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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샤워 in 라틴 - 만화가 린과 앤군의 판타스틱 남미여행기
윤린 지음 / 미디어윌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여행을 부르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방랑을 꿈꾸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현실을 빙빙 도는 나에게도 때때로 심하게 그런 바람이 분다. 가을에 태어난 나는 유난히 가을을 탄다. 계절이 바뀌려는 바람의 모습은 일년에 네 번씩 알아채지만 가을 만큼은 심하게 눈치채고는 '아! 가을이야' 하고 온몸으로 맞이하게 된다.
한시간 정도, 정말 가자! 하고는 호텔 사이트 검색도 했다. 그런데 막상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모르겠더라. 그렇게 떠나고 싶었는데 '떠나고싶다'는 것 말고는 '어디로, 왜, 어떻게' 같은 건 잊고 있었나보다. 무작정 런던을 가볼까 했지만 여행비용을 충당하기엔 무리가 있고, 막 남아도는 시간 말고는 뭐 하나라도 떠날 수 있는 채비가 안 되어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떠날 수 있을 때 맘껏 그럴 수 있는 여행생활자도 아니기에, 올해도 '초겨울 쯤 비행기 타기'는 무산될 것 같다.
대신 여행서를 둘러보았다. 얼마간 '여행서'란 별 맛 없는 장르에 불과했다. 변덕이 심한 나는 뭐에 푹 빠졌다가도 금새 다른 것에 눈을 돌린다. 소설을 제외하고는 여기 저기로 장르를 옮겨가며 그 변덕을 풀곤 하는데 요즘은 가을 바람과 맞물려서 여행서로 마음을 달래는 중이다.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다른 여행서와 달라보이는 책을 발견했다.
'바람사워 in 라틴' 이라는 제목에서 '바람샤워'라는 문구와 여행기 안에 '만화' 형식으로 꾸며놓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바람이 불면 여행가고 싶어지곤 하는데 그래서 동지를 만난듯 '바람샤워'라는 문구에 빠진 것이다.
사진과 글만 있는 여행서는 천천히 읽기엔 좋지만 자칫 지루해질수 있는데 만화가 들어간 것은 낄낄거리며 읽게 된다. 이 책은 만화가 '린'이 소울메이트 '앤'군과 남미로의 긴 여행기를 쓴 것이다. 여행서라는 기본에 충실하여 풍경 사진, 머무르면서의 에피소드가 들어있고 한 지역에 비교적 장기간 머물렀기 때문에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과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리고 작가가 만화가라는 점을 활용해서 간단한 만화 형식으로 에피소드를 꾸며둔 것을 읽을 때는 절로 웃음이 난다.
남미라고 하면 체 게바라, 브라질 정도가 떠오른다. 남미는 내가 여행하고 싶은 곳 중 3순위 안에 드는 곳인데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여행서를 읽은 기억이 없다. 럭셔리한 관광지(유럽이나 일본 홍콩 미국 등)라면 단기간 빠르게 돌면서 많은 곳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남미의 경우에는 남미 국가 전체를 경유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이민자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린과 앤군'은 한 곳에서 길게는 2달 안팎으로 지내곤 했기 때문에 여행하는 동안 스페인어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친구들도 사귀었고, 내 집처럼 지내면서 바쁜 여행자들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맛보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마치 내 미래의 남미여행을 이 책을 읽으면서 예행연습하는 듯 느껴졌다.
외국 여행을 하면서도 숫기가 없어 외국인에게 말걸기도 쉽지 않고, 나 혼자의 시각으로 외국을 보았을 뿐 현지인들의 목소리는 들을 경험이 없었던게 아쉬웠는데 다음 여행에서는 나도 외국 친구들을 사귀어보고 싶다. 그리고 오래 머물게 되면 '린'처럼 어학원도 다녀야지. (어학연수가 아닌 여행하는 중에 어학원을 다닌다는건 상상해보지 못했는데 참 대단하다! 브라보)
여행지에서 외국의 여행자나 현지인들과 친해지면 생각지 못한 여행경험도 하고, 예정에 없던 여행지를 추천받을 기회도 생긴다. 린과 앤의 여행기에서도 유명하지는 않지만 숨어있는 여행지에서 머문 이야기가 있는데 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여유롭게 여행한 그들이 부러웠다. 비록 수중에 가진 돈이 빠듯한 배낭여행이지만 비싼 기념품을 사서 돌아오는 것보다 사람을 사귀고 여행지를 마음껏 느끼는 것이 더 값진 여행이라는 것을 또 느꼈다.
선물 하려고 같은 책을 두 권 준비했는데 별로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꽤 만족스러워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