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 Moth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지난 해인 것 같다, 처음 <마더>에 대한 기사를 읽은 시점은. '봉준호'라는 세글자만 보고 무턱대고 기다렸다. 갈증이 일었던 참이었다.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지만, 우리 영화 중에서 이것이 바로 영화 예술이다 라고 외쳐줄 것 같은 영화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김혜자란다. 김혜자는 이미 국민 어머니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는데, 마더라는 직설적인 제목을 쓴 영화에 나온단다. 호기심 제대로 발동.  

몇 달 후면 예고가 빵빵 터지고 김혜자가 언론에 나오고 입소문이 돌겠지,라고 기다렸던 나를 비웃듯 영화는 느긋하게 개봉되었다. 어차피 감독과 배우가 모두 거물이기 때문인지(거기다 꽃미남 원빈도 있고), 홍보는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살인자로 오해 받은 아들을 구하기 쯤의 내용으로 오인하기 딱 좋을 포스터와 예고 때문에 연세가 지극한 주부님들도 납시었고, <괴물>의 상업적인 성공 때문에 젊은이들도 우루루 몰린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없었다. 아니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봐야 하는데, 그게 잘 맞춰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어제 <마더>를 보았다. 드디어.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예술이야 ~'라는 오래전 유행했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건, 내 표현력이 너무나 빈곤하기 때문이라 어찌 할 도리가 없고, 왠지 발을 동동 구르는 마음이 되었다. 이건 너무 좋은데, 지나치게 잘 만들었는데, 어떡하지, 저 비를 봐, 저 노을을 봐, 저 춤을 봐, 저 회색을 봐, 저 눈동자를 봐, 이 음악을 들어봐...이 모든 것의 완벽함을 봐! 라고 말하고싶은데 말하면 산통을 깰 것 같은, 그런 조바심. 

봉준호는 항상 그랬다, 그러고보니. 

<플란다스의 개>를 보았을 때, 극장에서는 초라하게 막을 내린 터라 나 역시 비디오를 빌려 보았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감독, 내용은 개와 배두나가 나오는 뭐 그렇고 그런 로맨스인 것 같고...라고 생각하면서 초반 10분을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어 이거 어떡하지, 이거 진짠데, 이 사람 장난 아닌데, 어 이거 이거...하면서, 나는 놀람을 금치 못했었다. 

그리고나서 무서운 것은 모두 다 훠이 훠이 피해가는 영화 취향인데도 <살인의 추억>을 보았고, 압도 당했고, SF영화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도 <괴물>을 보았고 또 압도 당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 <마더>. 이전의 영화들이 - 옴니버스였던 <도쿄>의 히키코모리 영화까지 포함하여 - 모두 감독의 힘이 90이었다고 내 나름대로 틀린 정의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은 명실공히 '김혜자'라는 인간의 영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흔쾌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던 것이다. 봉준호에게 힘을 실어줄, 90이나 쏟아내지 않아도 될 배우들은 곁에 늘 있었겠고, 그것이 그의 영화를 풍성하게 해주었고, 이제 '김혜자'가 그 클라이맥스를 이뤄냈다. 그리하여 한국 영화는 미치도록 아름다운 시퀀스들을 만들어 내었다.  

감사합니다.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어머니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뱀발: 영화를 보고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무리의 어머니들이 (대략 60대로 보이신다) "에유 영화 참 그지같기도 하지, 이걸 보러 여기까지 오다니, 다음엔 정말 재미난 것 봅시다"라고 하신다. 흑, 감독님 다음번에 영화 하기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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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6-2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정말요? 우리엄마는 영락없는 조폭코미디취향이신데도, 이 영화는 참 좋아하시던데, 그래서 봉준호는 전방위 소통까지 해낼 수 있는 대감독이라고 했었는데, 아, 그게 아니군요, 아, 아, 그랬구나....

치니 2009-06-22 09:36   좋아요 0 | URL
웬디양 어머니는 웬디양 어머니니까 그러신 듯(? ㅋㅋ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리라 믿으면서)해요.
사실 어머니들 뿐 아니라 젊은 분들 중에서도 이게 뭥미 라는 표정이신 분들 많던데요. ㅋㅋ

라로 2009-06-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한 댓글이지만 페넬로페 크루즈가 탐과 헤어진게 잘한거란는 생각,,,,,,,,,페넬로페,,,얼굴만 이쁜줄 알았었거든요~ㅎㅎㅎ이 영화 저도 참 인상깊게 봤어요,,,인물 설정도 넘 좋았고,,,더구나 잘난척 잘하는 제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도 했고,,,ㅎㅎ

치니 2009-06-22 09:37   좋아요 0 | URL
하하, 이런 엉뚱한 댓글 좋아요~
그렇죠? 아무래도 페넬로페가 마이 아까웠죠.
얼마전 본 <비키 크리스티나...>에서는 얼마나 아름답던지, 숨이 막힐 지경.

저도 코가 납작, 마음이 디게 묵직해지더라구요.

2009-06-2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