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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3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비전은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가끔 정신을 놓고 멍하게 거울을 보고 있자면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과 내가 있는 공간이 생경할 때가 있다. 나의 눈으로 보았던 나의 세계를 다른 눈으로 비추는 거울...어쩌면 와타루가 현실과 비전을 오가는 진실의 거울도 그런게 아닐까. 비전의 모습은 현세를 반영하기 때문에 현세의 기쁨, 갈등, 슬픔 까지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래서 와타루는 이상세계인 비전에서 전쟁과 탐욕을 마주할 때 마음아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웃는 얼굴을 하면 거울의 나도 웃고 화난 얼굴을 하면 거울의 나도 인상을 쓰는 것 처럼 비전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울이다.
브레이브 스토리 3편에서의 와타루는 여전히 여리고 인정 많은 아이지만 전편에서의 유약함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아직도 자신이 미쓰루 처럼 냉혹하고 강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착찹함을 느끼는 것 같지만 와타루는 많이 자랐다. 현실에서 와타루의 아빠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가고 그 여자는 임신을 한 상태이며 엄마는 충격으로 자살시도를 했다가 병원에 입원중이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이 상황은 거울처럼 그대로 비전에서 비춰진다. 그것은 무의식의 환영과도 같아서 이 아이가 남모르게 고민했던 것들까지도 반영한다. 엄마가 불쌍하고, 버림받을 것이 두렵고 여린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도 내색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 아빠는 무책임하게 집을 나가 버렸고 함께 바람난 여자는 너무도 당당한데다가 임신까지 했다. 비전에서 만난 여자는 아빠의 애인과 너무 닮았다. 그 여자는 임신중이었는데 와타루는 환각(?)을 경험하며 그 여자의 뱃속 아기와 만난다. 그 아이는 맹렬히 와타루를 비난하며 '너 때문에 나는 태어나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한다. 돌로 만든 괴물같았던 그 아이에 대해서 와타루는 죄책감을 느낀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와타루의 정신적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내면의 아픔은 그 누구도 치유해줄 수 없는것 같다. 키키마와 미나 같은 좋은 친구가 함께 하더라도 와타루는 오직 홀로 용감한 용사가 되어 모험을 해야한다. 그리고 스스로 아픔을 이겨내야 할 것 이다.
나는 처음에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다고 생각했어. 다시 행복해질 거라고. 하지만 아니었어. 그때뿐, 다시 또 다른 슬픔이나 괴로움이 찾아오면 전과 똑같아질 뿐.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싫어하는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게 아니었어. 그 사건은 사라지지만 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 거니까. - 235
3권에서는 현세의 갈등과 함께 비전에서의 갈등이 싹튼다. 그것은 혼돈을 다스리는 명왕과 여신이 맺은 계약이라는 비전에서의 재물을 바치는 '사람기둥'에 대한 것인데 이제 이것으로 와타루는 많은 사람을 위해 혼자 몸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여신님은 여행자의 소원 한가지만을 들어주기 때문에 현세에서의 소원과 비전에서의 '사람기둥'에 대한 소원 두가지 중에서 선택해야하는 갈등을 하게 된다. 현세에서 온 여행자는 단 두명, 바로 와타루와 미쓰루인데 먼저 구슬을 다 모아야만 사람기둥이 되지 않는다. 미쓰루는 냉정하게 게임에서 이기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와타루는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구슬을 먼저 다 모으더라도 친구인 미쓰루를 사람기둥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만난 두 주인공의 너무나 다른 태도에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물론 미쓰루는 강하고 냉정한 아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역시 와타루는 착해서 약해보이지만 내면이 강한 아이니까 모든 어려운 과제들을 잘 풀어나갈 것같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와타루는 어떤 선택을 하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모험을 해나갈지 궁금해졌다.
빨리 달리는 여행자만이 운명의 탑을 찾는 것은 아니다.
운명의 탑은 바른 길을 걸어온 여행자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163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빠른 것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고 느린 것이 가장 나쁜 것도 아니다. 이런 진리를 나는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많이 갖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고, 이긴 사람만이 성취감을 얻는 것도 아니고, 먼저 도달한 사람만이 산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비전'을 가지고 있고 자기만의 브레이브 스토리를 쓸 자격이 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하나의 비전이고 간혹 비춰지는 진실의 거울 앞에서 마음을 추스리며 다시 모험을 해 나가는 내가 바로 주인공인 것이라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행복이 찾아왔을 때 기뻐하는 것 처럼 힘듦도 슬픔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다. 내가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희망이니까.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지칠 줄 모르고 걸어온 사람들의 길 위에서뿐입니다. 걸음을 멈춘 사람들에게, 끊어져 버린 길 위에는 머물 수 없습니다. 어떤 때라도 희망을 가슴에 품고, 미래를 바라며 얼굴을 들고 나가세요. 그러면 나는 늘 당신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당신 뒤에 남은 길이야말로 당신이 가야할 곳으로 이끌어 줄 이정표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395(와타루가 만난 희망과 미래의 정령)
그간 너무 나약해서 못미더웠던 와타루, 이제 너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