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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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ㅣ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6
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지음, 임동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5월
평점 :
책이 도착하자마자 이 미술관 안의 작품들이 담겨 있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할까 고민했다.
도록을 보듯이 봐야하는지 눈에 띄는 작품 위주로 봐야할까,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읽듯 꼼꼼히 읽을까. 문득 루브르를 떠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정리해야지 했던 일기장과 사진들은 아직도 그대로 박스에 담겨있었다. 그게 몇해 전이더라.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친구와 단 둘이 유럽여행을 가게 되었다. 뭐랄까. 계획에 없던 게릴라식 여행이었다. 유럽에 간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갈까, 부터 시작해서 일단 비행기표 부터 사고나니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통장에 있던 돈을 탈탈 털어내서 숙소도, 루트도, 비행기편도 모두 우리 스스로 결정했다. 학생 신분이라 비교적 저렴하고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하루에 한끼만 밥다운 밥을 먹고 나머지는 굶거나 집에서 꾸역꾸역 싸간 초코바와 미니 소시지로 연명했다. 하루 종일 걸었고 비를 맞았고 배가 고파서 갈비뼈가 쿡쿡 쑤시고 어지러웠지만 그게 배가 고파서인지, 미술 작품 때문인지 모르겠다며 황홀히 돌아다녔었다. 거지꼴이었지만 우린 즐거웠다. 나는 이런 여행을 일기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가기 전에 미리 손바닥만한 수첩을 사들고 갔다. 그랬던 것이 현지에서 사서 쓴 수첩까지 해서 총 세 권이 된다. 이 책 덕분에 여행 후 몇년만에 일기를 펼쳤다.
1월 28일
오르세, 루브르, 리옹역 부근
눈내림. 아침에 일어나니 눈 내리고 있음. 귀덮이는 모자 쓰고나감.
1. 리옹역에서 쿠셋예약
2. 루브르 : 기념품 (고흐 그림 엽서세트, 클림트 등의 엽서, 여행 일기장으로 쓸 수첩)
여기는 (내셔널 갤러리에 비해) 그림은 그냥 그렇고 제목이나 사람이름 읽기도 어렵지만 ROOM마다 있는 화가들이 그림을 보고 캔버스에 따라 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부분 노인인데 도구들도 신기하다. 그림을 그려서 팔아버리고 생계 유지를 하는지, 취미인지는 모르겠다.
루브르에는 그 큰 건물에 그 많은 전시물들 중 진짜 세계인들이 모두 알고 있는 그림만 보고 와도 되겠더라. 나머지는 다 그냥 그랬음. 워낙 그림이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루브르는 그저 그런 박물관 같았던 듯하다. 그때는 다빈치 코드도 없었고 루브르는 그냥 '프랑스에 가면 당연히 거쳐야 할 장소' 중에 한 곳이었다. 미술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유명한 미술관은 빼놓지 않고 들렀다. 그리고 하루 중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루브르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거창하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없는 곳. 너무 유명한 것들이 모여있지만 이곳은 미술관이라기 보다는 이름 그대로 '박물관'에 가까웠다. 우리나라 국립중앙 박물관에도 그림이 있듯이 말이다. 나는 오르세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미술관에 갈 때는 몇몇 유명 작품에 현혹되어 그건 꼭 보고 와야지 하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눈으로 작품을 구경하게되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생소한 작품에 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알지 못하는 생소한 화가의 그림에 반해서 전시관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몇분이고 그림을 보았다. 의미를 몰라도 눈에 담고 싶은 욕심이랄까.
확실히 루브르를 다녀온 후의 일기는 너무 짧다. 오르세의 일기에는 온통 감동한 그림과 화가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있는데 말이지.
대신 루브르에서는 이것이 있다. 바로 그림 그리는 화가들이다. 물론 다른 미술관에도 있겠지만 나는 루브르에서 처음 발견한 것이라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조용히 그림을 응시하며 붓을 드는 화가들. 배껴그리는 것이지만 구경하는 것이 참 즐거웠다.
루브르에 대한 책을 읽기 위해 읽은 읽기장 덕분에 책 읽는 노선이 명확해졌다. 책 표지를 장식한 모나리자.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서 감동이 솟아오르는가.
하지만 직접 본 나의 '모나리자'는 기대했던 것 만큼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어쩌면 나는 어떤 그림을 '해석'해놓은 것에 감동을 받곤 했던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림을 보는 눈과 마음이 아닌 누군가의 해석으로 오염된 그림 말이다. 그래서 이 책만큼은 내가 눈여겨보았거나 잊어버렸지만 책에서 눈에 띄는 작품을 위주로 읽기로 했다. 그리고 살면서 내 마음에 쏙 든 그림이 생기면 그걸 다시 찾아보는 것으로 책의 의미를 새기기로 했다. 애당초 내가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에도 맞아떨어진다. '루브르에서 본 그림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것이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이니까.
루브르가 아니어도 좋으니 교실 뒤에 붙인 아이들의 그림만 보아도 얼마나 즐거운지 느껴보시라. 그건 진짜 짜장면과 모형 짜장면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물론 루브르의 그림은 혼자 해석하고 혼자 즐거워할 수 있는 추상화가 아니기에 그림이 그려진 배경과 그림 속의 의미를 알고 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림과의 첫 만남은 벌거벗은 아이처럼 아무 선입견 없이 보고, 그 다음에 해석을 알고 다시 보고, 또 다시보는 사치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원한다면 얼마든 루브르의 쌩얼을 볼 수 있는 프랑스인들이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