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블루 -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
김영숙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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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파리의 겨울은 굉장히 우중충하다. 우울하다고 표현해야하나? 런던이야 계속 비가 내리고 흐린날이 많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습하고 어두운 날이 계속되어도 그러려니 했지만 파리에 갔을때는 특유의 음울함에 놀랐다.


 그것도 벌써 몇해 전이다. 이상기온 때문에 전에 없이 날이 추웠고, 100년만인가 여하튼 폭설이 쏟아지는 속에서도 아랑곳 없이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사실 영국에 갈 생각에 들떠서 나머지 여행 일정인 파리와 이탈리아는 기대도 하지 않았고, 현지의 날씨가 어떤게 정상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나로서는 내가 있었던 그날들의 날씨와 공기, 냄새 그대로 '파리'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파리블루'라는 제목이 눈에 확 띄었다. 게다가 '미술관 스케치'라고 했다. 나는 짧은 여행중에 하루중 절반 이상을 미술관 안에서 보냈다. 배가 고픈데도 참아가며 그 넓은 미술관을 구석구석 보고 또 보느라 갈비뼈가 쑤실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에 대해 박식한 사람도 아니고, 원래부터 미술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여행가기 전부터 유럽에 가면 꼭 미술관은 들러보리라 마음먹었고, 그 계획에 충실했다.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내가 이름이나마 들어봤던 유명 화가와 그림 말고도 볼만한게 많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한자리에서 몇분이고 서서 본 그림이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겠지만 당시에 나는 화가라면 고흐 정도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영감(?)을 주는 그림이 있으면 무조건 메모해두었다. 이것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었는데, 일정이 짧아서 그동안 하나의 미술관을 다시 오기 어려웠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나마도 못볼게 뻔하므로 이름이라도 적어두었다가 인터넷 사진이라도 보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국내 전시되는 유명 화가의 전시회가 많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서 나는 그림 보는 재미라는 것을 알았고 그 후로 지금까지 손에 꼽히지만 몇권에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 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큰 경험이었기에 이 책, [파리블루]를 손에 들고 한껏 들떠있었다. 여행을 다녀온지 수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 봤던 그림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을때가 많아서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을 이 책을 보며 그날의 기억을 돌이키면서 달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표지에서 덧붙여진 글 같이 미술관에 대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책 표지에 적힌대로 '미술관 스케치'에 대한 내용 뿐이었다면 '파리'를 떠올리는것이 더 어려웠을것 같다. 그림은 그림대로 어떻게든 볼 수 있지만 파리를 느끼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작정 작가가 부러워졌다. 당시에 나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미친사람처럼 이끌려 파리로 떠났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아쉬움 따위 느껴지지 않을만큼 덤덤했다. 오히려 비행기표값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여행이 별로였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행 후의 후유증은 꽤 길었다. (지금도 후유증이 심함ㅠㅠ) 약 2주간이었지만 그 곳에서 머물렀던 때에 불었던 바람, 비, 습도, 냄새 등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겨울만 되면 향수병 비슷하게 앓는다. 여름에도 장마가 계속되는 우중충한날이 되면 파리가 떠오른다. 맑은날을 좋아했는데 비가 오는 날도 좋아졌다. 사랑에 빠지고 난 후 처럼 일년에도 몇번이고 앓는다. 그래서 그녀가 많이 부러웠다^^


 요즘에는 나에게만 봄이 오지 않은것 같은 착각을 하며 산다. 그래서 내 기억속에 언제나 겨울로 남아있는 파리로 도망치고 싶다. 지금은 그때보다 용기도 없고, 돈도 없고, 여유도 없기에 묶여있는 나를 위해서 참 잘 읽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에 대한 내용이 좀 아쉽지만 실려있는 사진들도 즐겁게 감상했다.

 


p.s. 파리에 간다면 꼭 겨울에 한번 다녀오시길^^ 완전최고 완전중독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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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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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면 이 책을 좀 더 멋있게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았지만 책을 읽고난 후 여러 생각이 뒤섞여서 정신이 쏙 빠졌다. 이 책을 쓴 존 우드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호주, 중국지사 이사를 맡았다. 미칠듯이 바쁜 수년간의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3주간 휴가를 얻어 떠난 히말라야 여행 후 그는 스스로의 신념을 뿌리부터 뒤바꾸게 된다. 네팔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이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가난했다. 하지만 그는 네팔인들이 가난해서 슬퍼한것이 아니다.


 

 이 책을 통해 세계 인구 중 문맹은 자그마치 8억5천명(UN통계)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들 7명 중 한명이 문맹이고 이는 한 학급 40명 당 약 6명이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유치원 때부터 외국어를 배우고 초등학생이 되면 특목고 반에 진학하여 영재교육을 받는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한 반에 6명이나 한글을 못 읽는다는 것은 코미디보다 더 우습고 슬픈 일이다. 문맹의 3분의 2는 여성인데 아이들이 태어나서 보통 어머니에게 말을 배운다고 가정하면 문맹이 다음세대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히말라야에 간 존 우드는 숙소에서 우연히 학교 재정담당을 맡고 있다는 네팔인을 만나 마을 학교를 방문한다. 거기에서 그는 열악한 학교 환경과 도서관이 없거나, 있어도 그 안에는 책이 없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여행자들이 버리고(놓고^^) 간 듯한 몇권의 책은 그대로 캐비닛에 넣어져 자물쇠로 채워져 있을 뿐이니 아이들은 책을 만질수도 없다. 그나마 그런 책들도 성인잡지라거나 아이들이 볼 수 없는 책이 많았고, 학교에서 쓰는 교재도 서너명이 함께 닳도록 읽는 형편이었다. 학교장은 존 우드에게 다음에 꼭 책을 가지고 다시 와달라고 말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약속을 하고 갔지만 실제로 다시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존 우드는 히말라야에서 영혼의 울렁임을 느꼈다. 회사로 복귀한 그는 예전같지 않게 주변을 보게 되었다. 그저 업무에 바빠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도 했지만, 예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여행을 통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거대한 기업에서의 화려한 삶을 포기하기 힘들었지만 네팔인들을 위해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그는 자기의 경력, 회사, 엄청난 연봉을 포함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애인과도 이별한다.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고 ‘도서관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간 쌓아온 인맥을 통해 많은 힘을 모아 시작한 프로젝트는 차츰 모양을 갖추고 성장하게 되었다. 그가 말한대로 그가 최고의 자리에서 일했던 경험들은 크고 작은 도움이 되었다. 그의 부모님과 친구들 또한 적극 지원해주었다. 사람들은 흔히 ‘두마리 토끼를 잡기는 힘들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부분은 한쪽 토끼는 포기한채 한 마리만으로 만족하거나 포기한 토끼를 아쉬워한다. 존 우드는 일단 한 마리 토끼를 포기했지만 결국 두 마리 모두 가진게 아닌가 싶다.


 

 많은 생각을 뒤로하고 단 하나 ‘응원의 박수’만을 남기며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용기를 얻고, 주는 경험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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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페이스
아미티지 트레일 외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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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가 꺅-하고 들릴것만 같은 책 표지를 보고 이름모를 흑백 영화들을 떠올렸다. 비장함이 감도는 배경음악과 함께 고요하던 장소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리는 극적인 장면들 말이다. 꼭 그런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이 없더라도 어디선가 한 장면씩 본 기억을 떠올릴수 있을것이다. ‘하드보일드 하드럭’이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었을 때 도대체 ‘하드보일드’가 무슨 말인지 알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았지만 알수 없는 설명문은 복잡한 머릿속을 더욱 엉키게할 뿐이었다.


 

하드보일드

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비정 ·냉혹’이란 뜻의 문학용어가 되었다. 개괄적으로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로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이 수법은 특히 추리소설에서 추리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는 하나의 유형으로서 ‘하드보일드파’를 낳게 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84829]


 

 봐라, 엉키나 안 엉키나.


 

 근 5년을 답답함으로 살아오던 나는 ‘스카페이스’를 읽고 드디어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는 시원함을 느낀다.(아직 완전히 풀린건 아니지만ㅠㅠ) 표지를 보고 떠올렸던 영화 속 장면들도 ‘하드보일드’적인 것이라고 한다. 나처럼 다소 음울하고 무겁고 거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도 분명 읽을만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스카페이스’라는 동명의 영화를 검색해보았다. 눈에 띄는 것은 ‘알 파치노’라는 이름이다. ‘여인의 향기’, ‘대부’ 등 굵직한 영화를 장식했던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이 책은 꼭 읽어야겠군 싶었다. 다만 두명의 작가가 쓴 두가지 소설이 한 책에 실리게 된 이유가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다. 동인지가 아니라면 굳이 함께 출판할 이유가 없지 않나 하고 말이다. 이 책에는 ‘아미티지 트레일‘의 ’스카페이스’와 호레이스 스텐리 맥코이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가 함께 실려있다. 두 작품 모두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스카페이스가 더 대중에게 알려진것 같다. 두 사람의 소설이 함께 실린 것은 모두 ‘하드보일드’의 한 획을 그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를 연발하며 증오심만을 표출하는 여자와 1000시간 남짓을 쉬지않고 춤춰야하는 댄스 마라톤에 참가한다면 나는 곧 그곳을 박차고 나오던가 여자와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워서라도 결판을 내던가 아니면 그 입을 재봉틀로 박아버렸을것 같다. 글로리아와 함께 있었던 로버트는 계속해서 참을 인을 새겨넣지만 글로리아를 죽이고 만다. 그런데 이건 ‘살인’이라고 하기가 껄끄럽다. 그녀가 ‘죽여달라’고 그에게 부탁했고 그는 이것이 죽고싶어 안달이 난 글로리아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일것 같지만 ‘그들은 말을 쏘았다’는 댄스 마라톤 대회의 모습을 더 많이 그리고 있다. 요건 정말 영화로 꼭 한번 보고 싶을 정도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가며 재미있게 읽었다. 실제로 이런 경연대회가 미국에 있었고, 경제 공황 때 거렁뱅이가 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얼굴의 흉터 때문에 ‘스카페이스’라는 별명을 가진 토니는 전설적인 갱을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카페이스’에는 금주법이 있던 시대에 몰래 술 거래를 하는 갱단과 비리형사 등이 등장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왠지 ‘대부’를 떠올렸는데 조직이 등장하는 것 말고도 '알 파치노’라는 공통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두 작품 모두 영화화 되었다고 하는데 역시나 읽는 내내 장면들이 눈으로 그려지고 귀로 들려오는 것 같아서 더욱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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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전
쓰카 고헤이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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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카 고헤이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얼마전 ‘가마타 행진곡’을 꽤 재미있게 읽은 후 이 책도 고민 않고 골랐다. 젊은이들의 학생운동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옛날 일본의 젊은이, 사랑이야기, 투쟁’이라고 하면 왠지 영화 ‘박치기’가 생각난다. 그 영화에서는 조선인 학생들과 일본인 학생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는 다르지만 책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과거를 시각적으로 상상하기 쉬워졌다.

 일본 소설은 통통튀는 가벼운 맛이 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창 일본 소설 읽기에 열중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나 또한 대학생일 때에 무료한 지하철에서 일본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떼웠다. 얼마전까지만해도 일본소설이라고 하면 가볍게 읽기 좋은 것이라고 못박고 있었다. 국내에서 상영된 일본영화(인디영화라고 하는 몇몇 영화)를 보고난 후 미개봉 작품도 찾아서 보고나서 소설도 좀 더 다양하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문학인들이 꽤 있다. 도서관에 가서 책들을 죽- 구경하다가 일본 문학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읽고 한편으로는 몹시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분했다. 특히 출생하여 활동했던 시기가 1910~1940년 전후라면 더욱 그랬다. 조선인들을 착취하여 일본은 수많은 예술적 엘리트를 양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이다. 그런 양가감정을 가지고 한 두작품인가 읽어보니 여태껏 만났던 일본 소설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어느면에서는 고리타분하지만 무게감이 있달까. 이것은 비단 일본소설 뿐 아니라 한국소설도 가볍고 무거움이 함께 있는 것인데 나는 일본소설은 무조건 가볍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쓰카 고헤이의 본명은 김봉웅으로 재일교포로는 처음 일본의 나오키상을 수상하여 지금까지도 일본 예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자세한 작가 프로필 http://cafe.naver.com/novelmine/1337) 재일교포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간혹 그의 작품에 한국인이 등장하는 것 뿐 대체로 찾아볼 수 없는게 특징이다. 그의 소설은 요즘 유행하는 일본소설과는 조금 다르다. 내 느낌으로는 약간은 신파극 같은 요소를 끼고 음침하고 차갑지만 뜨듯하기도 한 소설을 쓰는 것 같다. ‘가마타 행진곡’을 읽으면서 살짝 그 맛을 보았다면 이번 ‘비룡전’에서는 그의 다른 면모를 본듯하다.

 한국의 학생운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가 일본의 그것을 알기는 힘들것이다. 아주 어릴적에는 ‘학생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몹시 지루했다. 그러다가 대학에 갔고, 그 전까지 지루하게 들었던 ‘대학생의 학생운동‘이 이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 후, 어쩌면 지금도 또다른 학생 운동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이 책에는 그런 주제를 큰 배경삼아 ’혁명‘이라는 표를 들고 몸과 마음을 던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게 분명하다. 하지만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지지고 볶고, 폭발하고, 가라앉고, 울고 웃기를 반복하는 소설을 원한다면 한번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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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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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내가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내가 살던 동네의 아이들은 대부분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동네 골목 어딘가 건물을 짓기 시작한 공사판에서 벽돌 빻아 소꿉놀이를 하거나 모래를 쌓아 성을 만들고 두껍아 노래를 부르며 뛰어놀기 바빴다. 당시 가장 좋은 놀이기구는 낡은 씽씽카였다. 그걸 제외하면 일부 잘사는 집 아이들만이 TV로 조작하는 슈퍼마리오를 가지고 놀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같은반 친구들이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는 내 말에 놀라는 모습을 보고서야 누구나 나와 같은 어린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유치원이라는 곳에 다니긴 했다. 5일인가 7일 속성반이었는데 그 짧은 기간동안 한강에 가서 유람선도 타고 원생들을 모아놓고 졸업사진 비슷한것도 찍었다ㅋ 그때는 지금처럼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배워야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하고싶다고 혹은 하기 싫다고 때를 쓰며 어린아이답게 선택하고 거부하기만 하면 되었다.


 

 내가 스스로 퀴즈신동(!)이라고 철썩같이 믿게 된것은 유치원에 다녀야할 나이였다. 가게에 모인 손님들과 TV에서 장학퀴즈를 보고 있는데 어린 아이가 몇문제를 맞히니 어른들이 귀여워서 칭찬한것을 가지고 나는 좀 우쭐해졌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알고 싶어하고 집적거리게 된것 같다; 요즘은 아쉽게도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 깨닫게 되었지만 TV에서 하는 1:100이라는 프로는 종종 보고 있다.(1명의 도전자와 100인이 떨어질 때까지 10개의 문제를 맞히는 프로그램. 단계가 올라갈수록 금액이 높아진다.) 가족과 둘러앉아 퀴즈를 맞히는 것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순간은 퀴즈의 단계를 성큼성큼 올라가는 것과 참가자의 IQ나 학력 따위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때이다. 한번은 엘리트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배경을 가진 사람이 1인으로 참가했는데 안타깝게도 2번 문제에서 탈락했고 언젠가는 엘리트 100인 중에 절반 이상이 낮은 단계 문제에서 와르르 탈락했었다. 나도 몇 개나 맞히는 문제를 대한민국 2%의 인재일 저 사람이 저렇게 떨어지다니 하고 나는 또 한번 으쓱했고, 최후에 남은 1인이 평범한 사람일 때에는 또 한번 뭔지 모를 스릴을 느꼈다.


 

 Q&A를 쓴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는 인도 출신으로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다. 인도에는 아직도 계급주의가 사람들이 사는데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작가의 프로필을 보고 인도의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난 외교관 출신이 쓴 소설이겠거니 지레 짐작을 했다. 천만다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비카스 스와루프에게 경의를 표했다. (앗, 다시 생각해보니 빵빵한 집안 출신에, 외교관으로 일하며 등따숩게 사는 사람이 글까지 잘쓰다니 너무 불공평한것 같기도 하다ㅋ)


 

 ‘람 모하마드 토마스‘라는 별별 종교가 뒤섞인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고아로 버려져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그가 인도에서 태어났고, 인도 출신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의 주인공임에 감사한다. 아마 나라면 그런 삶을 살면서 한우 고기에 마블링 쏙쏙 박아넣은 것처럼 위트 넘치게 이야기를 풀어놓지는 못하리라. 토마스는 ’W3B: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가?’라는 퀴즈쇼에 나가 12문제면 끝날 퀴즈를 13문제나 맞히고는 우승하여 10억루피 상금을 탔다. 그러나 퀴즈쇼 는 (참가자만 빼고) 철저하게 각본에 의해 진행되어야 했고, 예기치 못하게 10억루피를 지급하게 생긴 담당자들은 토마스가 고아에 빈민굴 출신이고 바텐더를 하는 어린 소년에 불과한데 1등을 할리 만무하다며 속임수를 쓴게 분명하다고 경찰에 고발한다.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던 그에게 변호사 스미타 샤가 신문에서 토마스의 이야기를 읽었다며 찾아와서 그를 돕겠다고 나선다. 토마스는 변호사에게 자기가 어떻게 퀴즈쇼 문제를 모두 맞히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인데 그 우여곡절이 얼마나 재미있고 안타깝고 놀라운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특히 마지막 장의 이야기에서는 얼마나 놀랐는지... 아마 누구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놓을 수 없는 책이 될 것이다.


 

 작가는 퀴즈쇼의 우승자는 언제나 예측 가능하다는 것을 비틀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퀴즈쇼에서 필요한 것은 지식인들의 고급 두뇌가 아니라 생활에서 체득하는 지혜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다. 내가 TV 퀴즈쇼를 보며 퀴즈를 곧잘 맞히고, 영재 출신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1등 상금을 획득할 수 있는 것도 퀴즈는 지식 싸움이 아닌 경험 싸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토마스의 인생은 시작부터 쪽박이었지만 그의 어제는 한날씩 모여 오늘의 대박을 만들었다. 소문만큼이나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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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0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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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2 07: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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