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미래

요즘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고 있답니다. 고양이란 종족이 원래 외계에서 온 종족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답니다. 인간과도 가까우면서도 아주 자유로운 생명체를 보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런 고양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저 역시 사람과 가까우면서도 아주 자유로운 글읽기를 원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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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잠든 두 아이를 안고 밖에서 남편을 기다리기엔 너무 추웠다. 가까운 시골 다방을 찾았다. 샷시문이 드르륵 열렸다. 다방 중앙에는 앞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자 한 사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서리에 자리잡았다.

다방 여주인이 잠이 깬 둘째에게 빨대를 꽂은 요구르트를 하나 주고, 커피에 설탕과 프림까지 타주면서 사근사근 웃더니 "오래 계실거죠?"라고 나에게 물었다. 이런 친절이 감당하기 힘들어 뻔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파마한 머리와 적갈색의 입술, 아마 40쯤 되었으리라.

"그리 오래는 아니고, 남편은 한 30분쯤 있으면 올껀대요" , "아, 그래요. 그럼 저희 나갈테니 계산대에 커피값 2000원 올려놓으세요."하고 탁탁 일어선다. 그리고 대뜸 "오라버니, 일 하러 가요."하면서 중년 남자의 팔짱을 끼고 샷시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중년 남자는 손님이 아니었구나.

결국 온기도 없는 차가운 시골다방에 나와 아이 둘만 남았다. 큰 애는 아직도 자고, 작은 애는 설탕과 프림통을 만지작 거린다. 파란 두껑의 플라스틱 프림통.  이 다방에는 마치 사계절이 다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창에는 햇빛 가리개용 대나무발, 두꺼운 녹색 잎의 열대 화분 몇 그루, 녹황색의 호박 두 덩이, 호랑이 그림의 큰 액자, 그리고 기름난로와 땟물이 시커먼 커텐까지. 계절과 시간이 뒤엉킨 이상한 공간에서 나는 낯설어한다.

그 사이에 택배원이 왔다가 주인 어디 갔냐고 물었다. '저도 손님인데요.'하니 '여기까지 다시 올 시간 없는데..'하며 투덜거리며 나갔다. 그리고 작업복차림의 깡마른 인부 하나 다방을 가로지르더니 쑥 이층으로 올라가버렸다. 그제서야 맞은편 모서리에 문과 그 열린 문틈으로 계단이 보였다. 그 남자는 다시 내려 오지 않았다.

남편은 예상보다 빨리 왔다. 계산대 위에 이천원의 지폐를 조심스레 접어 놓았다. 아이를 하나씩 끌어 안고 나오며 몇 분의 시골 다방 정경에 나는 수다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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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섯 살의 남자, 서른 두 살의 여자, 그와 그녀의 세계를 해와 달처럼 번갈아 비추는 다섯 살, 세 살. 그리고 털이 제멋대로인 고양이 한 마리,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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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머리가 멍했다. 어깨가 찌푸둥하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보아도 풀어지지 않는다. 마치 컴퓨터가 멈춘 것 처럼 느리게 머리와 몸이 반응한다. 머리라도 깨게 하려고 아침부터 커피를 몇 잔이나 녹슨 기계에 치는 윤활유마냥 연거푸 들이키지만 헛수고다.

밖을 내다보니 새털 구름이 누가 붓으로 그려 놓은냥 청명한 12월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둘째 머리에 열이 있다. 엄마가 멈추어 서 있으면 안된다. 어젯밤에 기름값 아낀다고 방 하나에 보일러를 잠겨버렸는데 그것 때문인가. 일상으로 바지런히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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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누군가가 쓴 책에서 읽은 건데, 고양이에게는 내일을 생각하는 뇌가 없데. 결국 지금 잘 곳과 먹을 밥이 있으면 행복한 거지.

키사라기: 편할 수 밖에 없겠네....(중략)...사람은 뇌가 좋아서 미래의 불안도 산더미 같고 미래의 기대로 산더미 같아서...하지만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베개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고 새끼 고양이처럼 푹 자야지.

-만화 '결혼적령기'에서.

신혼부부의 일상사를 그린 소박하면서도 재미난 이야기. 4권의 마지막 장의 주제가 '고양이의 내일' 이었다. 흠칫, 했다. 나 역시 여주인공 키사라기처럼 버려진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 입장이라서. 그 고양이를 보면서 처음 '미래'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고양이란 종족이 인간과 함께 번성할 수 있을까 하며 가능성을 점쳐 보았다. 그래서 마침 알라딘의 온라인 서재명이 '고양이의 미래'가 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을 몇 년전에 재미있게 읽었고, 그 때는 결말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오늘 다시 처음부터 읽고 있는데 4권의 마지막을 읽고 책을 덮는다. 내 생각이 나 혼자만의 것일까? 내 머릿 속에 떠오른 의구심. 몇 년전에 읽었던 만화의 장면이 복사된 게 아닐까. 키사라기처럼 버려진 고양이를 줍게 하고 서재명도 그렇게 단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내 생각과 행동이 어느 다른 이의 것을 그냥 '복사하고 붙여쓰기' 한 것처럼 느껴질 때...

세상에 흔한 게 우연이지만 그 우연이 정말 우연일까 의심케 한다.

 

 

...어떤 이의 생각도 혼자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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