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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되는 비밀스런 이야기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금서’로 지정될 정도의 책에 ‘성장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건 좀 아이러니하다. 미국의 도덕주의자들은 이 책을 ‘금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학생들과 인권주의자들은 ‘필독서’라고 추천하며 금서 지정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성장소설을 가지고 금서 논란을 일으키다니 도덕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활약이 대단한가보다. 자살, 마약, 섹스, 성폭력 등을 소재로 하였기 때문일게다.
이상하게도 서양의 청소년들은 개방적일거란 생각을 했었나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skins라는 영국 드라마가 생각났는데 그 때에도 ‘이걸 영국에서도 심야에 방영한다는 말이지?’하고 의아했었다.(현지에서는 청소년 드라마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했었다;;) 해외토픽이라든지 월드뉴스 같은데서 오늘 15살의 샐리는 학교에 가서 입시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방과후에도 열공했다,는 뻔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영국 청소년들의 마약 중독이 심각하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까 마치 대부분의 외국 아이들이 그런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살았나보다. 아무튼 한국이나 외국이나 가치관과 문화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청소년을 포함한 어린 아이에 대한 보호(혹은 규제)는 엄격한가보다.
내가 본 드라마 SKINS는 분명 19딱지를 달고 있었지만 그 때에도 상당히 많은 19세 이하 학생들이 애청자였고, 케이블 TV에서 방영한 후로는 시청자의 대부분이 청소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기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케이블에서 틀어주는 것도 무삭제 19금인지는 모르겠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아이들은 저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애들이 느끼는 질풍노도의 시기는 다 비슷비슷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월플라워’가 금서로 지정된 성장소설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skins'와 비교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둘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물론 영상으로 보는 skins가 좀 더 이해하기 쉽고, 재미도 있었지만 이 책 또한 텔레비전 시리즈로 만들어질거라니 기대해볼만 하다.(skins랑 주인공만 다르고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영국에 skins가 있다면 월플라워는 미국의 skins라고 하면 될것 같다.
주인공 찰리는 막 고등학교 입학을 한 남자아이다. 그는 굉장히 조용한 편이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월플라워’다. 월플라워는 벽에 붙어 자라는 그 꽃처럼 ‘파티에서 짝 없이 벽에 붙어 서서 남들 춤추는 것만 구경하는 여자, 혹은 인기 없는 남녀 모두’를 의미한다고 한다. 찰리는 고등학생이 되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본인이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 우울함의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 익명의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약 1년 동안 그는 편지 속에 그의 생활을 적어 보낸다. 친구인 마이클이 죽은 것, 그리고 샘과 패트릭을 만났고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샘을 좋아하게 된 이야기, 첫 키스, 첫 경험, 패트릭의 동성연애 등을 모두 이야기 한다. 그는 작문 실력이 뛰어났는데 빌 선생님은 그에게 앵무새 죽이기,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이방인 같은 책을 읽으라고 주시며 에세이를 쓰라고 한다. 막연하게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리는 빌 선생님이 주신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빌 선생님이 ‘찰리 너는 내가 본 사람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었을 때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을 깨닫는다.
병적 우울함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는 찰리는 자신의 병적 증상인 ‘트라우마’를 찾지 못하고 계속되는 우울함에 괴로워 하는데, 마지막에 그는 어린시절 겪었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되고 그것을 스스로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찰리가 그의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월플라워였던 그가 고등학교에서의 1년동안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세상을 관찰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 가운데서 직접 경험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익명의 친구에게 1년간 일기 쓰듯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 내면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인터넷 하나로 세상 모든 것을 다 구경할 수 있는 세상에 책 한 권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다. 금서냐 아니냐 라는 원칙적인 문제 말고는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모든 매체를 손에 넣어서 경험 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취업난이나 경제공황 같은 것에 스트레스를 느끼듯 청소년들도 그들만의 어두움이 있다. 어른이 되면 좀 더 많은 것을 규제 없이 경험할 수 있기에 그 것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둘씩 찾게 되지만, 청소년들은 자신과 친구들, 세상의 어두움을 발견할 때면 당황하고 두려워 할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각자 ‘익명의 친구’가 되어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듯 찰리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 편지 안에서 본인의 이야기도 떠올려보며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월플라워'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기도 한 드라마 'Sk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