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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스등 이펙트'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와 그를 이상화하고 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병리적 심리 현상을 뜻한다. 저자 로빈 스턴은 20여 년간 심리치료사로서 많은 사례를 다루는 과정에서 이 현상에 대해 고전 영화 '가스등'의 이름을 따 '가스등 이펙트'라 정의하였다.
영화 '가스등'에서 남편은 아내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아간다. 다락방에 불을 켜면 아내의 방에 있는 가스등의 불이 희미해지곤 했는데 아내 혼자서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고 그것은 정신이 이상해서 그런 것이라고 세뇌한다. 마침내 아내는 남편의 말을 점점 믿게 되어 무기력한 사람이 된다.
저자는 이러한 '가스등 이펙트'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나는 이미 유능하고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남의 인정을 받거나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이야기 한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생활 가운데 많고 적게 이런 경험을 한다. 오늘 입은 옷이 우스꽝스러운 것은 아닌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데 그게 내 머리 모양 때문은 아닌지, 사소한 다툼 중에 상대방이 던진 말에 쉽게 상처받고 모든 일이 나의 탓인 것처럼 느끼곤 한다. 이 책에서는 몇 가지 사례를 표본으로 삼고 '가스등 이펙트'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유형은 무엇이 있는지, 그 중한 정도를 3단계로 나누고 어느 쪽에 속하는지,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서술해 두었다. 사이사이에 나오는 작은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휘둘리고 있는 '가스등 이펙트'를 체크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얼마동안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이상하다고 느껴왔는데 이 책을 훑어보고 혹시 내가 '가스등 이펙트'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책에서는 가스등 이펙트를 3개의 단계로 나눠놓고 1에서 3으로 갈수록 심한 것이라 정의한다. 책을 읽다 보니 나는 줄곧 2단계에 머물러왔으며 근래에는 3단계로 넘어가고 있어서 나 스스로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2단계의 대부분과 3단계의 일부에 해당한다는 것에 많은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도 이 책은 충격 자체로도 꽤 위안을 준다. 심리치료사로 일 해온 저자의 글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막연하게 느끼던 우울함과 무기력함 따위를 이 책에 있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나 혼자만이 가진 것이 아닌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고, 각 단계별로 그 상황을 벗어나거나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에 직접 상담을 받는 것 같이 안심이 되었다.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들이 어떻게 보면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 뒤죽박죽 섞여있던 불안감과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이 될 것이다. 내 친구 중에서도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심리적 상담을 원하는 아이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심리 상담은 정신치료라고 확대 해석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편이라 생각했는지 돌파구를 찾지 못해 상당히 괴로워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책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상담 체계를 잘 갖추어서 여러 가지 작은 심리적 동요가 정신적 질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소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