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탄줘잉 엮음, 김명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들어간 인터넷의 책 동호회.

요즘은 네이버에서 노느라 그곳은 소홀했는데 특히 이 카페는 가입하고 활동은 하지 않아서(워낙 책 카페 가입한 곳이 많아서..) 그런 게시판이 있는 줄 몰랐다.

 중고책시장.

책을 사고 파는 게시판이다. 사고 싶은 책은 많고 돈은 부족하고 책을 산다해도 들여놓은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나도 책을 정리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내가 읽었던 동화책도 안버리시는 아빠가 알면 쫓겨날 일이지만.  

 눈 딱 감고 집에 있는 책을 둘러보았다. 읽었지만 소장가치가 없는 책. 나이가 들어서 불필요해진 청소년을 위한 책. 사 놓고 영 눈이 가지 않아서 읽지 않은 책 등등....... 일주일간 정리해보니 약 10권의 책이 쌓였다. 절대 내 손에 들어온 책은 버리거나 남 주지 않는다는 내 신조가 퇴색하는 순간 퇴출대상이 되어버린 책들. 이 중에는 선물받은 책은 없지만 나는 소장욕심이 많아서 결국 한번씩 다시 읽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 10권 중 첫 번째 퇴출대상인 이 책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는 내가 작년말쯤 구입한 것이다. 지금 기억에는 아마도 당시 회사 추천도서 목록이었고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으며 무미건조하고 삶의 낙을 잃은 나에게 꼭 해야할 49가지를 알려주리라고 구입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사놓고는 읽지 않게 되었는데 이유인 즉 워낙 소설류만 들이파는 스타일이었고 특히나 이런 '마음따뜻하게 해 줌과 동시에 자기개발과 인생의 지침서가 되어주는' 책과는 동떨어져 있었기에.

 남 주기 전 읽어보기나 하자며 집어든 책은 의외로 괜찮다. 이게 팔기 아까운 미묘한 감정인지 아니면 정말 책의 내용이 좋아서 갈등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지만 점점 후자의 이유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거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이 책은 모두 49가지의 살아있는 동안 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들을 나열해주고 있다.

'먼 훗날,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하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행복을 위하여 지금 당장 지켜야 할 소중한 약속....' 

책 표지의 카피는 이 책이 자칫 서점에 줄을 지어 놓여져있는 여느 자기계발관련 책과 같다고 여기게 한다. 특히 요즘은 마음을 비워주는, 나를 사랑하는, 남을 이해하는, 삶을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이라는 주제의 책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런류의 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나처럼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대할 수 있다.

 물론 이 책 안에서도 은사를 찾아가보라든가 친구가 소중하다든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진부한 조언이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하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예를 들면서 나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특히 내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여섯번째 할 일에 나오는 '고향 찾아가기' 이야기이다.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을 증오하던 소년은 고향을 떠나 악착같이 일해서 성공한다. 그는 그가 일하는 분야에서 일류로 성공하였지만 갑자기 몸이 아프고 난 후 고향을 떠올리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긋지긋한 가난 뿐이었던 내 고향. 사람은 누구나 아프고 힘들 때 고향을 떠올린다고 했던가. 그도 그랬나보다. 다시 보는 고향은 예전과 달랐다. 높은 건물이 지어져 있었고 도로도 났다. 그러나 그가 자랐던 마을은 여전히 가난했다. 백발노인이 된 마을 어른들과 함께 자란 친구들은 지금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다. 고향에 도착한 그는 우선 잔치를 벌였다. 마을 사람들이 약소한 선물을 들고 찾았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하고 잔치를 즐기도록 했다. 얼마 후 어릴적 친구들이 도착했는데 그 중 한명이 대표로 싸구려 술병을 들고 왔다. 그는 친구들을 반기며 기쁘게 술잔을 따랐다. 순간 친구들을 당황하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던 그가 말했다.

'온갖 술을 마셔보았지만 오늘 이 술보다 맛있는 것을 마셔본적이 없다네. 아 나는 벌써 취하는 것 같구만..'

친구들과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술병 안에는 맹물이 들어있었다. 친구들은 술을 살 돈이 없어서 물이라도 가득 채워왔고, 설마 부자가 된 친구가 이런 싸구려 술을 마시자고 하지 않겠지 하고 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껄껄 웃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려운 것들 중에 하나는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다. 우리들끼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만나는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서로를 대하고 진실된 우정을 나눌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책의 주인공은 말했다.

서른이 될 때까지 친구를 사귄다는 건 맞아.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친구는 신경 단위와 같아서 계속 잃기만 하고 한번 잃어버린 친구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지.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중에서.]

 나는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줄곧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친구들이 신경단위와 같아지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 스스로가 그들에게 있어서 신경단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장소는 변해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책 말미의 글에서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친구가 곧 고향이라고.

 이 책에 나와있는 49가지를 모두 실천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당장 오늘 하루 해야할 일 목록중에 하나를 실천하는 것도 힘드니까. 하지만 '잊지 않고 있다면 언젠가는 실현된다'는 나의 좌우명 처럼 이 책은 내가 소중한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잊지 않았으니 결국 이루어 질 것이다.

  아, 이책 결국 팔 수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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