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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퍽 하고 맞는 순간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렇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 <가마타 행진곡>-제2차 대전 이전에 있었던 마쓰다케 키네마 가마타 활영소의 소가. 노래 가사에 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과 사랑을 담았다.-의 멜로디가 흘렀다. 그러면 다시 힘이 불끈 솟았다. 그 옛날에 피었던 꽃, 가마타 엑스트라들의 기상을 나 혼자 힘으로라도 길어 올릴 작정이니까. -47
누구나 살면서 주인공을 꿈꾼다. 아주 어린애만 아니라면 '나도 한때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번쯤 과거를 회상해본적도 있을것이다. 예전에는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만을 최고로 여기던때가 있었다. 요즘은 오히려 변화무쌍한 조연들의 활약에 반하는 관객들이 많아졌지만 옛날 같으면 생각하기 힘들었을 얘기다. 이 책을 쓴 쓰카 고헤이는 재일교포로서 비주류가 느끼는 고뇌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일본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작가로서 연극계에서도 많은 연출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주류의 단맛도 꽤 누렸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경험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엑스트라인 야스와 주인공인 긴짱의 심리를 이렇게 재미나게 그릴수 있는 것도 그 덕이 아닐까.
긴짱은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아 흥분된 상태이다. 그의 주위에는 '라인업'을 세운듯 여러 엑스트라가 포진하고 있다. 그 중 야스라는 사내는 긴짱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표현한다. 그가 죽으라면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충성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동네 똘마니를 모아놓고 왕초 행세를 하는 겉멋 잔뜩 든 양아치와 똘마니 한명을 보는 것 같다. 긴짱은 성격이 워낙 괴팍하고 우왁스럽지만 여우같은면이 있어서 사람들은 그를 따를수밖에 없다. 보고있는 나로서는 실제 칼로 찔리고 죽기 직전까지 쳐 맞아야 하는 야스의 모습이 안쓰럽고 어느때는 '넌 왜 그렇게 멍청하냐'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야쓰 자신은 그게 숙명인듯 받아들인다. 그야말로 주인을 따르는 개처럼 사는 것이 야스다. 긴짱의 여자였던 고나쓰는 임신하게 되지만 배우로서 상승세인 긴짱으로서는 고나쓰가 장애물이 될것 같아 막무가내로 야스에게 그녀와 결혼하라고 명령한다. 야스는 긴짱의 명령이니 예-예- 하며 따르고 고나쓰도 처음엔 야스가 못나서 싫었지만 점차 그의 성실함에 안심하고 마음을 주게 된다. 둘이 사이좋게 잘 살았다고 유쾌하게 끝나면 참 좋았을텐데 야스는 죽어도 긴짱을 위해 위험천만한 '계단추락' 장면을 찍겠다고 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진 고나쓰에게는 실망만 안겨준다. 어쩌면 '계단추락' 장면은 야스에게 있어서 오르지 못할 나무인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저것은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한계를 단정짓는 야스도 사실은 한번쯤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은 것이다.
가슴 뭉클한 감동은 아니더라도 이 작은 책은 참 유쾌하다. 엑스트라가 주인공인 이야기라는 소재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긴짱과 야스, 고나쓰 등의 캐릭터가 맛깔나게 그려져있다. 결말이 조금은 아쉬움을 주지만 바꿔 말하면 여운이랄까. 독자 나름으로 이것저것 생각할 틈을 남겨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결말이 더욱 극적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내 영화화 할 예정이라는데 과연 영화에서는 '우리 모두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일반적 결말에 이를것인지, 나름의 결말을 만들것인지 궁금하다. 나름 독특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어떤 배우들이 선택될까? 영화는 엑스트라가 주인공이고 주인공이 엑스트라인 재미있는 구조가 될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