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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다나다 군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이미 이곳 저곳에서 손을 들며 소리쳤다. 사랑의 여러가지 정의들. 진부하고도 상콤한 사랑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여러가지로 그려진다. 여기, 잠시 옆동네로 마실나간 다나다군이 있다. 방향치인 그는 네비게이션도 탑재되지 않은 론포군(자동차)을 이끌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고, 엘리스가 되어 이상한 나라 호테이 마을(?)로 들어선다. 우연히 마주친 그녀 '마바'씨에게 반한 그는 더 이상 헐렁한 다나다가 아니다. 내가 내가 아니고 그가 그가 아닌게 되어 정신을 놓은 듯 그녀가 일하는 호텔로 돌진하고 호테이 동상과 복숭아맨, 가드들과 마주친다. 마바씨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나다군의 이야기.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기상천외한 애정 도피 스릴러물이랄까.
**다나다군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장한 책 표지속에 감춰진 이야기는 일부분 장난같기도 하고 가벼워서 '이게 뭐지'하고 헷갈릴지도 모른다. SF도 아니고 로맨스도 아닌 이 소설은 '사랑하는 다나다군'이라는 제목으로 나를 유혹했다. 헷갈리던 것도 잠시. 이야기 전개에 익숙해지고 분위기에 파고들어가면 갈수록 흥미로워졌다. 처음엔 다나다군의 순수함에 끌리고 그 후론 오히려 다른 인물들과 분위기에 더 반해버렸다.
연애라. 여자에게 말을 걸고, 영화나 유원지 같은 곳에 간 다음은 호텔...... 그뿐이지 않나...... 핑계일 뿐이야, 핑계! 여자랑 하고 싶다는 이기심, 슬픈 핑계라-149
좀더, 차분하게, 로맨틱한 느낌으로 할 수 없나, 벽창호 같으니라고! 상황을 들어보니 그렇잖아! 여성과 대화할 때는 상대방 말을 듣고 또 들어서, 침착하게 들은 다음에 또 듣고서 지칠 때까지 말하게 하는 거야. 그래도 묵묵히 웃고 있으면, 아, 이 사람은 진짜 남자야, 라는 게 되는 거야. 그때부터 달콤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 거지. 그것이 기본이야, 멍청한 녀석! 알았나? 알았으면 다시 해!-189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오늘 하루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이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했다. 지금에 와서는 이 사람에 대해서 나는 꽤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단 하루 동안, 이 사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뒤쫓아 다녔을 뿐이다. 그녀가 정말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조차 나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내우 중요한 사실이다.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내가 마바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는 단지 그녀에게 매료되어 있을 뿐인 것이다.-301
서툴고 연약하고 무턱대는 그의 사랑을 보며 나는 '안돼 안돼 그건~'이라고 말하면서도 무수한 사랑의 지침서를 무시하고 묵묵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다나다군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그의 사랑은 ING다. ('사랑하는 다나다군'이라는 제목은 여러가지로 해석해보았다. 나의 사랑하는 다나다군. 사랑하는 중인 다나다군 등등..)
**또 하나의 초월 공간, 호테이 호텔**
자라다 만 어른이랄까. 일본 소설은 자라다 만 어른 같을때가 있다. 아이라고 하기엔 현실을 빠삭하게 알고 있고, 그렇다고 너무 현실적이지도 않은 스토리들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소설, 영화 등에 잘 반영되어 있다. 가끔은 그런 비현실적인 엉뚱함에 뒤로 자빠지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일본 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것이 컬쳐 쇼크일까)
**쉽고 또 쉽지 않은 소설**
읽는 내내 사이사이에 삽입된 문구들과 스토리가 겹쳐지며 띵똥땡똥♪하는 귀엽고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진행되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했다. 물론 책 맨 뒤에서 알리고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은 '픽션이므로 현실과는 관계가 없'다. 대부분의 소설이 단순히 독자에게 상상력만을 불어넣는다면 그것은 그저 상상력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상상력이라고 느끼는 그것이라면 분명 '실제하는 것'과는 내용을 달리한다는 증거이니까. (무의식에서 '이건 가짜야'라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있어서는 좀 다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소극장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깜깜하게 불을 끈 소극장에서 관객은 나 뿐이고 그 앞에 책속의 모든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것은 '픽션'이라는 소설의 본기능을 잘 따르고 있는 것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눈으로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마법과도 같았다. 폭력적으로 생겼을 몇몇 등장인물과 협박, 조종, 감금, 도피 등의 어두운 내용 마저도 코믹하고 가볍게 그려버려서 '흐음..'하고 흥미있게 관찰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가 반해버린 책 표지의 분위기와도 일치한다. 만화같기도 하고, 소설같기도 하고, 연극같기도 하고, 동화같기도 한 한 권의 책. 그것이 '사랑하는 다나다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