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 밤에 하릴없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찮게 학력위조에 대한 프로그램만 두 개를 봤다.
원래는 우아하게 루쉰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루쉰이 딱 지겨워지면서 머리를 텅 비워버리고 싶어졌다.
나가기도 귀찮고, 술도 먹기 싫고, 담배도 목 아플 것 같고, 그냥 티비를 틀었는데 '태왕사신기'인가를 보니 욘사마도 미쳤고 문소리도 미친 것 같아 보여서 5분 이상 제정신으로 그 만화를 볼 수가 없었다.
EBS에서는 다큐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죽도록 미워하는 모기에 대한 다큐여서, 보기도 징그러워 돌리고...
그럼 그냥 리모콘을 놓아버리지, 왜 자꾸 채널을 돌려대는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어 하던 차에, 예의 학력위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터뷰를 모아놓은듯한 프로를 보게 되었다.
소위 Bad & Good이라나.
학력위조에 대해 좋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겠냐마는, 적어도 연예인에게만 몰아쳐대는 양상에 대해 감싸고 드는 의견을 Good이라고 한건가부다.
보고 있다보니, 인터뷰를 하는 대개의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한 것 같지도 않고 - 나처럼 - 단순히 연예인 누구누구가 학력 속였다더라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정보를 갖고 있지도 않은거 같아 보였다.
지금껏 봐온 바에 의하면, 현대의 미디어는(적어도 티비는), 어떤 사건에 대해 다면적인 사회 상황을 총망라해서 보여주거나 이면을 보여줄만큼 부지런하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그냥 이슈가 되는 것을 챙겨서 도발적으로 보도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결국 시청율을 높이는걸로 밖에 안 보인다. 너무했나.
솔직히, 이런 프로그램을 볼 때는, 인터뷰 당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얼굴 표정, 잘생기고 못생김, 세련되고 안 세련됨, 투박함과 명료함, 등등을 나 나름대로 상상하고 재단하는 맛에 본다.
미리 각본을 짜는 경우도 있겠지만 길거리 인터뷰는 짠다 하더라도 시간이 짧을테니, 그나마 생동감이 있어서 그런 재미가 (찾으려면) 있다.
그러구나서, 또 채널을 돌리다보니 YTN에서는 신정아씨의 학력위조 관련 보도를 근 30분에 걸쳐 장황하게 하고 있었다. 아마 스페셜 기획인가보다.
예전에 린다 킴 사태와 너무 흡사하다 라는게 결론 같지도 않은 결론이었는데,
내 머릿속을 계속 떠나지 않는 생각은,
"린다 킴은 그렇다 치고, 신정아는 대체 왜 [미모]의 [젊고 머리 좋은] 팜므 파탈 같은 이미지로 세워주는거지? " 라는 것 하나.
어디 가서 절대 돋보이지 않는 비루한 몸매에 어색하게 그린 눈썹 때문에 전체적으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30대 조그만 여자가,
정계의 윗자리에 앉은 머시기 실장이 후원해주었다는 이유로 미인계로 성공했다는 식의 시나리오가 나오고 모두가 그걸 전제로 해서 이야기하니까, 픽 하고 웃음만 난다.
뭐 제 눈에 안경이니까, 그냥 실장님의 스타일에 맞았는지, 아니면 정말 그들만의 솔 메이트 적인 교감이 있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두리뭉실 신정아씨가 미인계가 되어버린 거는 , 참, 학력위조보다 더 씁쓸하다고 하면, 과장이려나.
이 세상에 위조하는 것이 학력 뿐이겠나, 어디.
내 먼지부터 훑어보고 남 욕해야지 싶다, 그냥.
내가 먼저 뭐라고도 안했는데, 누군가가 나에 대해 사회가 좋아라 하는 어떤 위치를 들이대고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버선발로 뛰쳐나가 그사람을 애써 찾아서 해명하려는 사람, 많지는 않을것 같다.
나도 어디선가 애매한 얼굴로, 모르쇠 한게 한두가지이겠는가 말이다.
(쓰다보니, 그런 짓을 한 연예인들을 감싸주는 느낌이 되어버렸는데, 실은 그렇지는 않다, 감정적으로는 한심해서 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게 더 쎄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신정아씨의 어쩔 수 없이 진행된 기하학적 거짓말보다 보도하는 사람들의 그놈의 [미인계]소리가 더 듣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