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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 결국 울어버렸네.
'어쩜 넌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수가 있냐'는 소릴 듣던 예전과 다르게 감성이 풍부해진 나지만 그래도 읽는 내내 낄낄거리다가 '이렇게 웃기는데 언제 운다는거야'라며 울기만을 손꼽으며 읽었는데 결국 울고 말았다.
'정신없이 웃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을 흘리게 되니 지하철에서는 절대 읽지 말라'는 고마운 충고가 쓰여진 이 책을 만난 것은 내가 일본의 배우 '오다기리 죠'의 팬인 덕분이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이 바로 이 '도쿄타워'이다. 오다기리 죠 답게도 요상하지만 그에게 퍽 어울리는 머리를 하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웬 아주머니(엄니겠지)와 함께 찍은 예고편 동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게 '도쿄타워'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도 있었기에 제목을 보고서는 그녀의 소설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이 뒤엉켜서 저 귀염성 있는 표지를 하고 속살을 내보인 책. 배송시에 함께 온 퍼즐은 진작에 신이 나서 맞춰버렸다. 일러스트는 또 어찌나 귀여운지..
'릴리 프랭키'라는 노랑내나는 이름을 가진 작가는 의외로 일본인이다. '나카가와 마사야'라는 본명이 따로 있음에도 저런 필명을 써서, 나는 '작가는 분명 서양인일거야'라고 오해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인데, 읽는 도중에 일본이 배경이고 일본인이 주인공이라 뭔가 이상함을 느껴서 그제야 작가 프로필을 보고 작가가 일본인임을 알았고, 더 한참을 읽고 나서야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바보... 그 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작가의 얼굴 대신에 오다기리 죠의 얼굴을 오버랩하며 읽으려 애를 썼지만 절반 쯤 실패했다. 안타깝지만 이건 그가 나온 영화를 보면서 대신해야겠다.
'엄니', '그랬고만...' 하는 것은 분명 한국의 사투리인데도 번역된 일본 소설에 잘 어울렸다. 너무 잘 맞아떨어지고 정감이 가서, 하고 많은 사투리 중에 하필 이것으로 번역한 이유는 엄니~라는 말투가 유독 구수해서인지, 아니면 작가가 그 지방의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지방의 사투리와 닮아있는 것을 이용한 것인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잡설이자 추측이지만 오늘 '훌라걸스'라는 영화를 보고 놀랐던 것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탄광촌의 사투리 억양이 우리의 북쪽 또는 강원도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는 것이었다. 아마 이 소설의 배경인 그곳은 엄니~하는 말투의 사투리를 쓰는 곳이 아닐까. 아무튼 센스있는 번역도 이 소설의 강점.)
이 책은 독자가 억지로 눈물을 흘리도록 한다거나 시종일관 웃게 한다거나 하는 소설은 아니다. 그랬다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잔잔하고 구수하고 유쾌한 영화를 보듯이 흘러간다. 그 배경이 한국과도 닮아 있고, 주인공은 나와 닮은 부분도 가지고 있어서 감정이입이 쉬웠던게 아닌가 싶다. 나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지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지만 분명 누구에게나 있었을법한 추억들이 소설 속에 담겨있기에 너도 나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다 자란 나와 동생을 두고도 엄마의 마음 속엔 늘 우리가 있나보다.
어느 날 엄마가 TV 옆에서 코를 골며 곤히 잠들어 계신동안 나는 지나가는 말로 옆에 있던 동생에게 '배고프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것이 곁에서 잠자던 엄마에게 들렸는지 꿈꾸는 듯한 어눌한 말로 '베란다에... 고구마... 있어...고구마...'라고 잠꼬대 비슷한 말을 하길래 흠칫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동생이랑 깔깔대며 신기하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찡했다. 울 엄니도 깊은 잠을 자는 시간마저지 자식 배곯을까 걱정이 되었을까.
"역시, 집이, 좋고만..."
"응...그런가...?"
"야야, 그거... 냉장고에 도미 회가 들어있고만. 그거하고 또, 냄비 속에 가지 된장국 있어. 그거 데워서 먹어라이...."
어떻게 된 걸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엄니, 왜 그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가지, 가지 된장국이여..."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내 미소 짓고 있었다. 아마도 엄니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이 병실을 사사즈카 집의 부엌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자신이 그런 힘든 상황에 빠져있는 때에도 환각 속에서 내 밥 걱정을 하고 있었다.-338
철 없는 어린아이였을 적에 나와 마사야는 늘 엄니와 함께였다. 엄니가 없이는 못 살 것 같았고, 그 후로도 쭉 엄니는 곁에 있어주었다. 그것은 왜냐고 물을 가치가 없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엄니와 떨어져 지내는 법을 알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해질 때가 온다. 나와 마사야가 엄니와 동떨어진 나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순간에도 엄니는 우리에게서 마음을 뗄 수 없었을 게다. 그리고 마음대로 버렸던 엄니에게 내 멋대로 돌아가 안겨도 엄니는 늘 곁에 있던 사람처럼 가만히 나를 안고 토닥여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든 어머니는 있는 거구나.-149
책을 덮기 전에 코를 훌쩍이며 '슬퍼..슬퍼..'라고 연신 말했던 것은 정말 슬퍼서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져서 생긴 열이 콧물로 증발 되어서였을 것이다. 따신 밥 처럼 훈훈한 소설은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예쁜 이 소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게 될 영화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