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떠나고 싶었다. 마음이라는 놈은 각자가 받는 느낌의 강도가 다른데 내 경우에는 그 정도가 아주 컸다.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하고 모든 일을 접었다.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지난 여행의 추억 때문이었다. 여행은 그토록 강렬한 마약과도 같았다. (이 책의 지은이는 여행을 중독이라 부르는데 반대했지만^^)

 겨울만 되면 아니, 찬 공기와 잔비만 내리는 날씨면 어김없이 런던의 새벽 캔징턴 가든에서의 산책과 어둡고 우중충한 공기의 몽마르트 근처 골목들, 매캐한 냄새가 났던 엄숙한 이탈리아의 성당이 떠올랐다. 눈물날 정도로 떠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사실 떠나기로 작정한 이후 아직 다시 비행기를 타지는 못했다. 다시 일상에 찌들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던 무렵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고보니 이 책,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여행기이다.

 나의 첫 해외 여행은 일본이었다. 지인의 지원아래 경비를 대폭 줄이고 동생과 둘이 나선 첫 배낭여행은 힘들었다. 그 때가 고등학생이었는데 마른 몸으로 내 몸무게만한 배낭을 매고 일주일 동안 걸어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행은 여행사에서 단체로 배표를 끊고 JR패스도 끊어서 마치 패키지 여행처럼 보였지만 일단 일본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개인행동을 하고, 다시 도시를 옮길 때만 함께 이동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첫 여행이었지만 두려움이나 위험이 덜 했던 것 같다. 하루는 숙소에서, 하루는 길에서 지내는 식이었는데 밤을 새고 길바닥에 있어보거나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이 단체로) 야간기차를 타는 것은 참 멋진 경험이었다. 아담한 호텔 방안의 비교적 커다랗고 시원한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도쿄의 밤은 정말 아름다웠다. 여행의 막바지에서 여권을 잃어버리기도 해서 일본 경찰서와 대사관도 갔는데 그게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사실 잃어버리고 나서 당황한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보호자인 부모님이 한국에서 조치를 취할 때 까지 일본에 눌러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도 했었다.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돌아다니긴 했는데 당시에는 일본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었고 사실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다는 것 말고는 한국과 다른게 없더라. 그래서 사진만 왕창 찍어왔는데 지금 그때의 사진을 다시 보면 정말 사슴이 많았던 일명 사슴 공원을 제외하고는 여기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다. 그렇지만 당시에 내가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은 분명하게 내 마음속에 담겨져있다. 나는 그 여행으로 10대에 배울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무엇보다 너무도 싫어했던 일본이라는 곳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 전부터 일본 친구들과 펜팔을 했었는데 이 여행을 계기로 더욱 열정적이 되었던 것 같다.

 두번째 해외여행은 유럽이었다. 대학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었다. 여자 둘이서 해외는 절대 안된다던 아빠도 내가 낸 여행 계획보고서를 보시고는 허락해 주셨다. 사실 그 전에 벌써 비행기표까지 끊어 놓았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은 어느정도의 두려움이 있다. 나에게도 그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친구와 단 둘이서 그렇게 잘도 돌아다녔는지 기특하기도 하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근 몇달을 친구와 만나서 루트를 세웠다. 비행기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가 준비한 여정이었다. 지도가 있어도 길을 몰라서 30분이면 될 길을 3시간을 돌아다닌적도 있다. 종일 초코바 몇개와 물만 먹으면서 돌아다녔지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잃고 돌아다닐 때 유럽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만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파리의 케밥집 젊은이는 태권도를 배웠다며 자랑했었다. 런던에서는 지하철 표를 사용하는데 사용방법에 대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다가 분명 나는 영어를 하는데 상대방이 못알아듣고 다른 대답을 하니까 대화를 포기하고 그냥 가려고 했었다. 그 때 그 흑인아저씨는 우리를 불러세우고 '왜 영어를 하지 않아? 영어를 말하려고 노력해야지. 포기하지말고 계속 말하는거야'라고 혼냈다^^; 영어가 안통하면 신경질을 내며 종이에 적어주는 사람도 있는데 이 아저씨의 말을 듣고 영어공부의 방법까지 찾은 것 같았다.

 보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여행하는 내내 투자한 돈만큼, 기대했던 것 만큼 감흥이 없어서 조급했었다. 여행 내내 집에 오고 싶은 마음도 한번 생기지 않았고 로마에서 귀국하려고 할 때도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 '정말 좋았어'라는 마음이들지 않았었다. 여행이란 당시에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녀오고 난 후의 추억이 정말 값진 것이다. 나도 지금은 주기적으로 여행의 감기에 걸린다. 여기 별로야. 라고 생각했던 곳도 지나고 나면 가장 좋은 추억의 장소가 되곤 한다. 이탈리아 피잣집에서 외국인에게 몰카를 당한 것도 당시에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재미있는 애피소드가 되었다.

 나는 여행은 연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는 습관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아빠는 내가 어릴적 부터 국내의 곳곳에 데리고 가 주셨다. 숙소보다 텐트를 좋아하는 분이라서 산 속에서 캠핑도 자주 했었다. 당시에는 억지로 주말마다 끌려다니는게 싫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모두 '여행'이었고 가족의 추억이었다.

  나 또한 그렇고 이 여행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말대로 여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도 회사에서 주는 휴일로는 '여행 다운 여행'을 하기에 너무도 터무니 없다고 생각해서 여러번 퇴직;;까지 생각해본적도 있다. 이산하 학생 처럼 학교를 자퇴하거나 어느 젊은 부부 처럼 직장을 그만 두고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용기 있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털어놓는 여행의 끝에 찾아올 '현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면 일탈은 '모험'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일탈을 꿈꾼다. 여행기를 읽으며 이 사람은 걱정없이 여행하고 있구나...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 책은 칭찬할 점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여행자의 현실까지 담은 여행기라는 것이 손꼽을만 하다.

장기여행 하는데 힘들지 않아?

돌아가면 뭐 먹고 살거야? 등등의 질문을 서슴치 않고 하고, 여행자들 또한 거리낌 없이 대답한다.

  여행지의 풍경과 만나는 것은 쉽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풍경만 보고 오는 여행도 좋겠지만 현지에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도 값지다. 나는 여행하는 동안 현지에 사는 한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타향살이의 어려움과 이민의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냉혹했다. 그리고 문화와 문화가 만나서 어울려 지내는 것이 좋아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는 방법을 좀 더 다양하게 배우고 있었다. 이 책에는 단순히 지은이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게 아니라 제목 그대로 카오산에서 만난 세계의 여행자와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여행은 일탈임과 동시에 현실이다. 이 것을 직업삼아 살아가는 건 어쩌면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여행을, 여행이 가져다주는 일상탈출을 꿈꾼다.

 떠나고 싶은가? 그럼 마음만 먹어라. 여행은 습관되면 좋지만 하면 할 수록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마음 먹고 시행 해야 비로소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늘 말한다. 여행은 질러야 한다고. 우선 지르고 나면 모든 고민은 사라진다. 거창한 여행만 여행이 아니다. 여행의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그 기회를 만들어 보자. 이제 여름 휴가도 다가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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