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나오니 개정판이 또 나온 건지, 개정판이 나오고 영화도 개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2006년 판 화차를 읽었다.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보았다.
알라딘에서 예술작품에 대한 심미안이 가장 탁월하다고 (나 혼자) 믿는 탑 5 알라디너에 속하는 MD님의 권유가 그러했기 때문에.
그분의 의도는 적중했다. 책을 먼저 읽었으면, 아마도 나는 영화의 압축성에 대해서 조금쯤 볼멘 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을 듯한데, 그 반대의 순서로 감상하고나니, 거꾸로 그 압축성이 꽤 괜찮았구나 싶고 책은 조금 더 깊게 소화했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은 책과 영화가 다른 부분에 대한 간단 비교 감상.
우선 러브라인이 상세한 영화에 비해 책은 소재 정도로만 쓰이는 건조한 구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데, 이 점은 개인적으로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사랑이란 것에 목숨 거는 남자가 적어진 현대 사회 어쩌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살인자인 주인공에게 영화에서처럼 사랑이 강조되면 이야기가 아무래도 산으로 갈 것 같아서. 그 점에서 변영주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새로 만들다시피 한 이선균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
그러나 러브라인이라는 구체적인 상업성을 지우고, 경선의 인간관계만 놓고 보자면 책보다 영화가 더 경선이라는 인간의 심리에 밀접하게 가닿는 것 같다. 아버지를 사랑했겠지만 증오하게 된 경선, 가족이라는 게 울타리가 아니라 굴레만으로 느껴지는 경선, 처음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은 남자에게 차마 배신이라고도 못할 짓을 당한 경선, 세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으므로, 그리하여 행복하려면 세상 속의 나를 바꿔야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선, 거기에 끝까지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남자가 있어서 좋기 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경선 -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 놓은 폼새는 영화가 책보다 쉽고, 영화의 그런 쉬움은 곧 대중성으로 연결되니, 감독은 충분히 영리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원작을 마구 난도질했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아서, 내가 원작자라도 만족스러웠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미미여사는 대만족이라고 했다지).
화차 같은 작품을 가지고 괜스레 멋을 부려서 난해하게 해놨다면, 개인적으로 놀랍다기 보다는 재수없다고 생각했을 듯.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형사.
원작에서의 형사는, 내용상 키를 쥐고 있기도 하지만 경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법이 없어서 작품에 전반적으로 크나큰 안정감을 주면서도 인간적이고 작품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보여주는 데 최적이다. 반면 영화에서의 조성하는, 어째 전체적으로 참 힘 빠진달까, 심하게 말하면 이선균 꼬붕에 일상에서는 사회부적응자 같기만 하다. 마지막 씬에서 차를 놓고 뛰는 장면도 모양 빠지고. 부러 그렇게 했을 것 같은데, 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형사의 성격이나 주변상황은 그냥 원작 그대로 가고, 주인공과 이선균만 부각해도 되지 않았을까.성격 선명한 캐릭터가 세 개 나오니까 결국 하나가 죽는데, 그게 조성하가 되어버린 것 같다.
경선이 살해한 피해자는, 책에서는 개인사가 아주 자세하게 나오는데, 어쩌면 이 점이 영화와 원작이 가장 다른 부분이겠다. 나로서는 둘 다 괜찮았다 싶다. 물질만능주의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는 마치 샴 쌍둥이처럼 같았던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를 조명한 원작도 좋았지만 영화에서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 상 혹은 영화 매체라는 특성 상 과부하가 걸릴 만하니까 경선에게 집중한 전략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싶어서.
고로고로, 급 결론.
영화 개봉으로 책까지 다시 선방하게 만들면서도 자기 몫도 챙긴 변영주 감독, 축하합니다. 이모저모, 응원하고 싶었는데 작품 활동이 없어서 아쉬웠던 차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