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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쉬
오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눈물이 흐른다.
기억이라는 놈은 어느 순간 묵직하게 떠오른다. 돌보지 않던 수조속의 물고기가 죽어 둥둥 떠오르는 것 처럼.
아픈기억일수록 잊고 싶기마련이다. 기억하고 싶을 때면 어렵지 않게 꺼내어볼 수 있는 잠재의식과 다르게 그 아래 심연속에 있을 기억들은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상처일수도 있고 잊고 싶은 부끄러움일수도 있다.
수조속의 갖힌 물을 떠다니는 물고기들 처럼 기억은 내 안에 갖혀서 분명 소통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샌가 썩어서 분해되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이 다시 양분이되어서 새로운 물고기를 위한 환경이 되었다. 나는 어째서 기억이란 순간의 추억이라고 단정지었던 것일까?
사랑했던 기억, 미워했던 기억 모두 수조처럼 통합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 안의 물고기들 처럼 각자 따로따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런 기억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그것들을 뭉뚱그려버려서는 좋았다 싫었다로 나눠버리는 것 뿐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런 기억의 덩어리 안의 물고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잊혀진 기억이기도 했지만 언제든 살아나는 기억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헤어진 사람과의 추억, 잊혀진 사람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어렴풋하지만 느낌은 또렷하니까. 결국 그 기억들이 온전히 지금의 나를 만든것이다. 기쁜 나와 슬픈 나를...
잡힐듯 잡히지 않는 아름다웠거나 슬펐던 기억처럼, 의도하지 않게 건져올려진 기억들에 당황하듯 이 책은 모호하면서도 명료하다.
"스파게티를 먹을 때 나는 아직도 스푼에 둘둘 말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담배가 떨어져도 절대 재떨이의 담배꽁초는 줍지 않아. 왠지 알아?"
"음."
"그건 네가 싫어했기 때문이야."
"내가 싫어했다고?"
"그래. 그렇게 헤어지고 19년이 지나 한번도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는데 나는 지금도 확실히 영향을 받고 있어. 네가 설령 내 앞에서 사라진다 해도 둘이서 지냈던 날들의 기억은 남아. 그 기억이 내 안에 있는 한 나는 그 기억 속의 너로부터 계속 영향을 받게 돼. 물론 유키코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와타나베씨.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지내온 시간은 기억의 집합체가 되어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
"기억의 집합체?"
"나는 너와는 헤어지지 않은 거야. 그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 아닐까. 한 번 만난 사람은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어."
처음으로 모자를 쓰고 나갔던 날 왜 모자를 썼어? 하고 여러번 물어봤던 사람. 나는 그 이후에도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지만 모자를 손에 들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스파게티를 소리내어 먹지 않게 되었듯이.
내 기억의 파일럿 피쉬는 무엇일까. 무엇이 파일럿 피쉬가 되어 기억을 모아둔 수조를 정화하고는 죽어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