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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ers for Algernon (Mass Market Paperback) - 『엘저넌에게 꽃을』원서
다니엘 키스 지음 / Harcourt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엄마의 잘못된 사랑으로 인해 오해하던 시절을 제외하면, 한번도 내 머리가 매우 좋다는 생각은 못해봤다. 한 때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부럽다기보다는 안되었다는 쪽이다. 머리 좋으면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에…머리 좋은 사람들은 머리 나쁜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알고 있는 게 많기 때문에 그만큼 할 일도 많아진단 말이다. 크흐.
내가 아는 머리 좋은 사람들은 대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 대상이 자기보다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할 때, 특히 그렇다.
그들의 대화는 보통 이렇다.
머리 나쁜 A: ….해서 ….한데, ….하였더니, ….하고….하다고 생각하는데…
머리 좋은 B:....하고 ….하면 되겠네, 안그래? (이 대답조차도 상대의 말을 다 듣고 하는 경우보다는 도중에 가로 막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
머리가 좋으면 아무래도 다른 사람보다 현상에 대한 파악이 빠르고 그에 대한 대처도 빠르기는 하겠다만, 하지 않아도 될 생각도 많이 하는 것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을 하고 무언가 판단을 하고나면, 예의 남의 말 안 듣기 습관까지 겹쳐서, 자신이 하는 생각이 가장 우선이고 자신이 내린 판단이 가장 올바르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지 않거나 모르는 사람을 무시하게 되곤 한다.
머리가 좋은데, 왜 그런 오류를 모르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머리가 ‘좋기’때문이다.
하하.
(눈치 챘겠지만, 여기서 머리가 좋다는 말은 그냥 IQ가 숫자적으로 좋다는 말이지, 지혜롭다거나 현명하다는 것이랑은 별개다.)
알저넌이라는 생체실험용 쥐에게서 성공한 머리 좋아지는 수술을 받은 찰리 고든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아이큐가 좋은 것으로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영역은 생각보다 극히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또 아이큐가 낮은 것으로 인간이 해를 입는 영역이 생각보다 극단적으로 많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생긴 트라우마 때문인지 고든의 머리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머리가 좋아졌기 때문에 잃은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난 뒤에 수술 부작용으로 저능아 고든으로 퇴화 되는 와중에도 읽고 쓰는 것만큼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보았음직한 마법인, ‘갑자기 머리가 엄청 좋아지기’가 소재인데다가 일반적인 지능의 사람들이 자기보다 조금 뇌 발달이 덜 되었을 뿐인 장애자들에게 행하는 몰이해와 무배려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이미 성공을 보장 받고 있다. 이런 배경이 주는 보장과 더불어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전체를 기술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안전하기까지 하다. 뇌수술 그 자체에 대한 도덕적인 잣대나 실제 의학의 발달에 대한 집요한 탐구 없이도, 아무것도 모르는 저능 어른 찰리의 시선으로만 편안하게 맥락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
이런 조금은 얄미운 책략(?)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감동적이기도 하고 알차기도 하다.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의학의 힘을 빌어 마법을 썼거나 말았거나,
모든 인간이 느끼는 생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과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도전과 좌절, 가족이라는 딜레마, 사랑이라는 딜레마, 육체와 영혼 사이의 딜레마 … 등에 대한 묘사가 두루 상세하게 펼쳐져 있어서 자못 진지하게 재미를 느끼는 대목이 많다.
그나저나 번역본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영문판을 택했더니 1주 걸릴 책을 1달이나 걸려서 읽었다. 휴. 게다가 지금 알라딘에 와서 다른 리뷰를 보기 전까지는, 알저넌이 아니라 알거넌으로 발음하는 줄 알고 있었다. ㅋ 제목도 제대로 모르고 어디 가서 말했다간 쪽 팔릴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