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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낭만적인 고양이 트렁크 - 세계 로망 도시를 고양이처럼 제멋대로 여행하는 법
전지영 글.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전지영씨의 여행서 '(나의 낭만적인)고양이 트렁크' 이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남이 쓴 블로그의 여행기나 여행서를 읽으면서 한껏 부푼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내 몸을 이끌고 떠나는 '진짜' 여행의 맛을 알게 되어 여행서를 읽는 재미가 덜 하더랬다.
요즘은 너도 나도 좋은 카메라를 하나씩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듯(지금 세상은 소득 수준에 상관 없는 '소비의 시대'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누구나 예쁜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릴 수 있는 세상이라서 여행서 안에 아무리 잘 찍었더라도 사진만 잔뜩 있으면 별 재미가 없다. 원래 읽는 맛보다 보는 맛이 더 느끼기 쉽고 빠른게 맞는 것일텐데도 요샌 사진이 있는 여행기는 블로그를 통해 보는 걸로 충분하고, 굳이 책으로 읽지는 않는 편이다. (여행기라기 보다는 자랑기(?) 같아서일지도?)
전지영씨의 여행기는 2005년 가을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로 처음 만났다. 그 때에는 <여행 부터 가겠어!> 라고 마음 먹었던 질풍노도의 가을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종로에 가서 여행서를 골랐다. (몇달 동안 책을 한 권도 못읽은 것 때문에 하루키의 책도 한 권 샀었다.) 집 근처 지하철 역 앞 카페에 앉아서 노란 조명과 담배연기에도 굴하지 않고 이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내가 심하게 가을을 타는 것을 올해에야 알았는데, 그 때에도 분명 가을을 탄 것인지 '뉴욕~' 을 꽤 재미있게 읽었더랬다. 승무원이었던 그녀가 1년도 안되어서 사표를 내고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이력, 독특한 말투와 눈에 띄는 색채의 그림들이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미 출간하여 꽤 잘 팔렸다는 책인 '탄산고양이 집 나가다'도 읽어봐야지 다짐했고, 2007년 5월이 되어서야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는데 내 기억에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여행기였다. 이후에도 그녀가 쓴 '싱글은 스타일이다'라는 책이 나왔지만 기대도 하지 않았고, 읽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왜 그녀의 책을 다시 골랐느냐 하면 1. 이 책 직전에 읽은 여행서 이후에 여행서 읽는 재미가 다시 생겨서 2. 가을을 타는지 여행이 가고 싶어져서 3. 고양이가 좋아서 4. 전지영의 책이라서(양가감정이랄까) 등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이 책에 담아있는 여행지는 교토, 뉴욕, 로마, 시애틀, 하와이, 아벨 테즈만 이다. 교토, 뉴욕, 로마에는 주로 역사적인 것에 대한 코멘트가 많아서 지루하기도 하고 공부가 되는 느낌도 들고, 작가의 글을 따라 생각도 많이 했다. 교토는 나도 분명 가본 곳인데 너무 오래 전이라서 그런지 몇몇 여행지만 어렴풋이 기억나서 오히려 안 가본 곳인듯 낯설었다. 반면 로마 여행기를 읽으면서는 작가가 뭐라 써놨든 나 혼자 로마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면서 좋아라 했다. 후반의 시애틀 부터는 여행기가 다소 무게가 없달까, 비중이 적어지는 느낌이다. 요약해 놓은 듯한 느낌이 강했다. '스노우캣'의 작가분이 얼마전에 시애틀로 이사가고, 그곳 생활을 이글루에 올려둔걸 봐서 시애틀에 대해서 궁금한게 많았는데, 이 책 중에 시애틀이 가장 존재감이 없었달까. 하와이편 에서는 전지영씨가 승무원으로 일했을 때의 에피소드가 들어있어서 꽤 재미있었다. 여기까지는 고만고만한, 별로 치자면 별 3개정도의 여행기라고 생각 하며 읽었는데(누가 '이 책 재미있어? 라고 물으면 "그냥그래"라고 말할것 같은??) 아벨 테즈만편에서 뒷 목을 잡았다. 앞서 '실망했다'고 밝힌 '탄산고양이 집 나가다'에 절반을 차지했던 뉴질랜드 여행기를 10장에 요약해 놓은 꼴이다. 그러고 보니 '탄산~'에는 일본 여행기도 절반이 들어있었고(교토는 없었을지 몰라도), 뉴욕편은 '뉴욕~' 책을 요약한거냐 싶었다. 이쯤되면 작가가 돈이 궁했거나, 출판사가 돈이 궁했거나, 귀찮았거나, 작가가 맨 앞에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서 밝혔듯이 '고양이 + 여행가방'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든 완성하고자 하는 욕심이었거나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벨 테즈먼 편은 '탄산~' 책 읽은 사람이라면 중복되는 내용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전지영씨의 삽화로 꾸며져 있다. 여행기에 담긴 그녀의 그림은 조금씩 다른데 이번 책은 그림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채색을 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색을 입힌 것이 좀 조잡하달까, 그런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사진이라도 요즘 나오는 여행서적 처럼 '아름답게' 찍은 것이었다면 모를까 이래저래 아쉬운 책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노랗고 분홍인 색으로 물든 예쁜 표지 정도?? 아마 표지와 제목에 혹해 구입하는 사람이 많을테지 싶다. 이래놓고 표지에 '세계 로망 도시를 고양이처럼 제멋대로 여행하는 법'이라는 설명은 잘도 지어놨다 하고 독설도 뱉어본다ㅠ '현재는 일러스트를 그리고, 동시에 가벼운 글쓰기와 북 디자인을 한다'는 그녀. 다음 여행서는 좀 더 '무게 있는 글'을 만날 수 있길 양가감정을 가진 팬으로서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