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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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몇번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 운명은 정말 정해져 있는 것일까.

영화 데스티네이션에서는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남은 경우 다른 시간에 죽음의 예정이 찾아온다. 결국 어떻게든 죽음의 운명에 순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늘 운명이라는 것을 무의식에서부터 의식하며 살아가고, 그 것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성을 쌓는다. 언젠가는 죽을것이라는 명제 앞에서 발버둥치면서 운명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한편으로는 순응하면서도 죽음 전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 속담에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잖은가.

책의 32개의 챕터의 시작마다 나오는 성경구절과 명언, 영화 대사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 세상은 하나의 다리일 뿐이다. 이 세상을 그냥 건너가라. 이곳에 너의 집을 지으려 하지 마라.-(성서외전)'는 구절은 이 책의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다.

반전의 반전을 되풀이하여 잔잔하고 낯뜨거운 남녀의 로맨스에 스팩터클함을 더한다. 운명과 죽음, 사랑이라는 신비적인 요소까지 더해져서 이 소설은 너무도 쉽게 읽히고 읽는 동안 즐겁다.

프랑스의 영상세대 작가라는 기욤 뮈소(개인적으로는 귀연 미소 라고 부른다^^)는 그 수식어에 걸맞는 소설을 썼다. 소설 초반에 유치하기 짝이없는 인물 설정과 몇시간만에 사랑에 빠진 남녀의 모습은 이 남자(작가)가 소설을 제대로 쓰는구나 싶었다. 이 부분을 집어볼까. 우선 남자 주인공 쌤의 설정. 그는 오드아이를 가졌다.(아 이것부터 뭔가 팍 오지 않나? 오드아이를 가진 남자 주인공! 의도적인 신비요소) 게다가 그는 의사인데 부와 명예를 아랑곳 하지 않으나 누가 봐도 겸손하고 사랑스럽고 잘생기고 목소리까지 좋다고 묘사되는 남자이다. (젠장..) 여기에 그의 아픈 과거까지.. 연민의 정이 더해진다. 여자 주인공의 모습 또한 그렇다. 배우를 꿈꾸며 미국으로 왔지만 지금은 불법체류자 신세에 쌤에게는 변호사라고 속인다. 그러나 귀여우면서도 섹시하다.(이건 아무래도 작가의 이상형인듯^^)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그들의 행각은 잘 다듬어진 로맨스소설의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사라졌다. 그건 하나의 필수 설정에 불과하다. 그들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사랑해야 하는 운명인지를 보여주는.

이 책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과 약한자를 보듬어주는 자애로움과 인간의 사악함과 근본적인 삶과 죽음에의 성찰까지 다양한 요소가 들어있다. 동시에 프랑스 작가 특유의 문체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줄곧 '이 책이 영화로 나온다면 정말 대박이겠는데' 하고 생각했다.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역자 후기에서 정말 영화화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종종 우리는 '운명'의 노예가 된다. 운명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자애롭다. 그것은 '순리'라고도 불리우는데 순리란 거스르기 보다는 순응할 때에 평온을 느낄 것 같은 단어이다. 우리에겐 '도전'이라는 단어도 함께 한다. 그것이 순간의 진통제같은 것일지라도 우리 인생에 있어서 운명과 도전이란 뗄 수 없는 사이와도 같다.

그리고 '사랑'도.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추운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감옥에서도 수감자들은 겨울보다 여름이 잔인하다고 한다. 겨울은 누구나 서로를 껴않을 수록 따뜻해지기 때문에. 시려오는 옆구리가 뜨끈해지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뉴욕의 겨울을 배경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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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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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야 이 아줌마 우리엄마 또래다. 그냥 지나쳤을 그녀의 나이가 새삼 느껴졌다. 우리엄마 나이또래... 여느 아줌마잖아. 어디서 이런 힘이 솟아나는거지? 역시 한국 아줌마의 힘은 강한건가.

 긴급구호, 의료봉사 등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병원에서 밤낮을 꼴딱 새며 죽어가는 사람들 가슴을 짖눌러가며 CPR을 했던 새벽들을 기억하는 나는 더욱 잘 알고 있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 옆에서 강하지 않으면 같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엔 되레 강해진다. 내가 저 사람들을 살려야지, 내가 밝아져서 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어야지. 시간이 지날수록 나 혼자의 힘은 너무 작아지고 스스로 지쳐버려서 곧 나 또한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고통을 함께 느끼고 경지에 이르면 그녀처럼 강해지는걸까.

 한비야님은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몽골에 후원아동이 한명씩 있다. 그 중 방글라데시의 아도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의아한 것 중 하나,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후원아동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그렇제 자세히 알 수 있을까?

 현재 월드비전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로서는 원드비전의 시스템을 알고 있을것이다. 해서, 보통의 후원자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방글라데시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처음으로 후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마음을 굴뚝같았지만 학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후원하는 돈은 결국 부모님의 돈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후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으로 가장 먼저 후원금을 내야지 하고 결심했던 것이다. 졸업 전에 나는 취업을 하게 되었고 졸업 후 직장에 다니고 첫 월급을 받고 가장먼저 한 일이 적금통장을 만드는 것과 후원아동결연을 한 것이다.

 몇해전에 TV에서 방글라데시의 모습이 나왔는데 당시 내가 본 그 나라의 모습은 천국이었다. 극빈국에 속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우기가 되면 빗물이 그대로 새는 나무로 헐겁게 지은 집에 가족과 살고 있었다. 그 집이라는 것도 너무 헐거워서 무인도에서 대강 집은 집같았다. 더 놀랐던 것은 화면에 잡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너무도 행복해보인다는 것. 저 사람들은 끼니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가난한데 어떻게 저토록 아름답게 웃을 수 있을까. 아니나다를까, 방글라데시는 가난한 나라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지만 국민행복지수 1위의 행복한 나라였다.

 그때 TV로 본 방글라데시를 잊지 못하고 나는 줄곧 그 곳에 사는 아이와 결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역시 지금의 방글라데시 소년을 만났다. 처음 받아든 아이의 사진을 보고 난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는 후원자에게 보낼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때깔곱게 머리를 빗기고 교복(인것 같음)도 각이지게 입힌 모습 그대로였다. 뒷배경도 파란 벽앞에서 증명사진 찍듯이 찍은 사진이었는데 '보여주기'위한 옷차림과 달리 아이의 표정이 참 재미났다. 11살된 아이의 눈은 또랑또랑했고, 얼굴엔 특유의 장난끼가 가득하다. 역시나 좋아하는 것은 '축구'다. 나도 사진을 보는 순간 '아 너는 참 건강하게 뛰어놀겠구나.' 싶었으니까. 나는 처음 그 아이를 소개받은 후 부터 줄곧 '우리 아들'이라고 부른다. 동생이라고 하기엔 왠지 징그럽고(난 늦둥이 동생은 싫어ㅋ) 아이가 참 똘똘하게 생겼으니 딱 내 아들이 좋겠다 싶다.

 크리스마스때에도 선물금 2만원을 월드비전으로 보내어 의자, 사탕, 축구공, 비누 등을 보냈다. 많지 않은 돈으로 아이와 아이의 가족들도 참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나도 기쁘다.

 사실 월 2만원이라는 돈은 적다면 적은 돈이고 많다면 많은 돈이다. 나같은 짠순이에겐 더 그렇다. 월급을 받을 때는 적게 느껴졌던 돈이 일을 쉬는 요즘은 엄청난 액수로 느껴질때가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일년에 24만원의 돈이니 술값, 밥값, 쇼핑값 아끼면 된다.

 앞서 내가 이상하다고 한 것은 비록 내가 아이를 후원한지 1년이 조금 안되었으나 월드비전에서 보내오는 아동에 대한 소식이 너무 빈약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이렇게 보내는데 당신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줘야하는거 아니냐 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 큰아들이 정말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후원은 단지 개인 대 개인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1991년까지 해외원조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에 앞서서 전후에 받은 원조만 생각해보더라도 후원, 원조라는 개념의 중요성은 국가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나 한사람으로 인해 한국과 방글라데시와의 친교를 쌓는 계기가 된다면 너무 큰 과장일까.

 다른 나라의 아동을 후원하는 친구와 함께 언젠가 아이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아이들을 그렇게 예뻐하지 않았는데 역시 나이를 한두살 먹어가니 예쁜 아이들은 예쁘다.ㅋ

어서 타라줄의 나라에 가서 아이의 손을 꼭 잡아보고 싶다. 아이의 가족들도 만나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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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거짓말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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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범한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지만 결국 나는 그렇게 표현한다. 게이와 동거했던 경력에 애가 있는 여자와 결혼한 총각. 이쯤되면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캐릭터이지만 그의 내면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 평범은 비범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그는 비범을 평범으로 감싼다. 게이와의 동거를 절대로 내보여서는 안되는 터부로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백화점에서 만나 먼저 인사한다. 새아빠이지만 어느새 정말 아빠가 되어버린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아들의 진짜 아빠가 느낄 외로움도 추측해본다.

 어느날 갑자기 기억난 학생시절 여행에 잃어버린 손목시계를 빌미로 출근길에 자동차 핸들을 꺾는다. 그의 일탈. 그 순간 그의 마음에 일렁이는 묘한 양가감정을 요시다 슈이치는 적절하게 문장으로 표현한다. 일본 작가적인 표현법이라고 해야하나? 그들은 늘 이런 아주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 또는 무의식이라 좀처럼 말로 내뱉어 설명할 수 없는 것 까지 정확하게 문장으로 다듬어낸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내 감정들의 소용돌이와 먼지처럼 있는 둥 없는 둥 한것들 까지도.

 서평을 쓰는 독자는 종종 책을 읽는 동안 '어떤 식으로 서평을 써야하나'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고민에 빠졌다. 이 미묘한 남자의 거짓말의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는 지극히 심리적이다. 마치 한 사람의 일상과 그 심리를 쭉 훑어주는 것이라서 읽은 후의 느낌들을 모두 문장으로 옮기기란 나에게 역부족인 것 같다. 하기야 내 문장력이 거기까지 도달했으면 내가 책을 한 권 내고 말았겠지만^^

 매우 얇은 책이고 마치 내가 츠츠이인듯 자연스럽게 따라만 가면 되는 책이라 읽기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빨리 책장을 덮게 되어 유감이었다.

 '침묵'의 순간도 어떤 종류의 그것인지 세밀하게 집어주는 듯한 이 책이 참 좋았다. 요시다 슈이치가 왜 '이 소설은, 선물입니다'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짓말의 거짓말이라면 진실일까?

당신은 지금 맨발로 낙원을 걷고 있어. 지금 발 밑에 뭐가 묻어있는 것 같지 않아?

"괜찮아요, 아줌마라고 해도." 츠츠이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 녀석에게는, 내 아들인 이 녀석에게는 말이죠, 지금 우리들처럼 세상에는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28)

몇개월 뒤, 가하라는 사표를 내고 아파트를 정리해 고향인 오사카로 돌아갔다. 아마도 가하라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얘기를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젊었을 때에는 안락한 길은 너무 뻔한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이상 ?지 않은 나이가 되면 필사적으로 그 안락한 길로 돌아가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66)

"'아무 생각 없이'라는 말이 꼭 충동적인 건 아니네." (90)

이상하게도 자신이 추월한 차는 모두 나이 든 남자가 운전하는 것 같았고, 반대로 자신을 추월해 간 차는 모두 젊은 남자가 운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저 추월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추월당하면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92)

실제로 이유가 필요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간다 해도, 또 회사로 돌아간다 해도, 뭐든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저 8시간 동안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 것이지만 여기서 이제까지의 인생을, 아니 앞으로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얘기를 찾지 못한다면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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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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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다. 사랑했던 남자는 언니와 결혼하여 떠났다. 사랑했다고 믿었으나 지금은 증오하는 것 같다. 내가 '-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확실히 실망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증오인지 아니면 회한인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감정은 '여인'의 것이기 때문에 증오는 아닐 것이다. 그녀는 사랑을 했으니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오르가니스트'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엘스베트의 어린 아들이 엄마에게 묻는 어른스러운 말투의 천진한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처럼 사랑은 그저 사랑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사랑인 줄 몰랐던 순간 조차도 그저 미소 지으며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점점 본능적인 인간의 감성적 표현을 숨기는 방법을 배우면서 진화하는지도 모르겠다. 고전적인 배경을 한 영화를 보면 여자는 그렇게도 여성스럽고, 남자는 그토록 남성답다. 그것이 미의 척도인 시절이 있었다. 보이쉬한 여성과 예쁜미소의 남성을 선호하게 된 지금의 현실과는 다르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의 '나름'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시대를 살아간 등장인물들의 유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속물로만 비춰지는 남자 라요스와(그는 아마 현대였다면 사기꾼으로 감옥에 들락거렸을 것이다.) 답답할만큼 감내하는 에스터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읽는 도중에 화가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는 여성 또는 남성이 아닌 여성 그리고 남성이 있기 때문이다. (편의상 중성은 차치하기로 하자.)

책을 중간까지 읽는 동안 이 책의 작가 산도르 마라이가 여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몇년 전부터 그러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여성의 눈으로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뒤집어 놓은 책의 뒷표지에 왠 남자가 고독하게 서있었다. 남자 주인공 라요스를 표현한 인물일까? 하고 옆의 글을 읽어보니 그 사진은 산도르 마라이 자신이었다. 어째서 처음부터 작가가 여자일것이라고 생각했는지보다도 이토록 여성스러운 소설을 쓴 장본인이 남자라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헝가리의 대문호로 불리우고 있는 그는 '열정'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내가 이 '유언'을 읽게 된 것은 본래 '열정'을 추천받은 기억으로 고른 것이었는데 기억이 뒤섞여버려서 '유언'으로 잘못 고른 것이다. 이 책을 계기로 그의 책을 좀 더 읽게 될 것 같다. 책의 분위기와도 묘하게 닮아있는 잘 생긴 그의 사진 또한 마음에 든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는 남겨진 작품이 한정되어있어서 늘 마음이 아프다. 그는 오늘 로맹 가리 이후로 내 마음에 '자살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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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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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많다. 그런데 할 말이 없다. 첫째로 어제 저녁부터 복날 개처럼 힘이 없어져서, 둘째로 책의 내용이 워낙 달리 없어서....

책들을 맘껏 소개하고, 이만큼 책에 빠져 사는 여자도 있구나, 이 여자도 나처럼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일하기 싫은 사람이구나 등등의 공감대가 마구 형성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책 소개말고는 달리 줄거리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책이기도 하다. 보통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미리 타인의 서평을 꼼꼼히 읽는 것을 삼가는 편이다. 이를테면 스포일러성 내용이 담겨있을지도 모르고, 미리 읽는 다는 것에서 오는 재미와 감동의 반감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읽고 싶은 서평들은 대강읽는 편이다. 줄거리는 쏙 뺀채로 읽으려고 노력한다. 남이 책을 읽고 느낀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강렬한 느낌 때문에 나의 느낌 또한 그것을 따라가는 것은 싫기에. (사람 마음이란 그렇다. 분명 괜찮다고 하고 읽은 감상평도 분명히 내 순도 100%의 감상과는 일부 틀어지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독서에 앞서 몇몇 서평들을 쭉 훑어본 결과 의심이 절반이었다. 우선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백수가 넘쳐나는 이 시대를 적극 반영한 마케팅의 산물로 느껴졌고, 책 표지 또한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트렌드 도서를 피하는 습관에 반해서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책이 골라졌다. 서평은 반반이었다.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뭐야 이거?'라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좋다'는 사람보다 '뭐야?'라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서 더욱 신뢰가 안 갔던 것이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독서광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제목은 틀렸다. 이건 아니잖아~ 를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출이다. 주인공 서연이 백수인건 맞다. 자발적 백수. 29살의 그녀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자에게 아르바이트는 열외로 치부해버리는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백수가 되었다. (그러나 가끔 알바라는 것을 해서 먹고 사는데도 꼭 백수라고 불러야하는지 모르겠다.) 하루에 약 두 권의 책을 읽는 그녀가 백수인 이유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게 되면 책 읽을 시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순간 흠칫 놀랐다. 나도 똑같은 이유로 자발적 백수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지금도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내키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녀는 정말 남이 보면 쯧쯧 할만한 노처녀 백수라는 것이다. 어쨋거나 책 읽는 것 때문에 백수로 사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놀랍기도 하고 어쩐지 흐뭇해지기도 했다.

내가 백수가 된 것은 순전히 하루키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4개월 동안 책 한 장도 읽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거의 나는 껍데기밖에 없는 듯한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없는 시간 쪼개서 4개월만에 읽은 책이 '어둠의 저편'이었다. 얘기하자면 한도끝도 없지만 나는 정신이 버뜩 들었다. (남들은 미쳤다고 했지만) 아무튼 나도 '서연'처럼 책을 핑계로 이모양 이꼴로 당분간 살것 같다.

책을 소개하고, 책을 읽고, 책을 사고, 책을 말하는 것 이외에는 별 스토리가 없는 것이 이 책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다치바나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의 쉬운 버전이랄까? (내가 다치바나씨가 읽은 책들 목록을 봤을 때 어리둥절했기에... 하지만 이번 책의 경우 충격이 덜 했음) 그래서 '뭐 이따위 책이 다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책 책 책 말고는 다른 내용이 거의 없기에... 게다가 이 책은 두께가 있다. 300페이지를 넘기는 책 안에 온통 책 제목들과 인용구들과 작가의 이름만이 있다면 지루할만도 한 것이다. 여기에는 심각한 로맨스도, 유쾌한 코미디도 없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이면지를 옆에 두고 책 속에 등장하는 다른 책들과 작가, 영화들을 메모하던 나는 분명 즐거웠다. 어느때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 속에 책이 등장하면 더 없이 반가운 것이다. 이미 읽은 책은 읽어서 반갑고 읽지 않은 책은 읽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이미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정말 많다) 책들을 다 읽을 작정을 했다. 정말로 다 읽을지 몇 권만 읽다가 말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작가를 통해서 좋은 책들을 소개 받은 것 같아서 무척 신났던 이틀이었다. (절판된 도서도 꾀나 있었다. 구할 수 없는 책과 영화를 구해주는 사람이 내 이상형이다 ㅋㅋ)

할 말 없음으로 시작해놓고 꾀나 짓걸였군..

서연과 나의 취향이 많이 비슷한 것 같다. 영화도 그렇고..

(특히 '밝은미래' 이야기 할 때 너무 반가웠음^^)

로맹가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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