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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블루 -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
김영숙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파리의 겨울은 굉장히 우중충하다. 우울하다고 표현해야하나? 런던이야 계속 비가 내리고 흐린날이 많다는걸 알고 있었기에 습하고 어두운 날이 계속되어도 그러려니 했지만 파리에 갔을때는 특유의 음울함에 놀랐다.
그것도 벌써 몇해 전이다. 이상기온 때문에 전에 없이 날이 추웠고, 100년만인가 여하튼 폭설이 쏟아지는 속에서도 아랑곳 없이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사실 영국에 갈 생각에 들떠서 나머지 여행 일정인 파리와 이탈리아는 기대도 하지 않았고, 현지의 날씨가 어떤게 정상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나로서는 내가 있었던 그날들의 날씨와 공기, 냄새 그대로 '파리'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파리블루'라는 제목이 눈에 확 띄었다. 게다가 '미술관 스케치'라고 했다. 나는 짧은 여행중에 하루중 절반 이상을 미술관 안에서 보냈다. 배가 고픈데도 참아가며 그 넓은 미술관을 구석구석 보고 또 보느라 갈비뼈가 쑤실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에 대해 박식한 사람도 아니고, 원래부터 미술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여행가기 전부터 유럽에 가면 꼭 미술관은 들러보리라 마음먹었고, 그 계획에 충실했다.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내가 이름이나마 들어봤던 유명 화가와 그림 말고도 볼만한게 많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한자리에서 몇분이고 서서 본 그림이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겠지만 당시에 나는 화가라면 고흐 정도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언가 영감(?)을 주는 그림이 있으면 무조건 메모해두었다. 이것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었는데, 일정이 짧아서 그동안 하나의 미술관을 다시 오기 어려웠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나마도 못볼게 뻔하므로 이름이라도 적어두었다가 인터넷 사진이라도 보자 하는 생각에서였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국내 전시되는 유명 화가의 전시회가 많지 않았다.)
여행을 통해서 나는 그림 보는 재미라는 것을 알았고 그 후로 지금까지 손에 꼽히지만 몇권에 그림책을 읽었다. 그림 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큰 경험이었기에 이 책, [파리블루]를 손에 들고 한껏 들떠있었다. 여행을 다녀온지 수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 봤던 그림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을때가 많아서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을 이 책을 보며 그날의 기억을 돌이키면서 달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표지에서 덧붙여진 글 같이 미술관에 대한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책 표지에 적힌대로 '미술관 스케치'에 대한 내용 뿐이었다면 '파리'를 떠올리는것이 더 어려웠을것 같다. 그림은 그림대로 어떻게든 볼 수 있지만 파리를 느끼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작정 작가가 부러워졌다. 당시에 나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미친사람처럼 이끌려 파리로 떠났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조차 아쉬움 따위 느껴지지 않을만큼 덤덤했다. 오히려 비행기표값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여행이 별로였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행 후의 후유증은 꽤 길었다. (지금도 후유증이 심함ㅠㅠ) 약 2주간이었지만 그 곳에서 머물렀던 때에 불었던 바람, 비, 습도, 냄새 등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겨울만 되면 향수병 비슷하게 앓는다. 여름에도 장마가 계속되는 우중충한날이 되면 파리가 떠오른다. 맑은날을 좋아했는데 비가 오는 날도 좋아졌다. 사랑에 빠지고 난 후 처럼 일년에도 몇번이고 앓는다. 그래서 그녀가 많이 부러웠다^^
요즘에는 나에게만 봄이 오지 않은것 같은 착각을 하며 산다. 그래서 내 기억속에 언제나 겨울로 남아있는 파리로 도망치고 싶다. 지금은 그때보다 용기도 없고, 돈도 없고, 여유도 없기에 묶여있는 나를 위해서 참 잘 읽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에 대한 내용이 좀 아쉽지만 실려있는 사진들도 즐겁게 감상했다.
p.s. 파리에 간다면 꼭 겨울에 한번 다녀오시길^^ 완전최고 완전중독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