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와 소시지
소피 자베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쭉쭉빵빵 알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동화적인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로마에서 가장 잘빠진 몸을 가진 쭉빵녀다. 시내를 거닐면 남자들의 눈길을 피할 수 없고, 그녀 자신도 스스로 얼마나 멋진지 알고 있다. 그녀는 거의 매일 레몬으로 제모를 하고 거울에 자기의 몸을 비추어본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고르고 예쁜 발을 치장할 신발을 고른다. 그리고 언젠가 나타날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린다.

친절하거나, 혹은 예쁘거나

"여자, 여자, 여자들이란...... 내 딸아, 넌 마릴린 먼로가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기억해두렴. 친절한 여자가 돼야 해. 남자들에게 정말 잘해줘야 한다. 넌 여자니까, 예쁘든지 다정하든지 둘 중 하나는 돼야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알겠니? 너는 안 예뻐. 그러니 너는..... 다정한 여자가 돼야해. 남자들에게 아주 잘해줘라." P24

아버지는 천하의 호색한에 바람둥이다. 새 애인과 연애를 즐기다가 가끔 로마에 들러 딸을 만나고 가지만 한번도 보고싶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은 아버지이기 보다는 '남자로서'의 인생을 즐기는 것 뿐이다. 이렇게 예쁘고 매력적인 딸에게 못생겼다며 친절해야 한다고 하다니!

친구 폴리

"일단 남자들 얘기를 잘 들어줘야 해. 자기들이 아주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게 해줘야 해. 그리고 가끔 '콘 아이스크림'도 먹어줘야 하고." P49  폴리

폴리는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외모를 가꾸고 몸매를 만들기 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연애를 즐긴다. 오히려 쭉빵녀 알리스보다 박식한 연애학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친절이라.....

남자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내가 원하는 건 포기해야 하나? 내 간절한 소망들은?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접고 그저 남의 욕망에 부응하며 살아야 하나? 남자들이 좋아하는 게 뭐지에만 신경쓰면서? P53

자신이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득의양양했던 그녀는 아버지와의 만남 이후로 절망에 빠진다. 정말 내가 예쁘지 않아?

그녀는 친절해지기로 했다. 그녀의 집으로 남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그녀는 단 한번의 거절 없이 그들을 맞이한다. 거절이란 곧 불친절이므로. 누구든 똑같은 것을 해 주었다. 남자들이 불쾌해 하거나 슬퍼하는 것은 곧 그녀의 잘못이었다. 집으로 찾아오는 남자들 중 누구도 그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 남자들 중 파비오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공손하게 대했는데 청혼까지 했더랬다.

알리스는 어머니가 파비오에게 애교 떠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 애가 나왔네요. 세상에, 너 완전히 돼지 됐구나! 전에는 그렇게 날씬하더니. 모름지기 여자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말아야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생님?"

어머니는 파비오의 손을 자기 뺨에 가져다댔다.

딸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는 딸의 남자를 꼬드기고 있었다. 그것도 딸에게 가장 너그러운 남자를. 

파비오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모자를 벗어 들며 알리스에게 인사했다.

삼 주 후, 어머니가 전화했다. 어머니와 파비오는 파우실리페의 테라스가 있는 집에서 산다고 했따. 카프리 섬에서 결혼했고, 다시 알리스에게 전화하겠다고 했다. P110

파비오는 그렇게 어머니의 (아마도) 31번째 애인이자 두번째 남편이 되었다.

그녀, 소시지가 되다

토니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알리스가 다가오는 것을 본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토니노는 누나를 가까운 곳에 앉혔다. 그러고는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에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은 울었다. 동생은 누나를 다시 만나 감격해 울었고, 누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에 울었다.......

남자들은 훌쩍거리는 이 기형적 살 덩어리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P115

동생이 그린 그림은 다름아닌 소시지였다... 토니노 눈에 내가 소시지로 비쳤단 말인가? 토니노는 지극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알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진실을 그렸다. P116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가지게 된 알리스는 살이 축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소시지가 되기로 마음먹은 후로는 그 살을 빵빵하게 채워야했다.  그렇게 그녀는 소시지가 되었다.

쭉빵녀와 소시지

"여자란 자고로 꾸며야 여자지,

아무리 예쁜 여자도 꾸미지 않으면 곧 퇴물이 되어버려."

한번 쯤 들어보거나 해보았던 우스갯소리들.

이미 얼짱만큼 몸짱, 그리고 이왕이면 얼짱+몸짱에 환호하는 세상이다. 개개인의 매력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아마도 그런 세상이라면 사람을 판단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매력 덕분에 질리지 않는 사람구경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는걸까?

요즘은 여자들에 대해 쭉빵이라는 둥 외모중시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이외에도 예쁜 남자도 선호하는 시대이다. 트렌드이기 이전에 순간의 감동, 일회적인 유희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이미 만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비판하는 동시에 잘생긴 남자, 예쁜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착하고 예쁘기까지 하면 고맙겠지만, 이러다가 결국 모두 소시지가 되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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