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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카리브 해에 누워 데낄라를 마시다
이우일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평점 :
도서관에 신착도서로 빌려본 책. 그래서 도서관 책이지만 새 책을 가장 먼저 읽을 수 있었다.
사실 멕시코, 데낄라 어느것도 나의 관심 밖이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멕시코 보다는 브라질이 더 솔깃했으니까... 이우일의 그림이 있는 여행기라는 것이 책을 고른 이유였다. 그림이 있는 여행기라니... 물론 탄산고양이의 뉴욕 여행기에서도 삽화는 많이 나왔지만 이우일의 그림도 재밌을 것 같았다. 소설에 치중한 책 읽기를 분산시키는 목표의 일환으로 적어도 중간중간에 여행기를 한 권씩 읽어주기로 마음먹은 이유도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비행기 못타서 죽겠는걸 책으로나마 위로하기 위해...(그리고 미래의 여행계획도 흐흐..)
이우일 특유의 그림과 멕시코와 쿠바에 어울리는 색깔로 버무려진 이 책은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멕시코나 남미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여행기였다. 하지만 멕시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만 할 것 같다. 쿠바에 여행가는 것이 꿈인 나에게 이 책 속의 쿠바 이야기는 환상적이었으니까... TV에서 본 '자유'와 예술, 체게바라로 가득찬 혁명의 나라 쿠바는 충격이었다. 어쩌면 그 곳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소비문화를 누리는 대한민국 사람인 나에게 하나의 로맨틱한 배경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실제로 마주치는 쿠바는 더욱 매력적일 것이다.
더운 날 도서관 자료실 구석의 에어컨 곁에 서서 읽는 책은 참 맛있다. 의자만 곁에 있다면 참 좋으련만 (낚시용 의자를 휴대할까..) 책상이 있긴 하지만 그 쪽은 에어컨이 부실하다... 그리고 서가 사이에서 책에 둘러싸여서 은근한 햇살을 받으며 읽는 시간은 더 없이 행복하니까.
얇은 책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서서 읽기 시작했는데 끝이 없다. 아마도 여행기에다가 그림까지 있으니 실제로 여행하는 것 처럼 그것들을 충분히 느끼고 바라보기에 그냥 글씨만 있는 소설책보다도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특히 멕시코 부분에서 '위험하다'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뭐 여행이야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 아닌가. (난 여행지에서 집시도 소매치기도 잘 따라 붙지 않는 요상한 여행객이었다... 하도 추레해서?? 다만 파파라치가.. ^_^) 이렇게 '위험'을 흘려넘기며 '쿠바에 가고 말거야'라고 하다가도 곧 조금은 무서워져서 그곳에 갈 때는 보디가드를 챙겨가야겠다는 바람직한 계획을 하게 된다.
이 여행기에는 '어디어디가 좋으니 꼭 가봐라'거나 '뭘 해봐야한다'는 둥 하지 않는다. 좀 이상한 여행기랄까. 지극히 개인적인 하나의 일기같은 여행기이다. 이우일과 부인 선현경, 그들의 꼬마공주 은서가 함께한 가족여행이라서 그런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서점엔 꼭들러서 현지의 (혹은 전혀 다른 나라의) 책을 구입하는 것이 취미인 것 같다. 책 좋아하는 나도 여행지에서 기념품으로는 책, 음반 등을 사려고 '노력'한다. 읽지도 못할놈의 책 뭐하러 사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게다가 나는 외국어도 그냥 무작정 좋아하는 편이라 그 생판 모르는 이국의 활자들만 보아도 뒤로 자빠질 것 처럼 좋다. 그림책을 사오는 것은 생각을 못했었는데 나중에 한번 따라해봐야겠다.^^
***어쩌면 어느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뇌수 속에 추상적으로 그려진, 그곳에 대한 자신의 관념속 도시를 그저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92)***
정말 그런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가본 도시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금방 익숙해지는 이방인인 나의 모습은.
그래서 나는 전혀 몰랐던 도시로의 여행을 꿈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그런 도시 말이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으로 계획하지 않은 머뭄을 경험하면 어떤 기분일까.
여행지에서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은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18살때 배를 타고 동생과 떠난 일본여행에서 우리는 여권을 가방채로 잃어버렸다. 여행막바지라서 심하게 당황되었다. 대사관에도 가고, 경찰서에도 가고 별의 별 곳을 다 가본 것 같다. (기념으로 경찰 아저씨가 쓰던 연필을 받았다;;) 함께 간 보호자 역할의 '삼촌'이라 불렀던 분은 정말 놀라서 바둥바둥거릴 때, 나는 혼자 '그래, 이런식으로 채류하는거야....' 하고 므흣한 웃음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일본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전혀 없었던 때에 별 감흥도 못 느꼈다고 생각했던 일본 여행인데도 나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었다. 여행은 당시에 뭘 보고 뭘 느꼈는지는 후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밥을 먹었던 곳의 가게 이름이 뭐였는지도 기념품을 구경했던 곳은 어디였는지도 희미해진다. 그러나 그 때 그 장소의 공기는 절대 잊을 수 없다. 비만오면 생각나는 영국의 겨울과 눈만 오면 생각나는 (이례적이었던) 파리의 눈쌓인 거리, 어둠이 깔린 저녁이면 생각나는 도쿄의 야경 등. 이것은 시각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후각적인 것에 가깝다. 문득문득 공기에서 날리는 어떤 향이 그 때 그 곳을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이다.
아주 예전에 헤어졌던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