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이우일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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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신착도서로 빌려본 책. 그래서 도서관 책이지만 새 책을 가장 먼저 읽을 수 있었다.

사실 멕시코, 데낄라 어느것도 나의 관심 밖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멕시코 보다는 브라질이 더 솔깃했으니까... 이우일의 그림이 있는 여행기라는 것이 책을 고른 이유였다. 그림이 있는 여행기라니... 물론 탄산고양이의 뉴욕 여행기에서도 삽화는 많이 나왔지만 이우일의 그림도 재밌을 것 같았다. 소설에 치중한 책 읽기를 분산시키는 목표의 일환으로 적어도 중간중간에 여행기를 한 권씩 읽어주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비행기 못타서 죽겠는걸 책으로나마 위로하기 위해...(그리고 미래의 여행계획도 흐흐..)

이우일 특유의 그림과 멕시코와 쿠바에 어울리는 색깔로 버무려진 이 책은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멕시코나 남미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여행기였다. 하지만 멕시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만 할 것 같다. 쿠바에 여행가는 것이 꿈인 나에게 이 책 속의 쿠바 이야기는 환상적이었으니까... TV에서 본 '자유'와 예술, 체게바라로 가득찬 혁명의 나라 쿠바는 충격이었다. 어쩌면 그 곳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소비문화를 누리는 대한민국 사람인 나에게 하나의 로맨틱한 배경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실제로 마주치는 쿠바는 더욱 매력적일 것이다.

더운 날 도서관 자료실 구석의 에어컨 곁에 서서 읽는 책은 참 맛있다. 의자만 곁에 있다면 참 좋으련만 (낚시용 의자를 휴대할까..) 책상이 있긴 하지만 그 쪽은 에어컨이 부실하다... 그리고 서가 사이에서 책에 둘러싸여서 은근한 햇살을 받으며 읽는 시간은 더 없이 행복하니까.

얇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서서 읽기 시작했는데 끝이 없다. 아마도 여행기에다가 그림까지 있으니 실제로 여행하는 것 처럼 그것들을 충분히 느끼고 바라보기에 그냥 글씨만 있는 소설책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특히 멕시코 부분에서 '위험하다'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뭐 여행이야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 아닌가. (난 여행지에서 집시도 소매치기도 잘 따라 붙지 않는 요상한 여행객이었다... 하도 추레해서?? 다만 파파라치가.. ^_^) 이렇게 '위험'을 흘려넘기며 '쿠바에 가고 말거야'라고 하다가도 곧 조금은 무서워져서 그곳에 갈 때는 보디가드를 챙겨가야겠다는 바람직한 계획을 하게 된다.

이 여행기에는 '어디어디가 좋으니 꼭 가봐라'거나 '뭘 해봐야한다'는 둥 하지 않는다. 좀 이상한 여행기랄까. 지극히 개인적인 하나의 일기같은 여행기이다. 이우일과 부인 선현경, 그들의 꼬마공주 은서가 함께한 가족여행이라서 그런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서점엔 꼭들러서 현지의 (혹은 전혀 다른 나라의) 책을 구입하는 것이 취미인 것 같다. 책 좋아하는 나도 여행지에서 기념품으로는 책, 음반 등을 사려고 '노력'한다. 읽지도 못할놈의 책 뭐하러 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게다가 나는 외국어도 그냥 무작정 좋아하는 편이라 그 생판 모르는 이국의 활자들만 보아도 뒤로 자빠질 것 처럼 좋다. 그림책을 사오는 것은 생각을 못했었는데 나중에 한번 따라해봐야겠다.^^

***어쩌면 어느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뇌수 속에 추상적으로 그려진, 그곳에 대한 자신의 관념속 도시를 그저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92)***

정말 그런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가본 도시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금방 익숙해지는 이방인인 나의 모습은.

그래서 나는 전혀 몰랐던 도시로의 여행을 꿈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그런 도시 말이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으로 계획하지 않은 머뭄을 경험하면 어떤 기분일까.

여행지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은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18살때 배를 타고 동생과 떠난 일본여행에서 우리는 여권을 가방채로 잃어버렸다. 여행막바지라서 심하게 당황되었다. 대사관에도 가고, 경찰서에도 가고 별의 별 곳을 다 가본 것 같다. (기념으로 경찰 아저씨가 쓰던 연필을 받았다;;) 함께 간 보호자 역할의 '삼촌'이라 불렀던 분은 정말 놀라서 바둥바둥거릴 때, 나는 혼자 '그래, 이런식으로 채류하는거야....' 하고 므흣한 웃음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일본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전혀 없었던 때에 별 감흥도 못 느꼈다고 생각했던 일본 여행인데도 나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었다. 여행은 당시에 뭘 보고 뭘 느꼈는지는 후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밥을 먹었던 곳의 가게 이름이 뭐였는지도 기념품을 구경했던 곳은 어디였는지도 희미해진다. 그러나 그 때 그 장소의 공기는 절대 잊을 수 없다. 비만오면 생각나는 영국의 겨울과 눈만 오면 생각나는 (이례적이었던) 파리의 눈쌓인 거리, 어둠이 깔린 저녁이면 생각나는 도쿄의 야경 등. 이것은 시각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후각적인 것에 가깝다. 문득문득 공기에서 날리는 어떤 향이 그 때 그 곳을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이다.

아주 예전에 헤어졌던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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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니스트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안문영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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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는 그녀만을 사랑했다.

"그리고 저기 저쪽,"

루카스댁은 옛날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예전에 물에 깎인 바위가 놓여 있던 그 곳이 그 남자가 좋아하던 장소였단다."

그리고 그녀만이 그를 기억했다.

천재 오르가니스트는 사랑하기 위해 잠자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다가 젊은 나이로 죽었다. 그는 일찍 늙는 병을 앓고 있었던만큼 남의 것보다 빨리 시간을 보냈는가보다.

음악적 천재의 기질과 착한 본성을 타고났다는 것 이외에는 엘리아스도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는 노란색동공과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외모 말고는 돋보이는 것이 없을정도였으니까... 그의 집안 내력대로 참으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엘리아스보다 더 강하게 각인이 되는 파란만장한 인생의 인물들이 있다. 주민들에게 마녀사냥을 당한 '큰토막'과 엘스베트의 오빠이자 엘리아스의 하나뿐인 친구인 악마적인 '페터', 세상 모든것을 사랑하고 아껴서 창녀가 된 '부르가 람파르터',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아 벙어리인가 하고 여기게 했던 엘리아스의 형 '프리츠', 보이얼라인 보좌신부, 몽고증을 앓는 동생 '필립' 등등.. 이런 인물들이 소설의 재미를 부추겼다.

사랑하지만 드러내어 고백하지 않았던 그와,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숙명적으로 여기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엘스베트, 엘리아스의 재능을 알아보았지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게 된 다른 오르가니스트들... 인간의 따뜻한 면과 어두운면을 적절하게 보여주면서 신이 만들어놓은 운명에 의해 치열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모습도 함께 그렸다. 전원생활을 평화롭게만 보여주는 것들과 달리 이 소설은 인간이기에 있을 수 있는 사악한 모습과 각박한 인심들을 그것이 도시이건 농촌이건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신의 청력을 갖게 된 엘리아스가 5세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연인(엘스베트)의 심장소리를 듣고 까무러치는 장면이라든가 페터와 엘리아스의 장난에 옷을 모두 벗게 된 창녀 부르가 람파르터의 대사, 엘리아스의 아버지 제프와 엘리아스가 화해하는 장면 등 간혹 등장하는 갑작스러운 가슴따뜻하게 만드는 상황도 음울한 소설의 전체 분위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웃게하는 요소가 되었다.

'향수'와 비교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니 '향수'도 한번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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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탄줘잉 엮음, 김명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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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랜만에 들어간 인터넷의 책 동호회.

요즘은 네이버에서 노느라 그곳은 소홀했는데 특히 이 카페는 가입하고 활동은 하지 않아서(워낙 책 카페 가입한 곳이 많아서..) 그런 게시판이 있는 줄 몰랐다.

 중고책시장.

책을 사고 파는 게시판이다. 사고 싶은 책은 많고 돈은 부족하고 책을 산다해도 들여놓은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나도 책을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내가 읽었던 동화책도 안버리시는 아빠가 알면 쫓겨날 일이지만.  

 눈 딱 감고 집에 있는 책을 둘러보았다. 읽었지만 소장가치가 없는 책. 나이가 들어서 불필요해진 청소년을 위한 책. 사 놓고 영 눈이 가지 않아서 읽지 않은 책 등등....... 일주일간 정리해보니 약 10권의 책이 쌓였다. 절대 내 손에 들어온 책은 버리거나 남 주지 않는다는 내 신조가 퇴색하는 순간 퇴출대상이 되어버린 책들. 이 중에는 선물받은 책은 없지만 나는 소장욕심이 많아서 결국 한번씩 다시 읽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 10권 중 첫 번째 퇴출대상인 이 책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는 내가 작년말쯤 구입한 것이다. 지금 기억에는 아마도 당시 회사 추천도서 목록이었고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으며 무미건조하고 삶의 낙을 잃은 나에게 꼭 해야할 49가지를 알려주리라고 구입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사놓고는 읽지 않게 되었는데 이유인 즉 워낙 소설류만 들이파는 스타일이었고 특히나 이런 '마음따뜻하게 해 줌과 동시에 자기개발과 인생의 지침서가 되어주는' 책과는 동떨어져 있었기에.

 남 주기 전 읽어보기나 하자며 집어든 책은 의외로 괜찮다. 이게 팔기 아까운 미묘한 감정인지 아니면 정말 책의 내용이 좋아서 갈등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지만 점점 후자의 이유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거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이 책은 모두 49가지의 살아있는 동안 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들을 나열해주고 있다.

'먼 훗날,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하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위하여 지금 당장 지켜야 할 소중한 약속....' 

책 표지의 카피는 이 책이 자칫 서점에 줄을 지어 놓여져있는 여느 자기계발관련 책과 같다고 여기게 한다. 특히 요즘은 마음을 비워주는, 나를 사랑하는, 남을 이해하는, 삶을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이라는 주제의 책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런류의 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나처럼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대할 수 있다.

 물론 이 책 안에서도 은사를 찾아가보라든가 친구가 소중하다든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진부한 조언이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하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예를 들면서 나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특히 내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여섯번째 할 일에 나오는 '고향 찾아가기' 이야기이다.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을 증오하던 소년은 고향을 떠나 악착같이 일해서 성공한다. 그는 그가 일하는 분야에서 일류로 성공하였지만 갑자기 몸이 아프고 난 후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긋지긋한 가난 뿐이었던 내 고향. 사람은 누구나 아프고 힘들 때 고향을 떠올린다고 했던가. 그도 그랬나보다. 다시 보는 고향은 예전과 달랐다. 높은 건물이 지어져 있었고 도로도 났다. 그러나 그가 자랐던 마을은 여전히 가난했다. 백발노인이 된 마을 어른들과 함께 자란 친구들은 지금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다. 고향에 도착한 그는 우선 잔치를 벌였다. 마을 사람들이 약소한 선물을 들고 찾았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하고 잔치를 즐기도록 했다. 얼마 후 어릴적 친구들이 도착했는데 그 중 한명이 대표로 싸구려 술병을 들고 왔다. 그는 친구들을 반기며 기쁘게 술잔을 따랐다. 순간 친구들을 당황하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던 그가 말했다.

'온갖 술을 마셔보았지만 오늘 이 술보다 맛있는 것을 마셔본적이 없다네. 아 나는 벌써 취하는 것 같구만..'

친구들과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술병 안에는 맹물이 들어있었다. 친구들은 술을 살 돈이 없어서 물이라도 가득 채워왔고, 설마 부자가 된 친구가 이런 싸구려 술을 마시자고 하지 않겠지 하고 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껄껄 웃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려운 것들 중에 하나는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다. 우리들끼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만나는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서로를 대하고 진실된 우정을 나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책의 주인공은 말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친구를 사귄다는 건 맞아.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친구는 신경 단위와 같아서 계속 잃기만 하고 한번 잃어버린 친구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지.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중에서.]

 나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줄곧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친구들이 신경단위와 같아지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 스스로가 그들에게 있어서 신경단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장소는 변해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책 말미의 글에서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친구가 곧 고향이라고.

 이 책에 나와있는 49가지를 모두 실천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당장 오늘 하루 해야할 일 목록중에 하나를 실천하는 것도 힘드니까. 하지만 '잊지 않고 있다면 언젠가는 실현된다'는 나의 좌우명 처럼 이 책은 내가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잊지 않았으니 결국 이루어 질 것이다.

  아, 이책 결국 팔 수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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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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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로버트 카파가 누구인지 몰랐다. 물론 '카파이즘'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모름에 대해 부끄러워한 적도 없다.

 카파이즘(Capaism)_기자정신을 뜻하는 용어.

세계적인 전쟁사진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의 이름에서 따온 말로 기자정신을 뜻하는 용어이다. 로버트 카파는 전쟁을 전문으로 찍는 전쟁사진가로서, 특히 에스파냐내란 중에 찍은 사진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큰 전쟁터를 두루 누비고 다니며 전쟁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1936년 《라이프》지 표지에 에스파냐내란 중에 찍은 카파의 사진이 실렸다. 참호를 뛰쳐 달려나가던 에스파냐의 한 병사가 날아오는 총탄에 맞아 양팔을 벌린 채 갑자기 얼어붙은 표정으로 쓰러지는 처절한 장면을 담은 이 사진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전쟁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사진은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권에 대항하는 신호탄이 되었으며, 전쟁의 처절함을 그 무엇보다도 사실적으로 증언하는 데 공헌하였다.

로버트 카파는 에스파냐내란 외에도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팔레스티나의 이스라엘 독립전쟁, 인도차이나전쟁 등을 기록하였고, 1954년 인도차이나전쟁에서 사망하였다. 이후 로버트 카파와 같은 투철한 기자정신을 일컬어 '카파이즘'이라고 하게 되었다. (출처_네이버 백과사전)

 그러나 내가 전쟁, 기아, 종군기자, 역사 등에 대한 관심까지 전무했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아주 조그마한 이름 없는 씨앗이었다. 나는 늘 이런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TV에서 관련 소식을 전해주면 최소한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무지했다.

 이 책을 읽은 것도 열에 아홉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씨앗이 새싹이 되기 위한 호기심. 나는 새싹이 되고 싶었다. 누런 잎이 없는 새싹. 그리고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라는 카피가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을 골랐다. 전쟁은 늘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성적인 것이다. 기자라면 감성보다는 이성에 따라 움직인다. 나는 그 이성을 보는 눈이 궁금해졌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기사도 필요 없는 사진 한장으로 말하는 이성.

 다음날 아침, 간밤에 푹 잔 탓인지 한결 기분이 좋았다. 수염을 깎으면서, 보도 사진가로 산다는 것과 다정한 마음을 잃지 않고 간직한다는 것이 서로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병사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장면은 빠뜨린 채 그저 한가하게 비행장 주변에 앉아 있는 모습만 찍은 사진은 사람들에게 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려면, 전사자와 부상자까지도 여과 없이 찍은 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내가 감상에 빠지기 전에 그런 장면들을 한 통의 필름에 담아두길 잘했다는 판단이 섰다. p47

 카파는 이력부터 화려하다. 유명세로도 그렇지만 그의 일대기 또한 그렇다. 어쨋든 그는 유태인의 아들이었고 헝가리인이었다. 전쟁은 사람을 둘로 가른다. 적과 동지로. 하지만 그는 고국에서도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된 몸이었다. '국적불명'. 그러나 우선 적국인으로 분류된 그는 아군도 적군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입신양명하는 사람은 대부분 천우신조의 기운을 띠는 것 같다. 카파는 내내 운이 좋았다. 포탄도 잘 피했고 물에 빠져서 기절했지만 살아났다. 결국 지뢰를 밟고 폭사로 생을 마감했지만.

 병사들이 나를 깨운 것은 녹색등에 불이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왼발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내밀면서 몸을 던졌다. 피로가 가시지 않아 몽롱한 상태였던 나는 일천, 이천, 삼천을 세는 대신 다른 말을 되풀이했다.

 "백수 사진기자 하강, 백수 사진기자 하강, 백수 사진기자 하강..."

 갑자기 내 어깨가 확 당겨졌다. 낙하산이 펴진 것이다.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혼잣말을 해댔다.

 "백수 사진기자 공중부양."

 그러나 하강한 지 일 분도 채 안 돼 낙하산이 숲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위에 걸려버렸다. 나는 밤새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했고, 덕분에 내 두 어깨는 궁둥짝의 무게를 확실히 실감했다. 무수한 탄환들이 내 주위를 스쳐갔지만, 감히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헝가리 사투리 때문에 까딱하면 적군과 아군 모두로부터 사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p94

 아군이 될 수도 있고 적군이 될 수도 있는 까마귀같은 신분의 그는 그 상황을 잘 이용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어주었고 그가 위태로울 때마다 손을 잡아주었다. 

 전쟁은 이성적이라고 미리 말해두었지만 매우 감성적인 것이기도 하다. 잔혹한 학살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공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장의 군인들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융통성과 인간미도 잃지 않았다. 그런게 인간적인 사람들이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쳐서 적을 폭사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되묻지 않을 수 없을정도로.

 "이 전쟁은 꼭 늙은 여배우 같수다. 상황은 점점 더 험앗해져만 가는 가운데 사진발까지 더욱더 나빠지니 말이오" p67

 나는 중간중간 나오는 카파의 사진 속의 군인들의 얼굴과 죽은 시신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이 내 아들이라면.'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진한장이 아니었다. 적도 동지도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전쟁은 예술이 아니었다.

 이제는 정말 우리가 하나였던가 자문하게 만드는 분단상황일지라도 휴전은 휴전이다. 나는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전쟁은 도처에 있었다. 월드컵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남한의 열기 한편으로 미사일 공격의 열기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부한 전쟁론일지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현실을 냉혹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쟁이 없는 긴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자의와는 관계없이 시작된 싸움이다. 바야흐로 전쟁도 글로벌인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전쟁의 실상은 생각보다 이질적이었다. 나는 80년대에 태어난 그야말로 배불리 먹고 신나게 놀며 자란 세대이다. 불과 몇십년 전 우리는 식민지였고 분단이 되었었다. 굶주림에 영혼까지 팔아넘길 지경이었으나 이제는 음식 쓰레기를 쌓아둘 곳을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나 자신이 전쟁에 대해, 그것도 눈으로 보여지는 사진에 대해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내 눈 앞의 사진 속에 정말로 시체가 있는거야? 그것도 총과 폭탄으로 난도질 당한?'

그것은 너무도 생소해서 마치 편안하게 쉬고 있는 한 명의 병사 같았다. 그래서 그가 내 가족이었다면? 하고 생각하곤 더욱 슬퍼졌다. 나는 그 다음부터 나오는 사진마다 배경을 상상해보았다. 벌판에 있는 군인들이 보이면 내가 그 벌판위에 함께 있다고 상상했다. 너무 외롭고 무서웠다.

 나는 학창시절 발표수업이 있는 날에는 몸 속의 모든 장기가 꿈틀대면서 일주일 전에 먹은 도시락까지 넘어올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카파와 원정을 떠난 군인들은 출격 직전 구토를 했다. 내 생에 몇 안될 끔찍한 순간들도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작은 공포에 불과하다.

 전쟁도 하나의 삶이다. 그것이 실제 전쟁이든 또 전쟁을 비유한 삶이든 그것은 어쨋든 인생의 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유머를 잃어서는 안된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꽃피우고 전우애가 싹튼다. 원수같던 사람이라도 그리워지게 하는 것이 전쟁이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전쟁이 지겹다. 삶의 부분이라고 치부하기엔 고통이 너무 크다. 의미 없는 싸움일 뿐이고 끝없는 살육일 뿐이다.

 앞으로 북아프리카의 사막이나 이탈리아의 산악지대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능가하는 공략작전도, 파리에 필적할 만한 도시의 해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가스통에게 이제 전선으로 돌아가 봐도 전망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똑같은 장면들만 계속해서 찍을 게 뻔하다고. 장애물 뒤에 웅크린 병사들하며, 굉음을 내며 전진하는 탱크들하며, 미친 듯이 손을 흔드는 사람들 무리는 죄다 내가 어디에선가 이미 찍었을 법한 사진들의 판박이에 지나지 않을 거라고. p240 

 이제는 멈출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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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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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떠나고 싶었다. 마음이라는 놈은 각자가 받는 느낌의 강도가 다른데 내 경우에는 그 정도가 아주 컸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하고 모든 일을 접었다.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지난 여행의 추억 때문이었다. 여행은 그토록 강렬한 마약과도 같았다. (이 책의 지은이는 여행을 중독이라 부르는데 반대했지만^^)

 겨울만 되면 아니, 찬 공기와 잔비만 내리는 날씨면 어김없이 런던의 새벽 캔징턴 가든에서의 산책과 어둡고 우중충한 공기의 몽마르트 근처 골목들, 매캐한 냄새가 났던 엄숙한 이탈리아의 성당이 떠올랐다. 눈물날 정도로 떠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사실 떠나기로 작정한 이후 아직 다시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다. 다시 일상에 찌들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무렵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고보니 이 책,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여행기이다.

 나의 첫 해외 여행은 일본이었다. 지인의 지원아래 경비를 대폭 줄이고 동생과 둘이 나선 첫 배낭여행은 힘들었다. 그 때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마른 몸으로 내 몸무게만한 배낭을 매고 일주일 동안 걸어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행은 여행사에서 단체로 배표를 끊고 JR패스도 끊어서 마치 패키지 여행처럼 보였지만 일단 일본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개인행동을 하고, 다시 도시를 옮길 때만 함께 이동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첫 여행이었지만 두려움이나 위험이 덜 했던 것 같다. 하루는 숙소에서, 하루는 길에서 지내는 식이었는데 밤을 새고 길바닥에 있어보거나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이 단체로) 야간기차를 타는 것은 참 멋진 경험이었다. 아담한 호텔 방안의 비교적 커다랗고 시원한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도쿄의 밤은 정말 아름다웠다. 여행의 막바지에서 여권을 잃어버리기도 해서 일본 경찰서와 대사관도 갔는데 그게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사실 잃어버리고 나서 당황한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보호자인 부모님이 한국에서 조치를 취할 때 까지 일본에 눌러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도 했었다.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돌아다니긴 했는데 당시에는 일본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었고 사실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다는 것 말고는 한국과 다른게 없더라. 그래서 사진만 왕창 찍어왔는데 지금 그때의 사진을 다시 보면 정말 사슴이 많았던 일명 사슴 공원을 제외하고는 여기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지만 당시에 내가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은 분명하게 내 마음속에 담겨져있다. 나는 그 여행으로 10대에 배울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무엇보다 너무도 싫어했던 일본이라는 곳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 전부터 일본 친구들과 펜팔을 했었는데 이 여행을 계기로 더욱 열정적이 되었던 것 같다.

 두번째 해외여행은 유럽이었다. 대학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었다. 여자 둘이서 해외는 절대 안된다던 아빠도 내가 낸 여행 계획보고서를 보시고는 허락해 주셨다. 사실 그 전에 벌써 비행기표까지 끊어 놓았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어느정도의 두려움이 있다. 나에게도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친구와 단 둘이서 그렇게 잘도 돌아다녔는지 기특하기도 하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근 몇달을 친구와 만나서 루트를 세웠다. 비행기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가 준비한 여정이었다. 지도가 있어도 길을 몰라서 30분이면 될 길을 3시간을 돌아다닌적도 있다. 종일 초코바 몇개와 물만 먹으면서 돌아다녔지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잃고 돌아다닐 때 유럽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만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파리의 케밥집 젊은이는 태권도를 배웠다며 자랑했었다. 런던에서는 지하철 표를 사용하는데 사용방법에 대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다가 분명 나는 영어를 하는데 상대방이 못알아듣고 다른 대답을 하니까 대화를 포기하고 그냥 가려고 했었다. 그 때 그 흑인아저씨는 우리를 불러세우고 '왜 영어를 하지 않아? 영어를 말하려고 노력해야지. 포기하지말고 계속 말하는거야'라고 혼냈다^^; 영어가 안통하면 신경질을 내며 종이에 적어주는 사람도 있는데 이 아저씨의 말을 듣고 영어공부의 방법까지 찾은 것 같았다.

 보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여행하는 내내 투자한 돈만큼, 기대했던 것 만큼 감흥이 없어서 조급했었다. 여행 내내 집에 오고 싶은 마음도 한번 생기지 않았고 로마에서 귀국하려고 할 때도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 '정말 좋았어'라는 마음이들지 않았었다. 여행이란 당시에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녀오고 난 후의 추억이 정말 값진 것이다. 나도 지금은 주기적으로 여행의 감기에 걸린다. 여기 별로야. 라고 생각했던 곳도 지나고 나면 가장 좋은 추억의 장소가 되곤 한다. 이탈리아 피잣집에서 외국인에게 몰카를 당한 것도 당시에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재미있는 애피소드가 되었다.

 나는 여행은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는 습관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아빠는 내가 어릴적 부터 국내의 곳곳에 데리고 가 주셨다. 숙소보다 텐트를 좋아하는 분이라서 산 속에서 캠핑도 자주 했었다. 당시에는 억지로 주말마다 끌려다니는게 싫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모두 '여행'이었고 가족의 추억이었다.

  나 또한 그렇고 이 여행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말대로 여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도 회사에서 주는 휴일로는 '여행 다운 여행'을 하기에 너무도 터무니 없다고 생각해서 여러번 퇴직;;까지 생각해본적도 있다. 이산하 학생 처럼 학교를 자퇴하거나 어느 젊은 부부 처럼 직장을 그만 두고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용기 있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털어놓는 여행의 끝에 찾아올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면 일탈은 '모험'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일탈을 꿈꾼다. 여행기를 읽으며 이 사람은 걱정없이 여행하고 있구나...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 책은 칭찬할 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여행자의 현실까지 담은 여행기라는 것이 손꼽을만 하다.

장기여행 하는데 힘들지 않아?

돌아가면 뭐 먹고 살거야? 등등의 질문을 서슴치 않고 하고, 여행자들 또한 거리낌 없이 대답한다.

  여행지의 풍경과 만나는 것은 쉽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풍경만 보고 오는 여행도 좋겠지만 현지에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도 값지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현지에 사는 한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타향살이의 어려움과 이민의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냉혹했다. 그리고 문화와 문화가 만나서 어울려 지내는 것이 좋아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는 방법을 좀 더 다양하게 배우고 있었다. 이 책에는 단순히 지은이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게 아니라 제목 그대로 카오산에서 만난 세계의 여행자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여행은 일탈임과 동시에 현실이다. 이 것을 직업삼아 살아가는 건 어쩌면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여행을, 여행이 가져다주는 일상탈출을 꿈꾼다.

 떠나고 싶은가? 그럼 마음만 먹어라. 여행은 습관되면 좋지만 하면 할 수록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마음 먹고 시행 해야 비로소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늘 말한다. 여행은 질러야 한다고. 우선 지르고 나면 모든 고민은 사라진다. 거창한 여행만 여행이 아니다. 여행의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그 기회를 만들어 보자. 이제 여름 휴가도 다가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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