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피쉬
오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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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눈물이 흐른다.

기억이라는 놈은 어느 순간 묵직하게 떠오른다. 돌보지 않던 수조속의 물고기가 죽어 둥둥 떠오르는 것 처럼.

 아픈기억일수록 잊고 싶기마련이다. 기억하고 싶을 때면 어렵지 않게 꺼내어볼 수 있는 잠재의식과 다르게 그 아래 심연속에 있을 기억들은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상처일수도 있고 잊고 싶은 부끄러움일수도 있다. 

 수조속의 갖힌 물을 떠다니는 물고기들 처럼 기억은 내 안에 갖혀서 분명 소통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샌가 썩어서 분해되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이 다시 양분이되어서 새로운 물고기를 위한 환경이 되었다. 나는 어째서 기억이란 순간의 추억이라고 단정지었던 것일까?

 사랑했던 기억, 미워했던 기억 모두 수조처럼 통합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 안의 물고기들 처럼 각자 따로따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런 기억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그것들을 뭉뚱그려버려서는 좋았다 싫었다로 나눠버리는 것 뿐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런 기억의 덩어리 안의 물고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잊혀진 기억이기도 했지만 언제든 살아나는 기억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헤어진 사람과의 추억, 잊혀진 사람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어렴풋하지만 느낌은 또렷하니까. 결국 그 기억들이 온전히 지금의 나를 만든것이다. 기쁜 나와 슬픈 나를...

 잡힐듯 잡히지 않는 아름다웠거나 슬펐던 기억처럼, 의도하지 않게 건져올려진 기억들에 당황하듯 이 책은 모호하면서도 명료하다.

 "스파게티를 먹을 때 나는 아직도 스푼에 둘둘 말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담배가 떨어져도 절대 재떨이의 담배꽁초는 줍지 않아. 왠지 알아?"

 "음."

 "그건 네가 싫어했기 때문이야."

 "내가 싫어했다고?"

 "그래. 그렇게 헤어지고 19년이 지나 한번도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는데 나는 지금도 확실히 영향을 받고 있어. 네가 설령 내 앞에서 사라진다 해도 둘이서 지냈던 날들의 기억은 남아. 그 기억이 내 안에 있는 한 나는 그 기억 속의 너로부터 계속 영향을 받게 돼. 물론 유키코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와타나베씨.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지내온 시간은 기억의 집합체가 되어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

"기억의 집합체?"

"나는 너와는 헤어지지 않은 거야. 그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 아닐까. 한 번 만난 사람은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어."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나갔던 날 왜 모자를 썼어? 하고 여러번 물어봤던 사람. 나는 그 이후에도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지만 모자를 손에 들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스파게티를 소리내어 먹지 않게 되었듯이.

 내 기억의 파일럿 피쉬는 무엇일까. 무엇이 파일럿 피쉬가 되어 기억을 모아둔 수조를 정화하고는 죽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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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
무코야마 마사코 지음, 최성욱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목아플 땐 소금과 심황을 녹인 따뜻한 물로 양치

콧물, 오한에는 생강차가 좋고 담이 생기면 심황 꿀에 녹여 조금씩 먹기.

기침이 나면 연근을 갈아 갈분탕에 녹이고 간장 한방울(!)을 넣어서 마시기.

햇볕에 그을리면 코코넛 기름으로 마사지한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생길 때에는 민트차나 생강차를 마시면 좋다. 그리고 환경과 경제, 정리정돈을 위해 비누 하나로 샴푸, 청소, 빨래 모두 해결하기.

 이 것이 무엇이냐?

마치 잡지 한 쪽의 '생활의 달인'이라든가 '알뜰 주부'코너에 나올법한 이야기 아닌가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자세히 살펴보면 이토록 웰빙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어릴적부터 요즘 유행하는 소위 '웰빙'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몸소 실천도 해왔다. 꼬박꼬박 분리수거도 하고 아플 때는 병원이나 약국에 달려가서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는 대신 유자차로 비타민을 보충했고, 피곤하면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주물주물해보기도 하고 배가 아플때는 엄마가 만들어주신 팥을 넣은 주머니를 데워서 배위에 올려놓는 등...

 아이러니하게도 항생제라면 치를 떨며 안티(anti)를 외치던 나는 의료인이 되었다. (난 병원 근처도 질질 끌려갈 정도로 싫어했었다...) 자연스럽게 민간요법적인 웰빙뿐만이 아니라 과학적인 웰빙요법 또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웰빙이 붐을 타기 훨씬 전 부터 우리 집에는 아로마 오일이나 건강차들이 줄줄이 놓여있었다. 교양과목으로 대체요법과 발마사지, 노인음악요법 등을 이수했고 지금도 때때로 그런 마술같은 요법들을 즐기며 살고 있다.

 이 책을 지은 무코야마 마사코씨는 나보다 더 한것 같다. 아시아 여행을 다니면서 얻은 여러가지 생활의 지혜들을 모아 그것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니 절반은 90살 먹은 할머니마냥 민간요법에 달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맞다. 이 사람 조금 너무했다 싶었다.

 조금 지나치다 싶은 정도로 마사코씨의 생활은 부산스럽다. 이래서야 아시아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위하다가 정상적인 생활(이를테면 웰빙보다 바쁜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특히 헌 옷을 버리지 않고 잘라서 그것을 청소할 때도 쓰고 걸레로도 쓰는 등등 여러모로 활용을 하는 등의 일은 어쩌면 불필요하다거나 지나치다고 여겨질 정도...

 그렇지만 이 사람은 전혀 이러한 자신의 생활을 귀찮아 하거나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자질구레 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재활용할 수 있을까, 더 '자연스럽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마사코씨나 나처럼 남이 봐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잔일이 많은 삶(?)을 사는 것이 피곤한 사람도 있다. 때로는 너무 바쁜 생활에 쫓기다보면 있어야 할 것도 없고 해야할 일도 잊어버릴때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런 조잡해보이는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 모음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밑줄 긋고 한번 해보기 시작하면 더 이상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삶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남보다 더 부지런 해야하고 더 세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사코씨의 집은 언제나 단정하게 필요한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내 집은 그렇지 않다..;; 나만의 웰빙 생활을 위한 각종 차들과 허브들은 어지럽게 널려진 채로 필요할 때마다 사용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은 심플 그자체이다. 한가지를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하여 최대한 단조롭고 자연그대로 사는 방법이 그것이다. 먼저 욕심을 버리고 일명 아시아의 라이프 스타일을 조합하여 이것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만들어서 살아보면 어떨까? 이 책을 읽는 내내 한번쯤 해봐도 좋을 것들에 밑줄을 긋느라 분주했다. 차마시기를 좋아하는 나는 달콤한 녹차 끓이는 법도 따로 메모해두었다. 조금 분주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지혜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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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돼지 그리고 나
야나 셰러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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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럽 소설을 고르는 중 특이한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다. 수많은 선정도서들은 대부분 프랑스 작가들이 차지했다. 선정 방법은 예스24에서 '유럽소설' 분야 책들을 처음부터 뒤지는 식이었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읽고 싶거나 읽어야 할 것 같은 것들은 프랑스 쪽 작가들의 책이 많았다. 다양한 유럽소설을 읽고 싶었던 나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던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독일의 소설이다.
 
 역시 책의 제목은 참으로 중요하다. 도서관에 도서 신청을 하고 기다린지 2주만에 책을 첫타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부터 시작되는 나의 의문들...
'아버지랑 나랑 돼지를 잡으러 갔나? 아니면 판타지적으로 돼지가 사람처럼 나오는 소설인가? 유럽소설이라면 가능할지도... 저 돼지 그림을 보니 그리 착한 돼지일 것 같진 않은데...'
 
 그러나 나의 이 모든 의문을 뒤로한 채 이 소설은 그야말로 같은 주인공이 겪는 단편 소설일 뿐이었다. 저 돼지님 또한 그 단편들 중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고... 그 소재는 이 코믹한 가족(주인공, 아빠, 엄마)과 그 외의 등장 인물들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주인공 '나'의 출생부터 20대까지의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가족은 작은 것도 기이하게 받아들이는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정신연령이 주인공 아이와 거의 동일한 부모들이나 그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주인공이나... 모두 엉뚱하기 그지없는 발상들이다. 그래서인지 짱구는 못말려의 에피소드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소설은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한다고 했던가, 이 안에는 거위 간 통조림을 먹고, 돼지고기 스튜를 포도주를 부어 데워 먹거나 병 돌리기 게임(이건 우리도 하는데^^), 동독과 서독의 가치차이 등이 반영되어 있다. 순간 우리의 통일 이후에는 분단의 역사가 소설에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해졌다.
 
 집에 오는길에 돼지를 입양해온 아빠. 정확히는 입양이 아니라 '임대'지만..;;
가정의 화목을 도모해줄거라 기대에 부풀어 1년치 돼지 임대 계약을 맺고 돌아온 아빠는
"돼지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거든."이라 말한다. 식용돼지는 아니지만 애완돼지가 아니라면 집안에 들여 키울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나와 비슷하게 그의 아내는 남편더러 돼지와 함께 지내라고 하고, 그는 서재에 돼지집을 꾸며준다. 그 안에서 풍기는 지독한 돼지 우리 냄새!!
 
 이 아빠, 수녀와 도피행각까지 서슴지 않는다. (물론 아빠는 그럴듯한 변명을 하지만 독자인 나는 혼자 응큼한 상상을...) 집을 나선지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빠...
 
다음 날 저녁에도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우리는 경찰서로 갔다.
"마지막으로 본 곳이 어디죠?"
"수녀원 앞이에요. 아빠는 거기서 수녀와 함께 떠났어요."
"마지막으로 수녀와 함께 목격됨."
경찰은 중얼거리며 타자기를 두드렸다. p90
 
가까운 곳에 태워다 달라고 해서 태워준 수녀는 그곳을 들러서 교황을 만나러 '로마'에 가야 한다며 아빠에게 운전을 계속하라고 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사는 곳은 독일)
뭐 그러저러 해서 로마에 갔다가 일주일 후에 도착했다는데, 과연??
 
 연금생활자(연금으로만 생활하는 사람같은데...독일은 신청자에 한해 이런 사람을 집에 들여와 일정기간 함께 사는 것 같다.) 와 함께 생활하게 된 이야기 등등 마치 단편 연재 만화를 보는듯하다. 
 
 엉뚱하고 가볍기만 해서 처음 기대에는 못 미쳤던 이 소설에서 보기 드물게 등장했던 진지한 대사하나.
 
"너는 언제나 가짜만 원해."
크리스티안이 언젠가 내게 말했다.
"알코올 없는 맥주, 당분 없는 콜라, 지방 없는 버터."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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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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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의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를 아주 좋아한다. 그는 내가 유럽소설을 읽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준 작가이다. 그의 '겨울아이', '콧수염'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으로 이 소설이 나온 것을 알게 되자 곧이어 도서관으로 갔다. 날카로운 칼로 소리없이 심장을 도려내듯이 그의 소설은 조용하지만 어둡고 무섭고 기발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인생 전체가 거짓인 남자. 그 거짓을 진실인양 살아온 남자. 거짓을 숨기고자 했고 완벽한 연기를 하였으나 이것이 탄로나기 시작하면서 혼란의 소용돌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눈가리고 인생을 통째로 덮어버리려고 했던 남자. 부모와 자식, 부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지만 살아남아 재판받은 장클로드 로망의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거야? 어떻게 돌아가는거고 이 인물들은 지금 뭐라고 짓꺼리는 거지?...
 
 누가 죄인인가.
인생이 거짓이었고, 그 거짓을 진짜라고 믿으며 살았던 가족을 몰살하고도 비열한 뉘우침을 보이는 장클로드 로망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자 가장 가까운 관계임에도 그토록 무심할 수 있고, 넋놓고 있을 수 있었던 그의 친구와 가족들인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죄는 밉지만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으나 이내 우스워졌다. 그 말을 적용하기엔 그의 죄가 너무 무거웠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가 '의도적'으로 가족들을 속이고, 자기 인생을 연극처럼 꾸며넣고, 가족을 몰살하였던가? 그건 오히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었을까.
나의 혼란은 누구를 탓해야하는가, 누가 진정 죄인인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동시에 죄인임에도 갖은 저주를 퍼부을 수 없는 아이러니함에 놀랐다.
 
 나는 범죄를 다룬 기사를 읽을 때 여느 사람들처럼 혀를차며 때로는 범인을 욕하기도 하고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기사들을 볼 때 마다 나는 그들의 인생의 시작과 과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의 결과는 비록 범죄였으나 그의 인생 전체가 그렇지 않을 것이기에... 전공과 관련해서 나는 심리학을 배운적이 있다. 그것이 바탕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장클로드 로망의 유년을 상상해본다.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거친 사람은 적어도 납득이 가능하거나 용서할 수 있는 범위의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것은 불완전한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일으킬 수 있는 말썽이나 실수에 가깝다. 그러나 그 발달과정이 비정상적이라면 그것이 눈에 띄는 것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개개인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므로, 그는 그 나름대로의 정신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렇기에 그 범죄또한 상식밖의 것이 많다. 로망은 어린시절 병색이 짙은 어머니와의 생활에서 감히 삶의 어두운면을 드러내거나 슬픔을 내비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숨기고, 행복한 척, 재미있는 척 또는 억지로 슬픈척을 하는 것이 교육되었던 것이다. 마치 짐승에게 길러진 인간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의 본능을 드러내는 것 처럼 말이다. 로망은 이미 어릴 때 '하얀 거짓말'에 대해 그 자체가 도피처가 될 수 있으며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
 
 그가 극단적으로 가족을 몰살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수년간의 거짓인생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하기엔 무엇인가 부족하다. 그것은 무관심 속에 길러진 어린아이의 본성의 폭발이 아니었을까.
거짓말 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방어기전도 익힐 수 없었기에 그는 재판하는 동안 감정의 기복을 숨길 수 없으면 기절하거나 발작을 일으켰다.
 
 장클로드 로망은 순간순간 나 스스로에게 오버랩되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 내면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이 건드려졌을 때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지는지가 느껴졌다. 인간이란 이토록 약한 존재인 것이다.
 
 저지른 죄의 값은 달게 받아야겠지만 죄를 지은 것 또한 불완전한 사람이니..... 그래서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 하였던가.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로망이 가족을 죽인것인지, 스스로를 죽인것인지, 로망의 가족이 그로 하여금 자신들을 죽이도록 한 것인지...(어쩌면 그렇게 남편, 친구, 아들을 모르고 살 수 있을까.)
 
 누군가는 끝까지 올바르게 죄를 뉘우치지 않는 그의 뻔뻔함에 놀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를 용서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기꾼에 살인자인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지다니, 이와 같은 아이러니도 없을 것 같다.
 
 이것이 모두 프랑스 현지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이 많이 아팠다. 죽은 사람에게도, 죽인 사람에게도, 남은 사람에게도..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만약 뤼크이고 내 베스트 프렌드가 로망이라면,
나는 뤼크처럼 친구의 죄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뒤로 빠질 것인가,
아니면 위의 서평에서의 감상처럼 로망을 이해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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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와 소시지
소피 자베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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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빵빵 알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동화적인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로마에서 가장 잘빠진 몸을 가진 쭉빵녀다. 시내를 거닐면 남자들의 눈길을 피할 수 없고, 그녀 자신도 스스로 얼마나 멋진지 알고 있다. 그녀는 거의 매일 레몬으로 제모를 하고 거울에 자기의 몸을 비추어본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고르고 예쁜 발을 치장할 신발을 고른다. 그리고 언젠가 나타날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린다.

친절하거나, 혹은 예쁘거나

"여자, 여자, 여자들이란...... 내 딸아, 넌 마릴린 먼로가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기억해두렴. 친절한 여자가 돼야 해. 남자들에게 정말 잘해줘야 한다. 넌 여자니까, 예쁘든지 다정하든지 둘 중 하나는 돼야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알겠니? 너는 안 예뻐. 그러니 너는..... 다정한 여자가 돼야해. 남자들에게 아주 잘해줘라." P24

아버지는 천하의 호색한에 바람둥이다. 새 애인과 연애를 즐기다가 가끔 로마에 들러 딸을 만나고 가지만 한번도 보고싶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은 아버지이기 보다는 '남자로서'의 인생을 즐기는 것 뿐이다. 이렇게 예쁘고 매력적인 딸에게 못생겼다며 친절해야 한다고 하다니!

친구 폴리

"일단 남자들 얘기를 잘 들어줘야 해. 자기들이 아주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게 해줘야 해. 그리고 가끔 '콘 아이스크림'도 먹어줘야 하고." P49  폴리

폴리는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외모를 가꾸고 몸매를 만들기 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연애를 즐긴다. 오히려 쭉빵녀 알리스보다 박식한 연애학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친절이라.....

남자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내가 원하는 건 포기해야 하나? 내 간절한 소망들은?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접고 그저 남의 욕망에 부응하며 살아야 하나? 남자들이 좋아하는 게 뭐지에만 신경쓰면서? P53

자신이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득의양양했던 그녀는 아버지와의 만남 이후로 절망에 빠진다. 정말 내가 예쁘지 않아?

그녀는 친절해지기로 했다. 그녀의 집으로 남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그녀는 단 한번의 거절 없이 그들을 맞이한다. 거절이란 곧 불친절이므로. 누구든 똑같은 것을 해 주었다. 남자들이 불쾌해 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곧 그녀의 잘못이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남자들 중 누구도 그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남자들 중 파비오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공손하게 대했는데 청혼까지 했더랬다.

알리스는 어머니가 파비오에게 애교 떠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 애가 나왔네요. 세상에, 너 완전히 돼지 됐구나! 전에는 그렇게 날씬하더니. 모름지기 여자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말아야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생님?"

어머니는 파비오의 손을 자기 뺨에 가져다댔다.

딸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는 딸의 남자를 꼬드기고 있었다. 그것도 딸에게 가장 너그러운 남자를. 

파비오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모자를 벗어 들며 알리스에게 인사했다.

삼 주 후, 어머니가 전화했다. 어머니와 파비오는 파우실리페의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산다고 했따. 카프리 섬에서 결혼했고, 다시 알리스에게 전화하겠다고 했다. P110

파비오는 그렇게 어머니의 (아마도) 31번째 애인이자 두번째 남편이 되었다.

그녀, 소시지가 되다

토니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알리스가 다가오는 것을 본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토니노는 누나를 가까운 곳에 앉혔다. 그러고는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에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은 울었다. 동생은 누나를 다시 만나 감격해 울었고, 누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에 울었다.......

남자들은 훌쩍거리는 이 기형적 살 덩어리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P115

동생이 그린 그림은 다름아닌 소시지였다... 토니노 눈에 내가 소시지로 비쳤단 말인가? 토니노는 지극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알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진실을 그렸다. P116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가지게 된 알리스는 살이 축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소시지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로는 그 살을 빵빵하게 채워야했다.  그렇게 그녀는 소시지가 되었다.

쭉빵녀와 소시지

"여자란 자고로 꾸며야 여자지,

아무리 예쁜 여자도 꾸미지 않으면 곧 퇴물이 되어버려."

한번 쯤 들어보거나 해보았던 우스갯소리들.

이미 얼짱만큼 몸짱, 그리고 이왕이면 얼짱+몸짱에 환호하는 세상이다. 개개인의 매력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아마도 그런 세상이라면 사람을 판단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매력 덕분에 질리지 않는 사람구경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는걸까?

요즘은 여자들에 대해 쭉빵이라는 둥 외모중시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이외에도 예쁜 남자도 선호하는 시대이다. 트렌드이기 이전에 순간의 감동, 일회적인 유희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이미 만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착하고 예쁘기까지 하면 고맙겠지만, 이러다가 결국 모두 소시지가 되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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