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 결국 울어버렸네.

'어쩜 넌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수가 있냐'는 소릴 듣던 예전과 다르게 감성이 풍부해진 나지만 그래도 읽는 내내 낄낄거리다가 '이렇게 웃기는데 언제 운다는거야'라며 울기만을 손꼽으며 읽었는데 결국 울고 말았다.

 '정신없이 웃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을 흘리게 되니 지하철에서는 절대 읽지 말라'는 고마운 충고가 쓰여진 이 책을 만난 것은 내가 일본의 배우 '오다기리 죠'의 팬인 덕분이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원작이라는 것이 바로 이 '도쿄타워'이다. 오다기리 죠 답게도 요상하지만 그에게 퍽 어울리는 머리를 하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웬 아주머니(엄니겠지)와 함께 찍은 예고편 동영상을 보았을 때는 그게 '도쿄타워'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도 있었기에 제목을 보고서는 그녀의 소설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저런 사연이 뒤엉켜서 저 귀염성 있는 표지를 하고 속살을 내보인 책. 배송시에 함께 온 퍼즐은 진작에 신이 나서 맞춰버렸다. 일러스트는 또 어찌나 귀여운지..

 '릴리 프랭키'라는 노랑내나는 이름을 가진 작가는 의외로 일본인이다. '나카가와 마사야'라는 본명이 따로 있음에도 저런 필명을 써서, 나는 '작가는 분명 서양인일거야'라고 오해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인데, 읽는 도중에 일본이 배경이고 일본인이 주인공이라 뭔가 이상함을 느껴서 그제야 작가 프로필을 보고 작가가 일본인임을 알았고, 더 한참을 읽고 나서야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바보... 그 후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작가의 얼굴 대신에 오다기리 죠의 얼굴을 오버랩하며 읽으려 애를 썼지만 절반 쯤 실패했다. 안타깝지만 이건 그가 나온 영화를 보면서 대신해야겠다.

 '엄니', '그랬고만...' 하는 것은 분명 한국의 사투리인데도 번역된 일본 소설에 잘 어울렸다. 너무 잘 맞아떨어지고 정감이 가서, 하고 많은 사투리 중에 하필 이것으로 번역한 이유는 엄니~라는 말투가 유독 구수해서인지, 아니면 작가가 그 지방의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지방의 사투리와 닮아있는 것을 이용한 것인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잡설이자 추측이지만 오늘 '훌라걸스'라는 영화를 보고 놀랐던 것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탄광촌의 사투리 억양이 우리의 북쪽 또는 강원도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는 것이었다. 아마 이 소설의 배경인 그곳은 엄니~하는 말투의 사투리를 쓰는 곳이 아닐까. 아무튼 센스있는 번역도 이 소설의 강점.)

 이 책은 독자가 억지로 눈물을 흘리도록 한다거나 시종일관 웃게 한다거나 하는 소설은 아니다. 그랬다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잔잔하고 구수하고 유쾌한 영화를 보듯이 흘러간다. 그 배경이 한국과도 닮아 있고, 주인공은 나와  닮은 부분도 가지고 있어서 감정이입이 쉬웠던게 아닌가 싶다. 나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지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지만 분명 누구에게나 있었을법한 추억들이 소설 속에 담겨있기에 너도 나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다 자란 나와 동생을 두고도 엄마의 마음 속엔 늘 우리가 있나보다.

어느 날 엄마가 TV 옆에서 코를 골며 곤히 잠들어 계신동안 나는 지나가는 말로 옆에 있던 동생에게 '배고프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것이 곁에서 잠자던 엄마에게 들렸는지 꿈꾸는 듯한 어눌한 말로 '베란다에... 고구마... 있어...고구마...'라고 잠꼬대 비슷한 말을 하길래 흠칫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동생이랑 깔깔대며 신기하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찡했다. 울 엄니도 깊은 잠을 자는 시간마저지 자식 배곯을까 걱정이 되었을까. 

"역시, 집이, 좋고만..."

"응...그런가...?"

"야야, 그거... 냉장고에 도미 회가 들어있고만. 그거하고 또, 냄비 속에 가지 된장국 있어. 그거 데워서 먹어라이...."

어떻게 된 걸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엄니, 왜 그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가지, 가지 된장국이여..."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내 미소 짓고 있었다. 아마도 엄니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이 병실을 사사즈카 집의 부엌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자신이 그런 힘든 상황에 빠져있는 때에도 환각 속에서 내 밥 걱정을 하고 있었다.-338

 철 없는 어린아이였을 적에 나와 마사야는 늘 엄니와 함께였다. 엄니가 없이는 못 살 것 같았고, 그 후로도 쭉 엄니는 곁에 있어주었다. 그것은 왜냐고 물을 가치가 없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엄니와 떨어져 지내는 법을 알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해질 때가 온다. 나와 마사야가 엄니와 동떨어진 나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순간에도 엄니는 우리에게서 마음을 뗄 수 없었을 게다. 그리고 마음대로 버렸던 엄니에게 내 멋대로 돌아가 안겨도 엄니는 늘 곁에 있던 사람처럼 가만히 나를 안고 토닥여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든 어머니는 있는 거구나.-149

 책을 덮기 전에 코를 훌쩍이며 '슬퍼..슬퍼..'라고 연신 말했던 것은 정말 슬퍼서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져서 생긴 열이 콧물로 증발 되어서였을 것이다. 따신 밥 처럼 훈훈한 소설은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예쁜 이 소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게 될 영화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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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3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비전은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가끔 정신을 놓고 멍하게 거울을 보고 있자면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과 내가 있는 공간이 생경할 때가 있다. 나의 눈으로 보았던 나의 세계를 다른 눈으로 비추는 거울...어쩌면 와타루가 현실과 비전을 오가는 진실의 거울도 그런게 아닐까. 비전의 모습은 현세를 반영하기 때문에 현세의 기쁨, 갈등, 슬픔 까지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와타루는 이상세계인 비전에서 전쟁과 탐욕을 마주할 때 마음아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웃는 얼굴을 하면 거울의 나도 웃고 화난 얼굴을 하면 거울의 나도 인상을 쓰는 것 처럼 비전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울이다.

 

 브레이브 스토리 3편에서의 와타루는 여전히 여리고 인정 많은 아이지만 전편에서의 유약함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아직도 자신이 미쓰루 처럼 냉혹하고 강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착찹함을 느끼는 것 같지만 와타루는 많이 자랐다. 현실에서 와타루의 아빠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가고 그 여자는 임신을 한 상태이며 엄마는 충격으로 자살시도를 했다가 병원에 입원중이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이 상황은 거울처럼 그대로 비전에서 비춰진다. 그것은 무의식의 환영과도 같아서 이 아이가 남모르게 고민했던 것들까지도 반영한다. 엄마가 불쌍하고, 버림받을 것이 두렵고 여린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도 내색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 아빠는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 버렸고 함께 바람난 여자는 너무도 당당한데다가 임신까지 했다. 비전에서 만난 여자는 아빠의 애인과 너무 닮았다. 그 여자는 임신중이었는데 와타루는 환각(?)을 경험하며 그 여자의 뱃속 아기와 만난다. 그 아이는 맹렬히 와타루를 비난하며 '너 때문에 나는 태어나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한다. 돌로 만든 괴물같았던 그 아이에 대해서 와타루는 죄책감을 느낀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와타루의 정신적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내면의 아픔은 그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는것 같다. 키키마와 미나 같은 좋은 친구가 함께 하더라도 와타루는 오직 홀로 용감한 용사가 되어 모험을 해야한다. 그리고 스스로 아픔을 이겨내야 할 것 이다. 

 

나는 처음에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했어. 다시 행복해질 거라고. 하지만 아니었어. 그때뿐, 다시 또 다른 슬픔이나 괴로움이 찾아오면 전과 똑같아질 뿐.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싫어하는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게 아니었어. 그 사건은 사라지지만 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 거니까. - 235

 

 3권에서는 현세의 갈등과 함께 비전에서의 갈등이 싹튼다. 그것은 혼돈을 다스리는 명왕과 여신이 맺은 계약이라는 비전에서의 재물을 바치는 '사람기둥'에 대한 것인데 이제 이것으로 와타루는 많은 사람을 위해 혼자 몸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여신님은 여행자의 소원 한가지만을 들어주기 때문에 현세에서의 소원과 비전에서의 '사람기둥'에 대한 소원 두가지 중에서 선택해야하는 갈등을 하게 된다. 현세에서 온 여행자는 단 두명, 바로 와타루와 미쓰루인데 먼저 구슬을 다 모아야만 사람기둥이 되지 않는다. 미쓰루는 냉정하게 게임에서 이기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와타루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구슬을 먼저 다 모으더라도 친구인 미쓰루를 사람기둥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만난 두 주인공의 너무나 다른 태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물론 미쓰루는 강하고 냉정한 아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역시 와타루는 착해서 약해보이지만 내면이 강한 아이니까 모든 어려운 과제들을 잘 풀어나갈 것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와타루는 어떤 선택을 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모험을 해나갈지 궁금해졌다.

 

빨리 달리는 여행자만이 운명의 탑을 찾는 것은 아니다.
운명의 탑은 바른 길을 걸어온 여행자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163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빠른 것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고 느린 것이 가장 나쁜 것도 아니다. 이런 진리를 나는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많이 갖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고, 이긴 사람만이 성취감을 얻는 것도 아니고, 먼저 도달한 사람만이 산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비전'을 가지고 있고 자기만의 브레이브 스토리를 쓸 자격이 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하나의 비전이고 간혹 비춰지는 진실의 거울 앞에서 마음을 추스리며 다시 모험을 해 나가는 내가 바로 주인공인 것이라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행복이 찾아왔을 때 기뻐하는 것 처럼 힘듦도 슬픔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다. 내가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희망이니까.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지칠 줄 모르고 걸어온 사람들의 길 위에서뿐입니다. 걸음을 멈춘 사람들에게, 끊어져 버린 길 위에는 머물 수 없습니다. 어떤 때라도 희망을 가슴에 품고, 미래를 바라며 얼굴을 들고 나가세요. 그러면 나는 늘 당신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당신 뒤에 남은 길이야말로 당신이 가야할 곳으로 이끌어 줄 이정표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395(와타루가 만난 희망과 미래의 정령)

 

 그간 너무 나약해서 못미더웠던 와타루, 이제 너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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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연애는 왜 그 모양이니?
로리 고틀립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소울메이트

-소울메이트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한창 인기였다. 대강 그런 분위기의 드라마를 보고 싶기는 했지만 한가하게 드라마를 꾸준히 볼 처지가 안되었기 때문에 가끔 스틸컷만 구경할 뿐이었다. 드라마가 끝나고서야 OST를 들었다. 얼마전까지 무료한 지하철 왕복 시간을 함께해준 그 노래들은 정말 좋다. 연주곡 중 Paris, Paris는 악보까지 구해다 놓을 정도로 좋아한다. (물론 그 곡보다 soulmate라는 제목의 연주곡의 악보를 구하고 싶었으나 실패..) 아무튼 여기 저기에서 회자되는 단어인 소울 메이트를 나는 잘 모른다. 정신적 동반자. 그것은 어찌보면 배우자나 반려자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불륜의 성격을 띄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 같다. 어쨋거나 야릇하고 정감가는(?) 단어인 소울 메이트를 어서 찾아야 할텐데...ㅎ

 

네 연애는 왜 그 모양이니?

책 제목은 나를 한숨짓게 했다.

아놔~ 현재 가장 선호하는 TV 사랑과 전쟁, 앞으로 보고 싶은 영화 결혼은 미친짓이다 인데 이건 왠 절인 배추에 소금 빼는 시츄에이션!!??

솔로기간 동안 이젠 옆구리고 목이고 딱지가 앉아서 얼음이 어는 날에도 감각이 마비되었지만 그래도 둘인것 보다는 외로운 것이 사실이지..

 

어쨋거나 나는 지금 소울메이트가 없는 솔로부대원이다. 그래서 이 책이 처음에는 거북했다.(쳇!) 제목을 읽고 나한테 하는 소리냐!!라고 꽥꽥 거리기도 하고 맞장구도 쳐보고 얼굴도 붉혀가며 읽었다.

 

책 속에 '재미있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들이 여자를 소개받았을 때 '예쁘냐?'고 먼저 묻는다는 우스개 처럼 여자는 먼저 '이 남자 재밌다'고 느껴야 호감을 갖는 것 같다. 사실 처음 만나는 때에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는 단연 유머이다.

'재밌는 사람이 좋다'는 나의 말에 누군가 그랬다.

'하지만 재밌는 남자 주변엔 항상 여자가 많지'

여자는 웃기면 못쓴다는 친구(여자)는 그랬다. 

'남자가 소개팅 후에 친구를 만났어. 친구가 그 남자에게 소개팅 여자 어땠어? 라고 물었을 때 괜찮았어~.재밌었어~...가 아니라 '그 여자 진짜 웃겨!!!'라고 말하면 어떻겠냐?'

분명 유머감각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큰 무기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유머감각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 말한다.  

 

 그밖에 여러 연애 에피소드와 참고할 만한 사항(이를테면 변태를 피하는 방법, 애인몰래 바람피우기...;)들이 담겨있다.  

 

 이 책은 소울 메이트를 기다리는 남자와 소울 메이트를 믿지 않는 여자가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여러개의 시트콤을 보듯 가벼운 마음으로 (때론 감정이입을 하는 센스)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책의 뒤표지에 이런 코멘트가 있다.

'웃고 또 웃었다. 배가 아플 정도로... 그러고 나서 내가 솔로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했다.-그렉 버렌트'

아놔...난 웃다가 이거 보고 울었다~ (우리는 무적의 솔로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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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5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참... ㅋ
 
브레이브 스토리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어리석은 쪽이 때로는 올바른 것보다 훨씬 강하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경우가 있어. 작은 마음, 구멍이 뚫린 마음, 텅 빈 고목나무 같은 마음에는 어리석은 것이 더 스며들기가 쉬운 거야.-153

 며칠 전 집으로 오는 늦은 밤. "나 아무래도 돌인가봐. 띨띨한 정도가 화강암이야 화강암."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왜 현무암보다는 낫네. 부으면 줄줄 새고, 부으면 줄줄 새고..."

그 말에 킥킥 웃고 말았지만 현무암 정도가 되기 전에 스스로를 다잡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참이었는데 책 속에서 트론이 말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계시인가(^^)

 브레이브 스토리 2에서의 와타루는 전편보다 더 단단해졌다. 2권 초반까지만 해도 '이 자식 영락없는 초등학생이네'라고 우습게 봤지만 책을 덮을 때 쯤에는 나도 모르게 중학생 정도는 되어 보이는 와타루를 상상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아주 자라버린 어른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영웅이야기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불과 몇 해 전만해도 TV에 어린이가 주인공인 마법 드라마도 거뜬히 소화해내던 어른이었는데 이젠 무리다. 그런데 와타루는 친절하게도 나의 상상력 수준에 맞게 자라주고 있다. 단단하고 멋지게.

 반지의 제왕이니 해리포터니 나니아 연대기니 하는 판타지물 영화라면 기다렸다는 듯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졸라서 보는 것이 바로 나다. 다른 영화라면 혼자서도 잘 보러다니지만 판타지는 역시 누군가 함께여야 재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브레이브 스토리는 함께 이야기할 사람들이 많아서 참 좋은 책이다. 같은 작품을 만화화 한 것을 보지는 못했어도 만화를 본 사람, 원서로 본사람과도 충분히 즐겁게 신나하며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다. 사실 요즘들어 조금씩 '이 나이에 왠 판타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그런 걱정을 말끔히 잊게 해주는 책의 재미도 감사할 따름이다. 길가다가 아이들을 붙잡고 '나 브레이브 스토리 읽는다'며 말을 걸고 싶을 정도이니까...(본인 그다지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못함에도..)

 1권에서는 와타루와 미쓰루의 어두운 가정사, 사회의 얼룩진면이 보여졌다면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판타지 세계인 비전으로 가서 펼쳐지는 모험담들이 시작된다. 특히나 등장인물들이 독특하다는 것도 재미있다. 이를테면 반지의 제왕을 잊지 못하는 나에게 오크족 엘프족 등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종족 캐릭터가 그러하다. 도마뱀 키키마를 비롯한 수인족과 인간의 형상을 한 앙카족 등등.. 브레이브 스토리에 대해 검색을 하다보면 애니메이션을 캡쳐한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상상했던 키키마와 그림으로 그려진 키키마가 전혀 닮지 않아서 놀라기도 했다. 책 속에 나오는 여신님은 나니아 연대기 속의 차갑고 예쁜 여왕님 처럼 생겼을까...하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물론 '사가'라든가 하는 이름만 겨우 들어본 게임 내용 같은 것이 나오면 세대 차이를 느끼며 건너뛰며 읽게 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읽는 내내 즐겁다. 용감한 아이가 된 기분이랄까. 이제 미쓰루와도 만났으니 3편에서는 두 훈남의 브레이브 스토리가 펼쳐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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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다나다 군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이미 이곳 저곳에서 손을 들며 소리쳤다. 사랑의 여러가지 정의들. 진부하고도 상콤한 사랑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여러가지로 그려진다. 여기, 잠시 옆동네로 마실나간 다나다군이 있다. 방향치인 그는 네비게이션도 탑재되지 않은 론포군(자동차)을 이끌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고, 엘리스가 되어 이상한 나라 호테이 마을(?)로 들어선다. 우연히 마주친 그녀 '마바'씨에게 반한 그는 더 이상 헐렁한 다나다가 아니다. 내가 내가 아니고 그가 그가 아닌게 되어 정신을 놓은 듯 그녀가 일하는 호텔로 돌진하고 호테이 동상과 복숭아맨, 가드들과 마주친다. 마바씨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나다군의 이야기.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기상천외한 애정 도피 스릴러물이랄까.

**다나다군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장한 책 표지속에 감춰진 이야기는 일부분 장난같기도 하고 가벼워서 '이게 뭐지'하고 헷갈릴지도 모른다. SF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닌 이 소설은 '사랑하는 다나다군'이라는 제목으로 나를 유혹했다. 헷갈리던 것도 잠시. 이야기 전개에 익숙해지고 분위기에 파고들어가면 갈수록 흥미로워졌다. 처음엔 다나다군의 순수함에 끌리고 그 후론 오히려 다른 인물들과 분위기에 더 반해버렸다.

연애라. 여자에게 말을 걸고, 영화나 유원지 같은 곳에 간 다음은 호텔...... 그뿐이지 않나...... 핑계일 뿐이야, 핑계! 여자랑 하고 싶다는 이기심, 슬픈 핑계라-149


좀더, 차분하게, 로맨틱한 느낌으로 할 수 없나, 벽창호 같으니라고! 상황을 들어보니 그렇잖아! 여성과 대화할 때는 상대방 말을 듣고 또 들어서, 침착하게 들은 다음에 또 듣고서 지칠 때까지 말하게 하는 거야. 그래도 묵묵히 웃고 있으면, 아, 이 사람은 진짜 남자야, 라는 게 되는 거야. 그때부터 달콤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거지. 그것이 기본이야, 멍청한 녀석! 알았나? 알았으면 다시 해!-189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오늘 하루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이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했다. 지금에 와서는 이 사람에 대해서 나는 꽤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단 하루 동안, 이 사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뒤쫓아 다녔을 뿐이다. 그녀가 정말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나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내우 중요한 사실이다.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내가 마바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는 단지 그녀에게 매료되어 있을 뿐인 것이다.-301

서툴고 연약하고 무턱대는 그의 사랑을 보며 나는 '안돼 안돼 그건~'이라고 말하면서도 무수한 사랑의 지침서를 무시하고 묵묵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다나다군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그의 사랑은 ING다. ('사랑하는 다나다군'이라는 제목은 여러가지로 해석해보았다. 나의 사랑하는 다나다군. 사랑하는 중인 다나다군 등등..)


**또 하나의 초월 공간, 호테이 호텔**
 자라다 만 어른이랄까. 일본 소설은 자라다 만 어른 같을때가 있다. 아이라고 하기엔 현실을 빠삭하게 알고 있고, 그렇다고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은 스토리들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 등에 잘 반영되어 있다. 가끔은 그런 비현실적인 엉뚱함에 뒤로 자빠지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일본 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것이 컬쳐 쇼크일까)

**쉽고 또 쉽지 않은 소설**
 읽는 내내 사이사이에 삽입된 문구들과 스토리가 겹쳐지며 띵똥땡똥♪하는 귀엽고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진행되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했다. 물론 책 맨 뒤에서 알리고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은 '픽션이므로 현실과는 관계가 없'다. 대부분의 소설이 단순히 독자에게 상상력만을 불어넣는다면 그것은 그저 상상력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상상력이라고 느끼는 그것이라면 분명 '실제하는 것'과는 내용을 달리한다는 증거이니까. (무의식에서 '이건 가짜야'라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있어서는 좀 다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소극장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깜깜하게 불을 끈 소극장에서 관객은 나 뿐이고 그 앞에 책속의 모든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것은 '픽션'이라는 소설의 본기능을 잘 따르고 있는 것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눈으로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마법과도 같았다. 폭력적으로 생겼을 몇몇 등장인물과 협박, 조종, 감금, 도피 등의 어두운 내용 마저도 코믹하고 가볍게 그려버려서 '흐음..'하고 흥미있게 관찰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가 반해버린 책 표지의 분위기와도 일치한다. 만화같기도 하고, 소설같기도 하고, 연극같기도 하고, 동화같기도 한 한 권의 책. 그것이 '사랑하는 다나다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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