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난 김에 해태 이야기 하나 더. 

야구장을 친구들과 다니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 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야구장이 너무 가고싶은 관계로 친구들 꼬시기 작전에 들어갔으나 호응이 없었던 몇 일.. 
혼자 가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었고(중 3 때부터 혼자도 갔음) 
초등학교 동창들을 수소문해서 야구장엘 갔다. 
방ㅅㅇ과 정ㅈㅅ 

나 못지 않게 야구를 좋아했던 친구들이지만 역시 둘 다 해태 팬. 
오비 베어스 삼색 모자를 꾹 눌러쓰고 해태 팬 둘을 데리고 가는 길은 뭔가 불안했고.나는 꼬시기에 바빠 묻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나 : 오늘 어디에 앉을꺼야?
정.방: 해태응원석
나 :오비응원도 재밌는데... 내가 김밥 사줄게~ 
정.방:...... 그럼 반 씩 보자.
나 :아! 그래~~ 

그렇게 앉게 된 3루 원정 은원석은 당연히 해태 팬들로 가득 했고 우리는 치어리더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정.방:야 모자 벗어....
나 :싫어... 5회 끝나고 꼭 가야 돼~~  
정.방:....... 

적지 한가운데 앉아서 응원은 못하지만 모자는 자존심이었다. 게다가 원정팀 응원하는 자식들인 주제에 오비를 먼저 응원하고 해태로 와야지 해태를 응원하다가 오비쪽으로 넘어가자고 한 것도 기분이 나쁘고해서 나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일요일 낮 경기, 경기 시작 전. 
땡 볕에 팩소주를 빠시던 아저씨 한 분이 웃으시며 '모자 벗어 여기 무서운 사람 있어~' 하며 겁줄때만  해도 좀 무섭기는 했지만...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 오기가 생겨서 정말 벗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웅성이는 응원석. 응원단상엔 어떤 아주머님 한 분이 길~다란 작대기를 들고 당당히 서 계셨고 아주머니는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춤을 추기 시작하셨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내 모자를 발견 하셨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시더니 그 작대기로 머리를 때리셨는데ㅠㅠ.... 
사람들의 웃음소리, 환호소리는 내 머리를 때리자 극에 달했다.

웃음꺼리가 되서 챙피했지만 머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사람들도 즐거워할 뿐 작대기로 맞은 후엔 겁도 안났다. 뒤에 앉은 팩소주 아저시는 소주도 주고 오징어도 주고 ㅋㅋ
난생 처음하는 해태 응원은 오비의 응원과는 또 달랐고 해태 팬들은 오비 팬들만큼 열광적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분은 해태 아줌마라고 해태의 명물이었다. 그 후 몇년 뒤 9시 뉴스에서 그 아줌마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응원을 하시다 옷을 벗으셨다는 뉴스였다. 결과는 야구장 영구 출입금지. 그 아줌마가 정신이 이상하긴 했구나~~ 한대 맞았지만 그래도 나 그 아줌마 재밌고 좋았는데...

다시 야구장.
방과 정은 야구응원에 빠져 끝내 날 배신했다. 
5회에도 6회에도 7회에도 그 친구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때까지 스코어는 2:0 해태의 리드.
8회 말. 결국 나는 혼자 오비 응원석으로 가서 통로에 서서 응원을 했고 9회말 통쾌한 역전승을 했다. 
ㅎㅎㅎㅎㅎ
 

어제는 두산이 졌다. 어제처럼 재밌게 게임하면 져도 좋다. 이종욱의 안타 한방이면 동점 역전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좀 아쉽지만 그래도 재밌는 야구 보여준 두 팀 모두 응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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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0-10-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님도 해태아줌마를 아시는군요.그분 유명하시죠.ㅎㅎ
얼마전에 언뜻 신문기사가 나온거 같은데..
응원단장보다 더 관중들이 즐거워하시죠.

어제는 정말 넘 아쉬웠어요. 이길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차좋아 2010-10-08 18:45   좋아요 0 | URL
어제 동생이랑 9회초 6대 5스코어 1아웃 주자 2.3루 이종욱의 타석에서 내기를 했어요. 동생이 먼저 두산 고르길래 저는 당연히 삼성.
야구는 졋지만 내기는 이긴 하루 ㅋㅋㅋ
아 그래도 아쉬워요~~

양철나무꾼 2010-10-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두산이 졌다. 어제처럼 재밌게 게임하면 져도 좋다.2.

해태 아줌마 아직도 야구장에 출동하세요.
요즘은 그전처럼은 아니고,
가끔 가다 필 충만하시면 한번씩 올라가시더라구요.
그럼 과거사야 어찌 되었건,
예우차원에서 기꺼이 그분의 응원에 동참하게 되구요.

차좋아 2010-10-08 18:47   좋아요 0 | URL
정말요?그때 뉴스에서 영구 출입금지 처분했다고들었거든요.
아줌마 이제 할머니겠다...
이제는 가끔 올라가셔야해요 할머니 힘들어요 ㅎㅎ


토깽이민정 2010-10-09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나에게는 어렸을 때 야구를 즐겼던 기억이 거의 없어서
삼미슈퍼스타즈 읽으면서 그게 허구처럼 보였는데
오비 모자에서부터 빵 터졌다.

여기 야구장 구경갔더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것이
손잡고 자기가 응원하는 팀 구경오신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들이었어.
우리나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특히 할머니) 야구장에 별로 없으신건, 그분들 젊은 시절에 야구장이나 야구팀은 커녕 취미가 뭔지도 모르고 사셨던 분들이 대부분일테니 말이야.

그런데, 야구장에 그런 분도 계셨었구나. ㅎㅎㅎ

차좋아 2010-10-09 14:37   좋아요 0 | URL
삼미의 야구이야기 생각만 해도 웃긴다.
나는 공감하면서 읽었었는데ㅎ
1루 수비하는 신경식의 폼에 대한 묘사도 거기있지..ㅋㅋ

오비 모자 하나 살까? ㅋㅋㅋㅋ

미국야구장은 얼마나 좋으냐~~~ 우리나라 야구장은 인천 빼고는 다 엉망.
참. 너 좋아하는 삼미의 후신이 지금 SK 와이번즈야. 지금 엄청 잘해~~~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