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이런곳 와 보셨나요? - 파리에서 파리지엔처럼 즐기기
정기범 지음 / 한길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미리 말해 두지만 이 책은 에펠 탑과 루브르 박물관 등 파리의 일반적인 관광 명소를 다룬 여행서가 아니다.
낯선 도시의 뒷골목에서 길을 잃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데서 여행의 묘미를 찾는 사람, 진심으로 파리지엔들의 삶에 다가서고 그들이 사랑하는 공간을 찾아 함께 호흡하길 원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길잡이이다. -007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에게 당부하는 글 중에 유난히 눈에 띈 구절이다. 첫 파리 여행을 하면서 다음에는 꼭 '현지인이 되어보기'를 해야지 마음먹었었다. 숙소에서 3일간 아무데도 안나가고 뒹굴어보기도 하고, 관광지는 내비두고 동네나 한바퀴씩 돌아다니면서 지내보는 것이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프랑스어가 남발하는 TV를 보면서도 다 알아듣고 깔깔대고 웃으면서 신기해 했던 프랑스에서의 며칠. 이렇게 외국어를 배우는거구나, 하고 신나했었다. 하루 종일 TV만 보라고 해도 재밌을 것 같았던 그 때. 나는 나에게 그런 약속을 했었다. 다음엔 여행자로 와서 현지인으로 있어보자고.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관광명소를 다룬 보통의 여행서가 아니라며 단호하게 선을 긋는 정기범님의 글은 일종의 전기충격 같은 것이었다. 이 다음에 있을 나의 두번째 파리 방문의 길잡이는 이 책이 될거라고 믿게 되었다. 파리 여행의 유일한 바이블이 될 책. <파리의 이런 곳 와보셨나요?>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지도를 가지고 찾아간 곳의 경치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뒷골목'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겨울에 도착지까지 가는 길을 지도를 봐도 모르겠어서 가방에 쑤셔넣고 무작정 걸었다. 그 때 나의 여행의 여정은 대부분 지도가 아닌 두 다리와 여자의 직감이었다(^^;;). 무조건 걸었다. 15분이면 갔을 곳을 골목이 워낙 많다보니 이리저리 빙빙 돌면서 찾아갔다. 당연히 원래 일정대로라면 한시간을 구경했어야 할 목적지는 사진 찍느라 바빴다. 아, 여기가 에펠탑이구나, 하고 사진찍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 이런 식이었으니 에펠탑의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파리 구석구석의 골목이 어떤 분위기인지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냄새. 파리의 냄새는 절대 잊지 못한다. 노스텔지어랄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낡고 더럽지만 그곳을 오고 간 사람들의 정성이 묻어있는 도시가 파리이다. 낡음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유럽을 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겠다.

 

 아무튼 걷느라, 빡빡한 일정 소화하느라 정작 숨어있는 장소는 들러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대형 마트나 기념품 파는 곳이 아닌 동네 문방구 같은 곳에 가서 볼펜과 여행일기를 사고 싶었다. 결국 문방구라는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채 기념품 파는 곳에서 살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사진만 보고 지나가도 충분히 즐겁다. 잘 찍힌 사진 한장은 여러말 할 필요 없이 그저 보고만 있어도 '아하'하고 알수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글을 다 읽기에는 글 자체가 조금 딱딱하고 무거울 수 있다. 개인이 쓴 여행기가 아니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이 책을 기분좋게 읽은 이유는 구구절절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을 일기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담담하게 파리의 숨은(?) 명소를 소개하는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여행기보다도 파리에 가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달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여기는 꼭 가봐야지 하는 곳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가이드 북에는 나와있지 않은 곳 말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곳들이 어디에 숨어있던 것일까.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법한 '여행 후의 후회 목록' 중 당당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바로 그것. "왜 그때는 몰랐을까" 리스트이다. 지난번 여행 갔을 때 가볼걸 왜 그걸 몰랐지? 이런 것 말이다. 나 또한 매번 알찬 여행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서툴고 98% 부족한 여행을 했기 때문에 책 속의 장소들을 눈을 크게 뜨고 구경했다.

 

 어떻게 보면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는 너무 화려한 곳이 아닌가 싶은 장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장소도 '의미'가 있기에 한번 쯤 책으로나마 구경할 수 있음을 기뻐했다.

  

 '과거는 풍화하여 잊혀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에 침전하여 사소한 감각적 경험을 계기로 되살아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나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러 파리로 떠나야겠다. 언젠가 마들렌이라도 잔뜩 구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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