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소설을 읽고 좀 난감한 기분이 될 때는,

주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가 없을 때'이고, 하나는 '도무지 읽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그것도 단 하루가 지난 참인데).

아쉽게도 이 소설집은 내게 위의 두 가지 기분을 동시에 준다.

김인숙씨에게 내가 기대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유치하게도 '꿈꾸는 자의 대변' 같은 거라고 해야겠다.

더욱 유치하게도 그러한 기대는 그녀의 꾸준한 작업에 성원을 보내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제목이 주는 암시 때문이었다.

과연, [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를 읽어보니, 꿈 꾸는 자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꿈 꾸던 그녀는 좌절했고 죽어버렸다.

아, 꿈 꾸고 싶은 자들, 다 죽어버려야 하는가. 이것이 겨우 리얼리즘인가.

재미있게 소설 읽고 싶은 사람들, 다 더욱 더 까다로워져야 하는가.

힘 빠진 김에 당분간 소설책을 집어들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좋은 소설이 잘 골라지는 눈이 밝아질 때까지만이라도.

언제인가 픽 웃으면서 무시했던 '소설책이 그래봐야 소설책이지 뭘'이라는 말에 왠지 공감이 가는 이 기분은, 괜히 억울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륜의동화 2006-09-2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 꾸고 싶은 자들, 다 죽어버리는 것이 리얼리즘인가'
도발적인 질문이 감동적입니다 ^^
총총


blowup 2006-09-2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네요. 김인숙의 주인공들이 읽는 이까지 지치게 만든다는 것에 동감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 거기에 점수를 주게 되네요. 나를 압박하는 기분.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 소설도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말이죠.

치니 2006-09-2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륜의 동화 / 윽, 도발적이었나요. 이런... ^-^;;; 편안하게 쉬는 일요일 밤 되시길.

나무 / 아 읽으셨구나. 주인공들이 지치게 만든다 라는 나무님의 표현을 읽자니, 제가 느꼈던 억울한 기분이 왠지 거기서 비롯되었지 않았나 싶어요. 맞아요 거기까지 도달... 어려운 숙제이고, 그게 재미까지 주려믄 더욱 어려울텐데, 괜히 저 혼자 억울했던건 높았던 기대치 때문인가봐요.

sudan 2006-09-25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하고 치니님 얘기 나누시는 거 보면 난 우리나라 동시대의 작가는 정말 하나도 모르는구나 싶어요. -_-

waits 2006-09-25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도 소설을 놓지 않으시는 치니님을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
워낙 여자를 안좋아해서--;; 김인숙씨도 이름만 아는데 별로 제가 좋아할 것 같지는 않네요.

Fox in the snow 2006-09-2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작가라 보탤 말은 없고...늘 치니님 리뷰를 보고 편향된(혹은 안전한) 선택을 하는 저로선 앞으로도 계속 모를것 같은..^^

rainer 2006-09-2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세상에 김인숙이 있어 기쁜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나이다. 하하.

치니 2006-09-2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dan / 하나도 모를리가요, 김인숙씨는 아무래도 386세대에서 더 잘 알려진 듯 합니다. ^-^

나어릴때 / 그러게요, 이러쿵 저러쿵 불평은 잔뜩 하면서도 놓지를 못해요. 여자 작가를 별로 안 쳐주게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김인숙씨는 그런 식으로 폄하될 작가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

Fox in the snow / 저야말로 편향되기 이를 데 없는 선택만 해요, 항상. 표지라던가 하다못해 글자의 크기 따위도 그 편향된 기준에 포함되죠. 음 , 꼭 읽어보십사 권하게 되지는 않네요, 이 책은. 하지만 다른 김인숙의 소설은 좋은 것도 있어요.

rainier / 와, 정말 오랜만 ! 잘 지내시죠? 가끔 세상에 있어 기쁘다는 말이 어떤건지 알 거 같아요. 레이니어님 같은 감성을 갖지 못한 저는 이렇게 툴툴대기나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