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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돼지 그리고 나
야나 셰러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유럽 소설을 고르는 중 특이한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다. 수많은 선정도서들은 대부분 프랑스 작가들이 차지했다. 선정 방법은 예스24에서 '유럽소설' 분야 책들을 처음부터 뒤지는 식이었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읽고 싶거나 읽어야 할 것 같은 것들은 프랑스 쪽 작가들의 책이 많았다. 다양한 유럽소설을 읽고 싶었던 나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던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독일의 소설이다.
역시 책의 제목은 참으로 중요하다. 도서관에 도서 신청을 하고 기다린지 2주만에 책을 첫타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부터 시작되는 나의 의문들...
'아버지랑 나랑 돼지를 잡으러 갔나? 아니면 판타지적으로 돼지가 사람처럼 나오는 소설인가? 유럽소설이라면 가능할지도... 저 돼지 그림을 보니 그리 착한 돼지일 것 같진 않은데...'
그러나 나의 이 모든 의문을 뒤로한 채 이 소설은 그야말로 같은 주인공이 겪는 단편 소설일 뿐이었다. 저 돼지님 또한 그 단편들 중 하나의 요소에 불과했고... 그 소재는 이 코믹한 가족(주인공, 아빠, 엄마)과 그 외의 등장 인물들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주인공 '나'의 출생부터 20대까지의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가족은 작은 것도 기이하게 받아들이는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정신연령이 주인공 아이와 거의 동일한 부모들이나 그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주인공이나... 모두 엉뚱하기 그지없는 발상들이다. 그래서인지 짱구는 못말려의 에피소드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소설은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한다고 했던가, 이 안에는 거위 간 통조림을 먹고, 돼지고기 스튜를 포도주를 부어 데워 먹거나 병 돌리기 게임(이건 우리도 하는데^^), 동독과 서독의 가치차이 등이 반영되어 있다. 순간 우리의 통일 이후에는 분단의 역사가 소설에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해졌다.
집에 오는길에 돼지를 입양해온 아빠. 정확히는 입양이 아니라 '임대'지만..;;
가정의 화목을 도모해줄거라 기대에 부풀어 1년치 돼지 임대 계약을 맺고 돌아온 아빠는
"돼지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거든."이라 말한다. 식용돼지는 아니지만 애완돼지가 아니라면 집안에 들여 키울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하는 나와 비슷하게 그의 아내는 남편더러 돼지와 함께 지내라고 하고, 그는 서재에 돼지집을 꾸며준다. 그 안에서 풍기는 지독한 돼지 우리 냄새!!
이 아빠, 수녀와 도피행각까지 서슴지 않는다. (물론 아빠는 그럴듯한 변명을 하지만 독자인 나는 혼자 응큼한 상상을...) 집을 나선지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빠...
다음 날 저녁에도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우리는 경찰서로 갔다.
"마지막으로 본 곳이 어디죠?"
"수녀원 앞이에요. 아빠는 거기서 수녀와 함께 떠났어요."
"마지막으로 수녀와 함께 목격됨."
경찰은 중얼거리며 타자기를 두드렸다. p90
가까운 곳에 태워다 달라고 해서 태워준 수녀는 그곳을 들러서 교황을 만나러 '로마'에 가야 한다며 아빠에게 운전을 계속하라고 했다고 한다. (주인공이 사는 곳은 독일)
뭐 그러저러 해서 로마에 갔다가 일주일 후에 도착했다는데, 과연??
연금생활자(연금으로만 생활하는 사람같은데...독일은 신청자에 한해 이런 사람을 집에 들여와 일정기간 함께 사는 것 같다.) 와 함께 생활하게 된 이야기 등등 마치 단편 연재 만화를 보는듯하다.
엉뚱하고 가볍기만 해서 처음 기대에는 못 미쳤던 이 소설에서 보기 드물게 등장했던 진지한 대사하나.
"너는 언제나 가짜만 원해."
크리스티안이 언젠가 내게 말했다.
"알코올 없는 맥주, 당분 없는 콜라, 지방 없는 버터." p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