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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들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배수아는 독특하다(고들 한다). 이 독특함이 문체에 한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때로는 이 독특함이 마음에 들었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일례로 '나는 네가 지겨워'라는 책을 읽었을 때는 정말 그 책이 너무나도 지겨워서, 혹시 지겨우라고 책을 쓰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게는 문체든 내용이든간에, 배수아라는 작가의 존재가 위와 같은 이유, 때떄로 다름 때문에 독특하다. 즉, 어떤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대체로 좋거나 대체로 싫어지게 마련인데, 아니 이게 너무 지나친 이분법이라면 대체로 좋은 가운데 가끔 싫거나 대체로 싫은데 간혹 좋거나 해야 하는데, 이 작가의 책은 한 권의 책 안에서도 좋거나 싫거나가 쉼 없이 반복되니, 과연 독특하구나 싶은 거다.
주절주절 변명을 했지만, 아무튼 배수아의 책을 보면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나는 그 독특함을 '좋아하는' 것이리라.
<당나귀들>은 최근작일 거라고 착각했는데 알고보니 2005년 작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이 이렇게나 어수선한 것이 조금쯤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작가가 쿤데라의 그것과도 같은 관념이 가득한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되려나. 내 기억으로는 단단하지만 내용상으로 크게 어필할 것이 없는 에세이 식 글을 쓰던 배수아가 지난 해 창비 정기간행물에 낸 단편에서는 꽤나 인상적으로 관념적, 수사적인 단편을 써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간상 추론으로, 2005년 이 책이 나올 즈음에는 정리되지 않았던 관념적 글쓰기가 지난 해 쯤에는 제법 가지런해진 것 같다. 첨언할 필요조차 없이, 이건 무조건 나만의 추론이지만.
오타조차 수정되지 않은 곳이 여러 군데 있는 (부러 그렇게 했을 것 같은) 번역투 비문이 속속 등장하는 이 책을 그래도 재미나고 흥미롭게 읽은 이유는 아무래도 취향 때문이다. 문학에 대한 난상 토론이 등장하는 장면이야 어쩌면 조금쯤 흔하게 다른 책에서도 나오지만 음악에 대해서 이토록 치열하게 자기 취향을 마음껏 토로하고 주물럭거리며 온갖 생각 꼬리물기를 나열하는 당당함은 (음악을 주제로 한 책이 아닌 이상) 소설에서는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에 나온 클래식 음악은 대체로 나는 잘 모르는 음악이고, 클래식 음악을 몹시 사랑했다는 노동자 시인 찰스 부코우스키의 시도 처음 읽었기에, 그의 시를 번역하여 놓은 작가의 일면 소녀 감성처럼 보이는 열정에 덩달아 달뜨게 된다. 이 공감력 덕분에 '동물 학대 반대와 절대적 채식주의'에 대한 비논리적인 옹호와 엘리트주의, 한국문학 전반에 대한 무지와 근거없는 폄훼에 대한 반감은 제법 많이 상쇄되었음을 밝혀둔다.
아무튼 작가는 책 속에서 이미 선언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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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떤 하나의 문학적 언어가 '완성'의 단계에 가 닿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문학의 도구가 되는 그 언어가 항상 폐쇄적인 룰을 갖고 있다고 믿지는 않아. 물론 누구나 그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가능한 한 최경계에서 작업하고 싶어. 이미 완성된 문법과 처녀지 사이에서. 그런 예술관을 네가 몽상이라 부르고 싶다면, 그러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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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몽상이라 부르던 아니던간에, 우리는 작가의 이 선언만큼은 존중해야 마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