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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가무연구소
니노미야 토모코 글, 고현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아쉽게도 이제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공감할 건덕지가 별로 없다.
술을 먹으면서 생기는 숱한 에피소드들이 이제 남 이야기 같아진 것이다.
먹어도 많이 먹지도 않고, 먹는 사람들도 한정적이며, 무엇보다 예전만큼 자주 먹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만화를 읽으면서 나는, 술 보다는 술과 함께 먹고 있는 안주에 더 군침을 흘렸고, 술 먹고 헤롱헤롱 일도 못하고 기억도 못하는 주인공에 공감하기보다는 으이그 쯧쯧 민폐만 끼치고 사는구먼 싶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내일이야 어떻게 되든 술이나 퍼먹고 널부러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특별히 최근에 긴장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화가 나는 일도 없고 단지 조금 피곤하다 느껴질 뿐인 목요일에, 왜.
아마 가을이라 그런가보다.
가을에는 여름에 널부러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그러니까 더위에 축 늘어지는 것과는 다른, 허무와 우수를 깔고 늘어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은 고정관념이 작동한 거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오래한 패턴 때문에, 내일이 쉬는 날이 아니면 힘차게 먹어주지 못하고 중도에 자제해야 했던 것이 왠지 갑자기 억울한 지도 모른다.
이렇게,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술 먹고싶다' 한마디만 하면 될 걸 가지고 수많은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핑곗거리를 대고 매일 술을 마신다.
이 풍진 세상, 술 없어서는 안되지 싶은 생각이 마구 드는 날이다.
그러고보니, 책 제목은 음주가무연구소인데, 가무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구나. 나이트고 고고장이고 클럽이고 , 우선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딱 질색이라 그런데서 춤 추는 것도 싫어하고, 노래방도 맘 맞는 친구들하고가 아니면 별로인 내게는 있어도 안보이는 투명 단어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