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하는 神의 나라 - 일본 지배세력의 정신세계
노 다니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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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시대, 분단의 비극, 전쟁, 민주화 운동...
위의 역사를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학창시절 국사과목을 통해 깊게 또는 얕게 알고 있는 지식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는 과거적 단어로 표현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우리를 반영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나라가 힘이 강하면 문제 없어.’, ‘핵무기를 개발해야지.’, ‘경제적으로 성장을 해야해.’,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가볍게 내뱉는 이 한마디 속에도 한반도와 세계의 역사는 반영되어 있다.

 불과 50여년 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는 식민지 노예의 나라였다. 멀고 먼 구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섬뜩해진다. 일본이 자의로 조선을 독립시키거나 제국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패전국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벌금 내는 셈 치고' 했던 것이 우리의 독립이다. 우리의 독립은 자주적이기 보다는 타의적이었음을 이해한다면 지금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충분한 반성을 하지 않는 것도, 매번 망언을 일삼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통해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의 역사 의식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치욕의 시간이었던 1940년대가(그 전에도 그랬지만) 빼앗은 자로서의 일본에게는 ‘영광의 역사’인 것이다. 패전하지만 않았더라면...이라고 아쉬워하고, 그 아쉬움이 고스란히 그 당시의 전쟁 영웅을 기리는 것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전범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일본인에게는 영웅 또는 신격화 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일본은 ‘일본인의 관점에서 본 자국의 역사관도 인정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기대하고 다짐한 것이 있다. 피해자로서 가해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객관적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것을 들어보고 이유나 알자고.
좌파든 우파든 지나치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정치성향은 경계해야한다. 또한 일본의 우경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면 ‘왜 뻔뻔스럽게 다시 우경화냐’고 묻고 싶지만 일단 그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서 속내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예전에 이순신에 관한 드라마가 인기가도를 달릴 때 관련 서적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네티즌의 대화 속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나의 역사'. 예를들면 조선이 어떤나라였고 어떻게 흥하고 망하였는지를 타인의 눈으로 보면 내가 배워온 나의 역사가 조금은 자국 위주의 역사 해석이었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이 쓴 일본 우경화에 대한 글인 이 책은 일본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흥미로운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우익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현상유지의 보수인데 이들은 과거사에 대해 무한히 사과하는 친한, 친중의 보수이다. 또 하나는 행동적 보수이다. 이들은 일본은 신의나라로 세계유일하고 아시아인과 어울리기 힘든 우수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과거사에 대해 절대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국제 정세와 일본 자국의 존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일본의 한 정치인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할 때 다른 한 쪽에서 망언으로 찬물을 붓는 것도 이러한 두 개의 우익이 있는 결과이다. 행동적 보수는 주로 친미파 인사를 중심으로 하여 침략전쟁을 '진출'로 인식하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침략이 진출이 될 때 한국, 중국 등의 일본 우경화에 대한 반발은 그 의미를 잃는다. 그들은 오히려 그 전쟁은 중국이나 한국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은 ‘자주독립의 확보와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하여’라는 명목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 '행동적보수, 호전적인 보수, 반격하는 보수'의 주장이고 이는 전쟁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른 나라에 대한 전쟁이 침략이나 싸움의 의미가 아닌 자주독립과 대동아 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이러한 입장은 일본의 교과서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교과서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과서란 한 나라의 정치노선과 정신세계, 역사를 총 망라하는 것이며 이러한 정신을 말랑 말랑한 시기의 학생들이 거름망 없이 흡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식화된 세뇌교육이 될 수 있는 무서운 무기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교과서 내용을 타국인 한국과 중국에서 간섭을 하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사교과가 선택과목으로 바뀐지 얼마 안되어서 불안한 한반도 정세와 독도, 간도문제가 붉어지자 다시 필수과목으로 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 교육당국이 얼마나 쉽게 민심에 흔들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국민 의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역사 교과서이니 그 중요성을 더 말할 것이 없다.

 일본은 우경화를 선택했다. 어떤 논리로도 전쟁을 합리화 될 수 없다. 서양 세력의 침략전쟁에 대항하여 동아시아를 지키겠다는 수단이 하필 또 전쟁인가? 전쟁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고 그 후 일어난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정당하다 하는 것이 옳은가? 전범을 신화하고 전쟁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정당화 하는 것은 분명 잘못 된 것이다. 우경화를 염려하는 것은 이런 무시무시한 사상이 그 뿌리라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일본이 주장하는 자국의 역사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도저히 이해불가하다고 생각했던 일본 극우파의 주장이 나온 배경 또한 알 수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이라고 했던가. 자국의 역사 인식이 중요한 만큼 상대의 역사를 이해해야 협의점을 찾기 쉽다. 영원할 것 같은 한일관계의 수평선을 이으려면 분명 일본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책을 읽다보면 섬뜩해진다. 일본이 우경화를 부르짖는 이유의 뿌리를 알게 되면 더욱 그렇다.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면 일본의 이러한 정책에 ‘전부 틀렸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자국에 한정하는 좁은 시야를 가지고 역사와 국제정세에 관심이 적은 경우에 해당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만 하더라도 특별히 ‘꼭 필요하다’거나 ‘절대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쪽도 나는 상관 없다.’는 방관자적 입장의 일본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정부로서는 우경화 정책을 별다른 무리 없이 진행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정치란 소수의 정치인에게 맡기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국민인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그것이 우리 나라의 정치이든 다른 나라의 정치이든 관계없이 그 영향은 우리에게 미친다.
비현실적인 일본 만화를 보는 듯한 일본의 우경화도, 헐리웃 영화를 보는 듯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도...결국 통합적인 사고로 생각하지 않으면 풀 수 없다고 깨달았다. 그리고 일본의 극우와 극좌가 만들어내는 모순의 결과는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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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게 나보다 빨리 성공했을까? -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한 42가지 시간관리법
기업가대학 지음, 김성기 옮김, 스도 고지 감수 / 마젤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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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이 있는 날, 당신은 어림잡아 시간이 빠듯하다고 느낀다. 버스를 타면 밀리지 않으면 정시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지만 혹시나 밀릴까 걱정이 된다. 5분정도 지체할지 아니면 택시를 타고 일찍 도착할지 망설인다.
물론 망설임 없이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로 800원과 1900원의 차이로 버스를 선택해왔다.

 "2만원 이상 구입시 500원 쿠폰을 드려요"

이런 문구에 혹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마 많을걸.
계획대로라면 내가 구입 할 물건은 18000원이다. 여기에 2000원만 더하면 5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이런 때에는 문득 예전에 사려고 했던 목록을 끄집어낸다. 2000원을 채워야하니까. 그런데 막상 구매를 하면 2만원을 딱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쇼핑은 줄곧 2만원을 훌쩍 넘는다. 곰곰 생각하니 500원에 속은 기분이다.

 위에서는 경제적 개념의 예를 들었다. 나는 위의 두 가지 실수를 자주 범하곤한다. 택시는 정말 바쁘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지 않은 이상 타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살 때면 할인쿠폰이니 적립금에 연연하며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사야하는 가격에 초점을 맞추곤 했다. 이런 경제관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진작에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쉽게 고쳐지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 나에게 혹자는 '버스를 타서 아끼는 돈 보다 택시를 타서 일찍 도착하는 시간만큼 돈을 더 벌 수 있는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이 책 첫장에 나오는 이야기도 택시 이야기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돈으로 시간을 산다는 것이다. 이미 같은 충고를 들었던 나는 이 책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충고는 분명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는 지혜나 상식이라도 누군가 가끔씩 상기시켜주면 시너지를 일으켜서 평범한 지혜가 생활 속 활력소가 될 때가 있다. 소위 '자기계발서'라는 책들이 그런 것 아닐까? 나는  "자기계발서 따위는 뻔하니까.. 그런 책은 잘 읽지 않아." 라고 말하던 사람 중에 하나였다. 책을 읽는 사람은 몇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소설로, 한 친구는 철학서로, 또 한 친구는 만화책으로, 다른 친구는 자기계발서로 나뉘었다. 흥미롭게도 좋아하는 책의 장르로서 사람의 성격 또한 파악이 가능하다.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반면에 철학서를 읽는 친구는 이상적이되 조금은 음울하다. 그에 비해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는 친구는 조금 현실적이라고 할까. 그런 친구를 둔 덕분에 자기계발서를 읽게 되었다. 거북스러운 조언들 일색이었던 자기계발서는 어느새 이상주의자가 되어버린 나에게는 하나의 자극제가 되어버렸다. 굳이 알고 있는 내용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분명 도움이 된다. '나는 멋지다. 나는 행복해.'라는 식으로 하루에 50번씩 거울을 보며 말하면 정말로 멋있어지고 행복해진다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도 되짚어주면 새로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42가지 시간관리법 중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정리해본다.

★ 더 빨리 성공하기 위한 시간관리법 中

그의 성공비밀 1 : 내가 버스에서 시달릴 때 그는 택시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돈으로 시간을 사라
-시간의 가치를 스스로 소중히 여겨라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멀티태스킹 전략. '이것을 한 후 저것을 한다'가 아니라 '이것을 하면서 저것도 한다'는 방법.)
-성공하려면 서류를 읽지 마라
 (쓸데없이 방대하게 쌓인 정보는 과감하게 정리한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히 결단하라
-정상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라


그의 성공비밀 2 : 내가 쩔쩔매며 전화를 받을 때 그는 집중해서 일하고 있다
-지금 당장 전화를 걸어라
 (고민하지말고 1:1로 전화해서 해결한다.)
-지금 전화가 당신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전화가 오지 않는 사람이 유능하다
 (인간관계가 없어서 안오는 것 말고, 업무상으로 과다하게 걸려오는 전화를 뜻 함)
-지금 당장 전화를 받을 필요는 없다
 (미국의 메시지 남기는 문화를 예로 들고 있다. 언제나 부재중 응답이 나오도록 되어있고 상대방은 부재중 메시지를 남기면 업무나 휴식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전화 없이 본연의 업무가 끝난 후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문화이다. 기발하다고 생각되지만 대기권 밖에서도 잘 터진다는 한국의 휴대전화 문화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이 책은 제목처럼 '성공방법'을 일러주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헛알뜰쟁이의 진짜 알뜰쟁이가 되는 시간관리법' 정도라면 맞겠다. 물론 책의 뒷부분에는 직장인이 소화하면 좋을 조언들도 포함되어있지만 내 생각에 그 부분은 모순이 많다. 도시락을 싸라거나 창업을 전화부의 도움을 받으라는 등의 조언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앞쪽에 수록된 시간관리방법 중의 몇가지는 분명 도움이 될 것들이 많다. '무조건 남보다 열심히 하면 된다'가 아닌 영특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이랄까. 그런면에서는 분명 자극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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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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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도 이 책도 몰랐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이 매력적이었고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책이 내 손에 들어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책에 대한 서평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었고 하나같이 작가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그 때문에 읽기 전부터 내심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의 표지와 맞물려서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은 추리소설답게 흥미롭다.

과연 용의자 X는 누구일까?

그리고 용의자가 무슨 헌신을 할 수 있다는걸까?

여러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의 첫 예상은 아마도 용의자 X가 경찰의 스파이가 되어서 범인인양 하고 다니는가 하는 것이었다. 역시 추리소설에 약한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약 100쪽 가량의 종이를 넘길 때 쯤에는 '이 책 유치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 전개야 아직 100쪽이면 뭐라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인물의 설정이 무엇인가 2%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추리소설 답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존재했다. 추리물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내가 읽기에는 반쯤 덧씌워진 인물들의 설정과 관계들이 우스웠을 것이다. 클럽에서 일하던 여자가 일하다가 손님으로 만난 사람과 결혼하였지만 남자는 결혼 후 돌변한다. 이혼하지만 남자는 계속 여자를 괴롭히고 급기야는 이사한 집에 까지 찾아온다. 음흉한 웃음을 날리면서 거머리처럼 들러붙는 남자에게 여자는 단호해져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돈이라도 쥐어준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보는 남자.... 이러한 설정이 유치했다는 것은 순전히 개인 취향이다. 그리고 '유치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도입부에서의 매끄럽지 못한 번역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책을 받고 나서 '양억관'이라는 번역자 이름을 보고 번역은 어느정도 신뢰하고 볼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던터라 도입부의 어긋나는 번역이나 이후에도 종종 등장하는 (실수라고 생각하고 싶은) 오류 등에 대해서 실망이 컸다. 게다가 쉴새없이 등장하는 오탈자는 책을 만들 때는 내용이나 작가의 명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띄어쓰기, 문법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독자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얇지 않은 이 추리물은 중후반까지 용의자 X에 대한 독자의 연민과 몰이해로 침울해져 버리다가 막바지에 일격을 가한다. (정말 놀랐다니까.) 순간 못생기고 뚱뚱하고 감정이입도 없는 이 불쌍한 용의자 X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아마도 여자 주인공도 이렇게 매력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남자의 헌신에 감동받기는 어려웠으리라.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그의 헌신에 놀라자빠지기는 그녀나 나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반전은 놀라웠다. 갑자기 등장한 문장 한 줄에 30초가 넘게 멍하니 종이 밖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수사과정이라거나 범인의 동기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이 책의 매력일지도 모르겠지만... 영혼까지 팔아버린 용의자의 헌신과는 대조적으로 용의자에게 연민조차 느껴지지 않음은 내가 너무 매말랐거나 용의자가 매력이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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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고잉 - 노력하다 지친 당신에게
아마가와 겐이치 지음, 천채정 옮김 / 해피니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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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읽은 어느 포털 사이트의 독자 블로거 글에는 인문서를 주로 다루는 한 출판사 사장의 구인광고 게시물을 스크랩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10억 부자 되기, 재테크, 성공법 등의 처세술에 관련한 책이 범람하는 시대에 출판사들도 어떻게 해서라도 책을 팔아 수익을 많이 남기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긴 구인광고였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인간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리기 힘들게 되었다. 예전처럼 누가 채찍질하며 달려달려~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위기의식과 무거운 짐을 지고 남을 앞지르고 정상에 서기를 원하게 되어 스스로 ‘성공’에 목을 매달게 된다. '더 빨리, 남보다 더, 예전의 나와 다르게, 더 새롭게, 더 예쁘게, 더 날씬하게'를 외치는 사회와 그에 발맞추는 주요 미디어들을 보는 우리는 괴롭다.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통장 잔고순이라고 말하는 사회의 변화에 이지고잉의 저자는 나직이 'Take it easy'라고 나를 얼러준다. 나는 뒤떨어지고 있어, 라며 자신을 옭아매기보다는 내 스타일대로 사는 방법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잘생기고 공부도 잘했고, 돈도 잘 벌고 예쁜 여자 친구가 있는 엄마친구 아들과 매일 비교당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인가’에 대해 고뇌하고 있는 우리에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다.

 이 책은 요즘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잘해! 밀어붙여! 돈을 긁어모아! 너만 1등하면 돼! 나쁜 여자가 되어봐!’라고 밀어대는 다른 책들과 다르게 게으르게 사는 방법도 있음을 일러준다.

 앞만 보며 치열하게 살지 말고 행복한 게으름을 피우며 적당히 해도 된다는 그의 말에 왠지 안심이 된다. 이 책 한 권에는 온갖 편안해지는 조언과 삶의 방식이 모두 들어 있어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살기에 지쳐버린 젊은 영혼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상할 것이라는 처음 생각과 다르게 작지만 큰 감동을 가져다 준 책이다. '쳇, 말은 쉽지'라며 지나칠 수 없게 하는 힘이 있달까. 오히려 '이정도면 나도 실천할 수 있겠어.'라는 희망을 준다. 맨 앞의 목차에 적힌 소제목들만 보아도 ‘이지고잉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살짝 보이고, 맨 뒤에 실린 ‘라이프스타일 테스트’를 계산해서 내가 얼마나 타이트하고 스트레스풀하게 살고 있는지도 체크해보는 것이 좋겠다. (한글날인데 외래어 난무의 서평이군...)

 개인적으로는 아침명상을 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매일 아침 이 책을 되새길 작정이다. 그리고 좋은 구절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메일로 보내질 것이다. 아주 가끔은 바쁘게 사는 것을 동경하는 때가 있다. 바쁘되 이지하게. 이것이 진정 우리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잊지 말자. 이지고잉.

♪... 이한철-슈퍼스타 
지난 날
아무 계획도 없이
여기 서울로 왔던 너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
예전 나와 같아
모습은
까무잡잡한 스포츠맨
오직 그것만 해왔던
두렵지만 설레임의
시작에 니가 있어
괜찮아 잘될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될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너만의 살아가야할 이유
그게 무엇이 됐든
후회 없이만 산다면
그것이 슈퍼스타
괜찮아 잘될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될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널 힘들게 했던 일들과
그 순간에 흘렸던
땀과 눈물을
한잔에 마셔 버리자
오우 워
괜찮아 잘될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될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너만의
인생의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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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4분의 1
오사키 요시오 지음, 우은명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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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어디엔가는 존재하고 있지만 누구도 그 정체를 알지 못했던 명왕성처럼 인지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깊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또한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이다. 밤이 되었을 때도 태양은 존재하듯이 말이다.

 4개의 단편으로 구성 된 책 <9월의 4분의 1>은 영겁의 만남 끝에 단 한 번 옷깃을 스친다는 인연처럼 쉽게 지나쳐버리는 추억들을 들춰내어 그 추억이 분명 실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작가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역시 롤링스톤즈, 비틀즈, 레드 제플린, ABBA등의 곡들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한다. 때로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되어서 소설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소설 속 주인공의 심리를 말없이 대변하기도 한다.
 <슬퍼서 날개도 없어서>편에서의 레드 제플린을 부르는 ‘나오’의 모습은 레드 제플린의 곡들을 재현한 여가수 Melanie Safka를 모델로 한 것은 아닌가 하고 혼자 상상하기도 했다.

 오사키 요시오의 소설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그러나 우리가 굳이 의식하려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조명한다. 계절을 알리는 공기와 조용한 장소에서의 고요한 대화소리가 내는 느낌 등 현상보다는 분위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또한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는 상당부분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매번 등장하는 작가 또는 편집장의 소재라거나 적지 않은 나이에 등단한 이력, 반복되는 주인공들의 비슷한 내면의 표현이라거나 이성적 취향이 그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작가 후기라거나 역자후기가 다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후기에서 일부 소개되리라 기대했던 비하인드 스토리 따위가 누락된 점은 적잖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이렇게 반복되는 소위 '오사키 요시오적인 소재'들은 작가 특유의 감성을 트렌드화 시키는데 한 몫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세 권(파일럿 피쉬, 아디안텀 블루, 9월의 4분의 1)의 책으로 ‘이제 그의 작품은 모두 통달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9월의 4분의 1>에서 소설가가 되기를 갈망하지만 결코 소설을 쓸 수 없었던 ‘겐지’가 미리 설계도를 그려놓고 기능을 정한 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듯이 인생이라는 것도 정해진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물 흐르는 것과 같이 살다보면 완성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막연했던 두려움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었다.

 오사키 요시오. 그는 언제나 ‘상실과 치유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반복되는 자아의 충돌과 과거의 회피로 인한 고통을 어린 시절에서부터 청년기, 그리고 더 나이든 후까지 곱씹어보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이제 ‘익숙한 집’ 같다. 너무 오래도록 지내서 어느 것도 새로울 것 없을 것 같은 집말이다. 하지만 결코 영원히 완전하게 떠날 수 없고, 다시 찾았을 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집처럼 느껴진다.

 지금, 나의 ‘9월 4일 역(驛)’에서의 지나간 약속은 없었는지 되뇌어본다. 지나온 기억들이 그저 과거라는 추억이 되어 마음 한 구석에 존재감 없이 뭉개져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제 그것들을 들추어내서 잃어버린 보석을 찾은 것처럼 기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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