찾아본답니다. 안 보이면 정말이지 실망스러울 거예요. 루시는 추운 거리를 걷는 게 이 세상 최고의 기쁨인 것 같은 얼굴이던데. 어느 책에선가 몽테뉴가 그랬지. 앳된 청춘기에는 생의 기쁨이 발에 있다고. 루시를 보고 있으면 그 구절이 생각나요, 루시. 잊고 살았는데.” 

(그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매력을 칭찬하면 끔찍한 효과가 발생한다고 믿었기에) 절대 진심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 루시를 웃겼다. 

그는 삶을 편안하게 즐기는, 어쩌면 삶을 즐김으로써 참아내는 사람 같았다.

다만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더욱 충실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든 지나치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자기 것을 취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거부할 힘을 찾아낸 듯했다.

해리는 일종의 정신적 근시가 있어서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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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5-1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적 근시’ 를 저도 밑줄 그었습니다.

치니 2024-05-17 11:31   좋아요 0 | URL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