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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거짓말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평범한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지만 결국 나는 그렇게 표현한다. 게이와 동거했던 경력에 애가 있는 여자와 결혼한 총각. 이쯤되면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캐릭터이지만 그의 내면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 평범은 비범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그는 비범을 평범으로 감싼다. 게이와의 동거를 절대로 내보여서는 안되는 터부로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백화점에서 만나 먼저 인사한다. 새아빠이지만 어느새 정말 아빠가 되어버린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아들의 진짜 아빠가 느낄 외로움도 추측해본다.
어느날 갑자기 기억난 학생시절 여행에 잃어버린 손목시계를 빌미로 출근길에 자동차 핸들을 꺾는다. 그의 일탈. 그 순간 그의 마음에 일렁이는 묘한 양가감정을 요시다 슈이치는 적절하게 문장으로 표현한다. 일본 작가적인 표현법이라고 해야하나? 그들은 늘 이런 아주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 또는 무의식이라 좀처럼 말로 내뱉어 설명할 수 없는 것 까지 정확하게 문장으로 다듬어낸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내 감정들의 소용돌이와 먼지처럼 있는 둥 없는 둥 한것들 까지도.
서평을 쓰는 독자는 종종 책을 읽는 동안 '어떤 식으로 서평을 써야하나'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고민에 빠졌다. 이 미묘한 남자의 거짓말의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는 지극히 심리적이다. 마치 한 사람의 일상과 그 심리를 쭉 훑어주는 것이라서 읽은 후의 느낌들을 모두 문장으로 옮기기란 나에게 역부족인 것 같다. 하기야 내 문장력이 거기까지 도달했으면 내가 책을 한 권 내고 말았겠지만^^
매우 얇은 책이고 마치 내가 츠츠이인듯 자연스럽게 따라만 가면 되는 책이라 읽기엔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빨리 책장을 덮게 되어 유감이었다.
'침묵'의 순간도 어떤 종류의 그것인지 세밀하게 집어주는 듯한 이 책이 참 좋았다. 요시다 슈이치가 왜 '이 소설은, 선물입니다'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짓말의 거짓말이라면 진실일까?
당신은 지금 맨발로 낙원을 걷고 있어. 지금 발 밑에 뭐가 묻어있는 것 같지 않아?
"괜찮아요, 아줌마라고 해도." 츠츠이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 녀석에게는, 내 아들인 이 녀석에게는 말이죠, 지금 우리들처럼 세상에는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28)
몇개월 뒤, 가하라는 사표를 내고 아파트를 정리해 고향인 오사카로 돌아갔다. 아마도 가하라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얘기를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젊었을 때에는 안락한 길은 너무 뻔한 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이상 ?지 않은 나이가 되면 필사적으로 그 안락한 길로 돌아가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66)
"'아무 생각 없이'라는 말이 꼭 충동적인 건 아니네." (90)
이상하게도 자신이 추월한 차는 모두 나이 든 남자가 운전하는 것 같았고, 반대로 자신을 추월해 간 차는 모두 젊은 남자가 운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저 추월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추월당하면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92)
실제로 이유가 필요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간다 해도, 또 회사로 돌아간다 해도, 뭐든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저 8시간 동안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 것이지만 여기서 이제까지의 인생을, 아니 앞으로의 인생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얘기를 찾지 못한다면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