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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잠든 시간에 컴퓨터를 켠다. 부팅하는 시간에 커피 한 잔 마시려고 가스렌지 위에 찻물을 끓인다. 인터넷을 연결하고 메일함을 열어 보고 관련기사를 읽는다. 대부분 연예인의 가십 읽다 한참 시간이 간다.

아, 커피물을 깜박했네.

가스렌지 위에 가 보니 가스불이 꺼져 있다. 아직 불을 안 켰군.

하면서 무심결 잡은 차주전자의 뚜껑이 너무나 뜨겁다. 손을 데인다.

대체 누가 불을 끈 것일까.

주위를 휘휘 둘러보니 남편과 아이들은 너무나 잘 자고 있다. 대체 누가 불을 끈 것일까. 내가 불을 껐다면 왜 커피를 타지 않았을까. 기억 속을 더듬어보니 가스렌지 위에 커피 물을 올린 장면은 기억나나 그 다음은 없다. 언제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서 불을 껐을까.

언젠가 커피 한 잔을 타고 뒤돌아보니 식탁 위에 또 한 잔의 커피가 놓여져 있다. 똑같은 컵에, 똑같은 숟가락의 두 잔의 커피, 게다가 똑같은 뜨거움. 조금전에 한 일을 몇 초안에 잊어버리는 이 중증의 건망증.

잠시 잠이 깬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그가 잠결에 공포스럽다라고 한다. 왜? 이런 엄마에게 아이들의 안전을 맡기고 있어서란다. 가끔 나도 이런 나를 보면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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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모니터 옆에 큼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빨간 표지의 책이 있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비기닝 자바 1.4 에디션'을 펼쳐 보지 못한지 한 달이 넘었다. 공부한 분량이 1/3이 넘었을까.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느껴지는 압도적인 무게감에 질렸고 내용의 상세함에 감탄했다. 저 책을 정복하리라 마음 먹고 한 달은 부지런히 보고 코딩하였는데, 이제는 두 손을 놓고 있다.

한달전부터 새로 시작한 일도 있고, 아이가 자라면서 낮잠 시간이 줄어 여유도 없고,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 병원일도 집안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자바 쪽으로 손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프로그래밍에 어떤 기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공계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것은 엑셀의 함수를 다루거나 Html 태그를 다루는 정도다. 사실은 몇 년 전에 초보자용 비주얼 베이직 책 한권 사서 보았는데, 그 책이 너무 쉽고 재미있어서 프로그래밍을 아주 쉽고 만만한 걸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비주얼 베이직 프로그래밍 툴은 몇 십만원이나 하였기에 그만두었다. c도 상용 툴은 너무나 고가라서 배울 엄두도 내지 못햇다. 

비록 처음에는 자바 스크립트와 자바를 혼동하긴 했지만 자바는 프로그래밍 언어도 무료고 상용 툴도 무료라서 배우는데 돈이 좀 적게 든다. 한동안 자바 코딩을 하면서 끙끙거리면서도 참 재미있었다. 영어로 몇 마디 쳤을 뿐인데 컴퓨터 모니터에 "Hello!"하고 뜨는 게 신기한 장난감을 얻은 듯 하다.

두어달 전에 제대로 된 프로그래머가 되어 보려고 '생각한 프로그래밍' 이란 책을 산 게 화근이었다. 제어문을 배우면서 알고리즘에 관심이 생겨 비전문가용 프로그래밍에 관한 수필이라고 구입했는데... 왠걸 너무 어려웠다. 그 책을 본 사람들은 모두 좋은 책이라고 극찬을 마지 않는데, 나는 어찌된걸까 도저히 앞 1장을 이해할 수가 없는거였다. 뉴스위크지가 '비전문가'를 위한 책이라고 했는데, 대체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비전문가'도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그때 프로그래밍 세계의 높고 험난한 봉우리가 솓아 오르고 내 등을 캄캄절벽으로 떠미는 듯했다. 그때의 황량함이란. 반경 몇 킬로미터에 바람 휘휘 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때부터 자바에 대한 끓어오르던 나의 열정은 차츰 차츰 식어가고 '자바1.4 에디션'을 들쳐보지 않은지 한달이 넘었다. 그래도 난 책상 위를 차지하는 저 빨간 표지의 책을 못 치우고 있다.

며칠전 남편이 '아직도 자바 잡~아 하고 있어?'하고 묻는다. 그는 늘 그 빨간책의 두께를 신기해 한다. '아니, 조금 쉬고 있어. 어차피 일본어나 어떤 언어를 하나 배우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컴퓨터 언어도 좋은 것 같아. 또 두뇌를 논리적으로 만드는 덴 이만한 공부가 없어.'하고 이리저리 자바 공부의 경제성과 효율성에 대해서 늘어놓는다.

하지만 살다보면 '운명','숙명'라는 거창한 단어를 갖다 붙이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내겐 프로그래밍이다. 비주얼 베이직을 배우면서 아쉬웠던 그 감정은 아직도 내 안에 있다. 서른살이 넘어 지금까지 보고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사랑하고, 알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내게 있다. 그것이 비합리적인듯 어떻든. 나는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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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갈림길에서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체셔 고양이를 발견하자 그 고양이에게 '어느 길로 가야 할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는 '어디로 갈 건데?'라고 되물었죠. '모르겠어'라고 앨리스가 대답하자 체셔 고양이는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없어'라고 대답합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란 책을 읽으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인용이 되어있다. 문득 이 대목을 읽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 앨리스를 처음 보고 참 재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체셔 고양이와 대화는 영어 단어를 이용한 까다로운 말놀이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약간 비웃는 듯한 체셔 고양이의 기묘한 웃음. 얼굴은 사라졌는데, 입은 아직도 웃고 있다는 설정, '매번 목을 쳐라'라는 카드 여왕 등 기묘한 인물 투성이의 책이었다. 상당히 공포스럽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도 발상은 재미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에 와선 줄거리가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이웃집 앨리스' 노래가 더 친근하고 검은 머리의 소박한 앨리스가 여주인공인 '나의 지구를 지켜줘'란 일본만화가 훨씬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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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 잦은 편이라 책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있는 책들도 종이 박스에 아직 풀지 않은 채, 또는 침대 머리맡에 몇 권 놓여져 있을 따름입니다. 간혹 생각이 나서 책을 꺼내 보면 먼지와 색깔이 다른 털뭉치가 엉켜 있지요. 요즘은 책 박스 위를 우리집 고양이가 낮잠 자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답니다.

한 때는 멋진 서재를 꿈꾸었으나 지금은 읽었던 책의 이름조차 가물가물 흐려져 갑니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내가 읽었던 책의 온기를 기억하려고 서평을 쓰고 있답니다. 또한 미래의 나를 위하여 보았던 책의 이름을 기억하고자 서평을 적고 있답니다.

책을 구입할 때는 컴퓨터, 재테크, 그림책 같은 실용서 위주로, 조금 머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만화책을 즐겨 읽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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