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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야무챠 지음, 김은진 옮김, 곽영직 감수 / Gbrain(지브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이것 참 야단났다.
자꾸만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늘어나고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은 일천하기 짝이 없어서 우왕좌왕하면서도, 꾸역꾸역 잡식을 서슴치 않고 있다.
허기지지 않아도 자꾸 밥을 먹으면 체하는데, 지금 내가 허기졌는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사실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뭘 좀 알고 싶어서 고르는 책이 주는 가장 두려운 답은,
'아직 내가 모르는 게 무진장 많구나' 이다.
누군가 지식을 가르치고 나는 그걸 배운 뒤 독창적인 생각도 못한 채, 이젠 좀 알겠다 싶고 뭔가 그림이 보여야 뿌듯함을 느끼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유래한 독서 쪽에서도 막강하기 때문이다.
표지나 큼직큼직한 글씨, 초등학생도 이해할 만한 간단한 그림을 보면 얼핏 만만한 이 청소년용 과학서적은 (혹은 철학 서적은) 읽으면 읽을수록 전혀 만만치가 않아서 당혹스럽다.
티비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스폰지' 수준의 생활상식에서 철학을 발화하는 따위를 기대한 건 물론 아니었지만, 도라에몽이 철학적 좀비론에 인용되는 상황에 이르면 영화 '인셉션'을 볼 때의 기분보다도 훨씬 아리송해지고 급기야 약간의 짜증까지 난다.
이런데도 철학은 두려운 동시에 너무나도 재미난 학문이라고?
그래서 도저히 끊을 수 없다고?
책의 목적은 분명하게, 철학하는 것에 대한 재미를 알려주는 데 있다는데, 그리고 그 목적에 비교적 충실한 듯해보이는데, 그래도 뭔가 화장실 갔다가 밑 안 닦고 나와버린 이 느낌은 어쩔 거냐.
불만으로 입이 삐죽거리면서도 저자에게 약간의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굳은 내 머리를 억지로나마 해체하고 '생각을 하자, 생각을' 이런 의지를 자꾸 솟구치게 한다는 점에서.
모름지기 모든 이론에 모순이 있고, 세상에 확실한 진리란 없으며, 과학이란 결국 반증 가능한 가설 위에서 우리끼리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북 치고 장구 치는 학문이라 친다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먼지 수준으로 작은 나이지만 그런 내가 뭔가 새로운 사고를 해본다는 게, 그리고 잘 하면 그게 내 나름의 세상을 바라보는 이론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나는 애당초 아들에게 주려고 이 책을 샀지만, 아들은 읽고나서 '아, 뭐야, 다 아는 이야기고 다 생각해본 거네'라고 건방진 일갈을 할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덜 굳은 머리로, 과학의 진부함과 무용함을 오래 전부터 주장하던 아이였으니까.
그래도 아이가 이 책을 읽고나서 나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세상과 우주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재미있는' 사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