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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간, 쓸개 다 빼주고 자식에게 버림 받는 부모의 안타까운 이야기일 줄이야.
사람 사는 모습, 어느 시절 어느 나라나 매한가지이겠지만 고전 <고리오 영감>이 그런 이야기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고통 속에 죽어가며 절규하는 고리오 영감의 한서린 원망은 이기적이고 철없는 딸 자식들에 대한 원망이며 동시에 자책이었다.
귀한 자식 거칠게 키우라는(대강 그런 옛말이 있지요?) 말을 고리오 영감을 통해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귀하다고 오냐오냐 버릇없이 키워봐야 고마움 모르는 게 자식이라지, 그걸 몰라서 세상 부모들이 부질없는 사랑을 쏟는 게 아닐 것이다.
사랑은 계획하고 통제해서 나눠주고 베푸는 그런 것이 아니니까...
어리석은 고리오 영감은 평생 모은 전재산을 딸들에게 나눠주고 스스로는 허름한 여인숙에서 쓸쓸히 살아가는데 그 처량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인지라, 작가는 이야기 서두에 고리오 영감이 묵는 여인숙에 대해 장황하게도 얼마나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곳인지를 설명하는데 많은 공력을 들이고 있다. 그 장황한 서문 때문에 처음 책 읽기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고리오 영감의 자식애는 유별난 데가 없지 않지만 세상 어버이들, 고리오 영감과 대동소이한 마음일 테고 사랑도 욕심인지라 잘못된 자식 사랑은 결국 자식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정은 다소 식상하기도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반전 하나가 충격이었는데 자식애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가항력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희곡조의 대사와 석연찮은 전개는 소설을 읽는 데 많은 어려움이었다. 예를 들어 으젠은 야심에 불타는 젋은 학생이었는데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면모의 인간이 되었고 (내가 제대로 못 읽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악명 높은 악당이 으젠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도 나는 알 수 없었음이다.
관심있게 읽은 내용은 의로운(?) 청년 으젠의 정서, 그것이었다
고리오 영감의 바보 같은 헌신적 자식애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과정. 지고지순한 부성에 대한 일말의 경외감, 배은망덕한 딸들의 이기적 행태에 대한 분개... 등등.
내 주변에도 고리오 영감이 있다. 고리오 영감의 자식들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책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지만 나도 제 어미의 살을 파먹는 거미 새끼마냥 살아왔는지 되돌아 생각해 볼일이다.
자식교육방법에 자신없는 부모, 본 적이 없는데 나 역시 나름의 방식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들 최선을 다해 형편과 가정문화에 맞춰 좋은 교육을 하고 있겠지만, 그 교욱이란 게 과연 최선일지, 자신의 교육관이 자신할 만한 것인지, 고집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고리오 영감이 지나친 사랑도 사랑은 사랑이었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