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계절 - Another Yea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마침 이런 글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면 결국 부러움이란 게 무엇이겠는가? 일단 아우구스티누스가 묘사했던, 자기 어머니의 젖을 빠는 동생을 부러워하는 아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여기서 주체가 부러워하는 것은 타자가 소중한 대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타자가 대상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 대상을 훔쳐서 제 소유로 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가 가진 진정한 목적은 타자가 대상을 즐기는 능력/역량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부러움, 검약, 우울이라는 삼항 관계 속에 배치될 필요가 있다. 이 세 가지 형태의 감정은 대상을 직접 향유할 수 없는 상태에 있지만, 바로 그 불가능한 상태가 비친 거울상을 향유하는 상태에 있기도 하다. 부러움의 감정을 가진 주체는 타자가 소유하고 있고/있거나 타자가 주이상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부러워하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구두쇠는 대상을 소유하긴 하지만, 그것을 향유/소비할 줄 모른다. 구두쇠는 단지 대상을 소유하는 데에서,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소비되어서는 안 될 신성한 실체, 손댈 수 없는/금지된 실체로 격상시키는 데에서 만족을 느낀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고독한 구두쇠의 전형적인 모습은 집에 돌아와 조심스레 문을 다 걸어 잠그고 궤짝을 열어 제 소중한 대상을 몰래 훔쳐보며 경탄하는 장면이다. 그가 대상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막는 사실 덕분에 그 대상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지위가 보장된다. 한편 우울한 주체의 경우는 구두쇠처럼 대상을 소유하긴 하지만, 왜 그것을 욕망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잃어버린다. 따라서 우울한 주체는 셋 가운데 가장 비극적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지만, 거기서 어떤 만족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저) 중에서. 

나는 자꾸만 영화 속 톰과 제리보다 매리에게 온통 신경이 쏠렸다. 눈빛 하나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가히 전 지구에서 가장 평화로운 일상을 연출하고 있는 톰과 제리는 부부, 제리의 직장 동료인 20년 지기 친구인 매리는 그들 부부에 대한 부러움 속에 영화의 마지막까지 '우울한' 주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 담담한 영화가 왠지 으슬으슬한 미스테리 영화처럼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지젝은 책에서 저런 이유로 폭력이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즉, 누군가의 욕망을 제거하고 자신이 이겨야 끝나는 제로섬 법칙 때문에 폭력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란다. 가령, '너에게 하나를 주고 남이 두 개를 가져도 좋으냐 아니면 너에게 하나를 빼앗고 남에게 두 개를 빼앗는 것이 좋으냐' 라고 물으면 사람이란 후자를 택한단다. 내가 이기느니 차라리 남이 지는 것이 나은, 평등을 희구하는, 원천적 부러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 이유없이 테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뉴올리언즈의 흑인들은 백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 때문에 폭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것을 자신들과 똑같이 소유하지 않아야만 하기에, 종교로 인한 폭동 역시 다른 종교가 향유하는 것을 자신들과 똑같이 향유하지 못하게 해야 하기에.......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매리는 지젝 식 논리의 틀 안에 끼워맞추기 좋은 인물이다. 그녀는 제리를 참 좋아하고 제리의 집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Peaceful 하다며 경탄하지만, 톰 제리 부부의 아들이 여자친구를 얻자 스스로도 이해불가한 질투의 화신이 되어 모든 관계를 망쳐버리고 부부에게 위기의식과 실망감을 남겨주고 마는 - 평화를 깰 위험이 있는 폭력의 주체가 된다.  

하지만, 시선을 거꾸로 뒤집으면, 그러니까 매리의 시각에서 보자면, 톰 제리 부부는 그 자신들만의 안온한 생활 속에서 폭력을 전혀 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혹은 그들이 폭력을 유발한 건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 - 자기애가 이기주의의 동의어라 친다면 - 로 매리가 조금이라도 성역을 침범하면 '네가 이해해야 해, 여기는 우리 가정이야, 우리는 가정을 지켜야 하고' (극 중 제리의 말이다) 라면서 넌지시 밀어내는 일을 반복적으로 했던 것을 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아 - 아무래도 영화를 너무나 내 시각에만 좁게 가두고 본 모양이다. 실은 이런 이야기가 아닌데. 그저 제목처럼 '인생의 모든 계절'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것일 뿐일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뭐, 영화란, 아니 모든 예술작품이란, 관객의 반응이 아무리 제멋대로여도 불평할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났으니 어쩌리.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3-18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8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오 2011-03-1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과 제리여? 왜 저는 만회가 퍼뜩 떠오르는지~ 지젝의 책의 텍스트가 마이클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의 이미지속으로 빨려들러갔군요~ ㅎㅎ

치니 2011-03-19 13: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유명한 만화 속 톰과 제리를 영화에서도 언급해요. 그 앙숙 커플이 실제로는 잉꼬라면서. ㅎㅎ
요새 이것저것 짬뽕으로 읽고 보니, 막 섞이나봐요. ㅎ

프레이야 2011-03-25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굿모닝^^
이런 영화가 있군요.
어디서 보셨어요? 아주 보고 싶어지는 영화에요.
제목부터 시적인 게 끌려요.

치니 2011-03-25 13:4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굿 애프터눈 ~ :)

저는 아트선재 시네마에서 봤는데, 그 당시엔 개봉 직전 시사회였고요,
아마 어제부터가 본격 개봉일인 걸로 알고 있어요.
프레이야 님 계신 데도 아마 찾아보면 하는 데 있을 거에요. 감독이 마이크 리, 나름 유명한지라 챙겨 보는 분들 있더라고요.
영화 보시면 제 리뷰가 얼마나 억측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ㅋ

2011-04-11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2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