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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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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주의 실현을 당면과제로 투쟁하는 사회에서 태어났고(인류사 전체와 비교해 볼 때 더욱 그렇다) 또 그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인간은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에 걸림이 있을 때는 투쟁하여 쟁취한다.

나는 1979년에 태어났다.
그 해에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정권을 만들고 같은 해 10월 26일 김재규에게 저격을 받아 사망하며 해가 가기 전에 전두환의 12. 12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어리다, 라고 말하기에도 너무 작은 나는 그렇게  이 땅의 변혁기에 났고 서울에 터를 잡은 어느 신혼부부 품에서 변화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자랐다.  
그 땐 미처 몰랐지만 나는 민주주의의 성장의 과정 속에 살았던 것이다. 하긴 어느 시대를 살았어도 그 시대의 투쟁 속에 성장했겠지만 중요한 건 어린시절 내 시각과 후각의 기억은 너무나 평온했다는 데 있다. 유신헌법의 품에서 잉태되고 태어났지만 그 품은 따뜻했고, 군사 투테타 정권의 물과 공기를 마시며 유년기를 보냈지만 그 변화의 바람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 시절이 어떠했건 간에 내 기억엔 소중한 어린 추억의 시간들일 뿐이란 말이다. 
 
1986년 데모하는 개방대(서울 산업대)학생들이 무장전경들에게 피 흘리며 쫓기던 모습을 세탁소(우리 집) 안에서 지켜보던 일은 유년의 별난 구경으로 기억될 뿐이고, 1993년 광운대 학생들이 투척한 안터진 화염병을 가지고 놀다 손가락 두 개를 잃은 친구를 닌자거북이라며 놀리던 중학시절의 사고는 지금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술안주로 삼는 단골 메뉴일 뿐이다.  
최루탄 매케한 냄새와 대학생들의 시위. 그리고 그 속에 살면서도 아무런 자각도 못하고 천진하게 성장한 나. 어른이 돼서 공부했고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듣게 되었지만, 내가 겪고 들은 모든것은 너무도 당연했던 어린시절의 일상의 풍경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아름다운 시절. 추억어린 유년기. 타인의 고통
나는 내 자리에서 내 눈과 내 감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냄새를 맡으며 세상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만진 것을 믿는다.
내가 본 것은 평온한 세상 속 거친 학생들이었고, 따스한 일상의 날카로운 화염병 조각이었으며, 무료한 일상속 볼만한 구경이였다.
언젠가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드러나는 진실들, 어린 내가 보지 못한 시위 이면의 눈물...... 내가 아는 사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실을 아는 순간 평온했던 나의 과거는 내게도 시련의 시기가 되었고 자랑스러웠던 대통령은 독재자가 되었다. 친구들과 5.18에 대해 이야기 했고 분개했다. 그렇게 나는 한 걸음도 옯기지 않은 채 시선의 방향만 돌리고 독재자가 나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의식의 전향은 너무나 쉬었지만 그게 옳은 거니까. 나는 많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진실을 알았다.(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진실을 알게 된 나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 보았는가? 非민주행태 그 어떤 것에 하나라도 거스르려 한 적이 있는가?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다.>를 읽었다.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다시' 말하고자 하는 시점에 나는 10년 전, 20년 전과 다름없이 많은 이들이 바라보는 쪽에 같이 서 있는 것뿐이었다.. 요즘에는 진보가 상식이니 한나라당을 바라보며 조소하고, 위험이 오나 안 오나 관망하는 나는 사람이라기보다 몽구스였다. 
맞다 나는 몽구스다.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들은 몽구스. 어쩌면 그간 스스로 사람이라고 착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뭐가 됐던간에 -민주주의 특강-을 읽고 나는 진짜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을 해본다.
'네 자식도 몽구스처럼 살게 할래?' 내 안이, 인간성이 내게 묻는다. 하지만 몽구스의 삶도 나쁘지 만은 않았기에 섣부른 판단은 할 수가 없다.

나는 투쟁의 결과물인 시대에 살고 있고 지금도 곳곳에서 투쟁은 진행중이다. 어려서 그것이 풍경이었듯 지금도 풍경이라는 사실이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어렸을 때처럼 의미를 몰랐으면 좋겠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자기가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싫다. 그리고 옳은 걸 아는 모든 사람이 부러울 뿐이다.
이 책에 소개된 진보 지식인들의 강연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닌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일어나는 강연도 있었다.
나 때문일 것이다. 동의하면서 가만히 지켜보는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바라보는 나는 내가 아니다.

책 속 강연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의 의미를 얘기했지만 모두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했다.  각자의 프리즘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나는 각 강연자의 전공과 입장을 충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말에 진정성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모르겠다. 다만 부러울 뿐이다. 그들의 확고한 신념과 생각이 말이 행동이 같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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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6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26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우 2010-06-26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향편님의 느낌 같이 느낍니다. 향편님의 생각 같이 생각합니다.
이 시대, 향편님은 나와 생물학적 동류입니다.
이념이 진실일리는 없고, 진실이 논리일수는 없고..운운.

차좋아 2010-06-26 21:55   좋아요 0 | URL
정말요?!! 사실 매번 확실치 않은 언사에(스스로 말입니다)
자책하고 마음 생각 공유하는 이 없음에 쓸쓸해 했었거든요.
^^& 부끄럽고 기분좋아요 ㅎㅎ

매번 마음 담은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우선하는건 제 맘 같이 제 글을 읽어주시는거고요. 참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