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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범벅 장수 ㅣ 옛날옛적에 4
한병호 그림, 이상교 글 / 국민서관 / 2005년 5월
평점 :
아, 촉감 좋다. 처음 책을 만졌을 때, 손끝으로 느껴지는 무언가 있다. 그걸 책의 체온이라 말해야 할까. 어떤 책은 서늘하고 시원함으로, 어떤 책은 날렵하고 매끄러움으로, 또 어떤 책은 날카롭고 매서워서, 결국 종이 날에 손끝이 베이고 만다. ‘도깨비와 범벅장수’는 표지를 손으로 쓸어 내리며, 약간 거친 듯한, 한지의 질감, 그러기에 따뜻하고 예스럽다.
한 손으로 가볍게 쥘 수 있는 그림책. 그 속에는 옛날 이야기 한 편이 담겨 있다. 어느 날 가난한 범벅장수가 도깨비에게 호박범벅을 팔고, 항아리에 금돈 은돈을 가득 채워 부자가 되었다는, 그 범벅이 너무 맛있어 도깨비들이 범벅장수에게 조르러 온다는 이야기였다.
한글아, 너 참 아름답구나. 읽으면서 또 감탄한다. 이 책은 일반적인 가로쓰기가 아니라 세로쓰기로 적혀 있다. 그래서 오른쪽에서 먼저 펼쳐 보아야 한다. 눈이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선 글자들을 따라가게 된다. 처음에는 서툴게 쫓아 가지만 곧 익숙해진다. 모음이 기둥이 되어 단정하게 늘어선 한글의 글자체가 참 곱다. 예사롭지 않다.
말은 어떠한가. 소리 내어 읽기 좋게 이야기의 가락과 말투를 살려, 거슬림 없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림도 역시, 수묵으로 그려진 듯한 도깨비와 호랑이의 얼굴 선이 전통 민화가 연상된다. 범벅을 팔지 못해 쓸쓸히 돌아가는 범벅장수의 얼굴은 둥글고 선한 신라의 눈매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림도 글도 자연스럽게 녹아 옛이야기답게 만든 정성이 돋보인다.
한 가지 아쉽다면, 우리 두 아이의 반응이었다. 도깨비보다 공룡이 더 흥미로운 걸까, 가족의 끼니를 걱정하며 어둑어둑한 밤길을 넘는 범벅장수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걸까. 엄마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범벅이란 음식이 낯선 걸까. 흥미가 그때그때 다르고 하루가 다르게 마음과 생각이 크는 7살, 5살… 한 일이년 전쯤, 큰 애가 옛날 이야기에 맛이 들 때, 이 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요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