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비 정성왕후가 죽자,
새 왕후를 맞기 위한 간택행사가 열렸다.
영조는 친히 간택하는 자리에 나와
후보 규수들을 둘러 보았다.
그런데 다른 규수들은 모두 정해진 방석 위에 앉아있는데
유독 한 사람 김한구의 딸만은 방석을 앞으로 밀어놓고
맨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한 영조가 그 까닭을 묻자,
그 규수가 대답을 했다.
"아버지의 존함이 방석 위에 씌어 있는데,
자식으로써 어찌 그걸 깔고 앉을 수 있겠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방석의 모서리마다
후보 규수의 아버지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영조가 규수들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깊은 것이 무엇인고?"
후보 규수들은 저마다 산이니 물이니 제각기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그 물음은 김한구의 딸에게도 돌아갔다.
"이 세상에서 제일 깊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산이나 물은 아무리 깊어도 능히 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도저히 잴 수 없으니
어찌 깊다하지 않겠습니까?"
영조는 내심 감탄해 마지 않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이 무엇인가?"
이번에도 규수들은 봉선화나 모란, 해당화 등의
여러 가지 꽃 이름을 대었는데
김한구의 딸은 목화꽃이라고 대답했다.
영조가 왜 그러냐고 묻자,
"다른 꽃은 잠시 아름답다가 사라지지만,
목화꽃은 옷이 되어 뭇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니
가장 아름답다 하겠습니다."
영조는 김한구의 딸에게 마음이 점점 더 끌렸다.
마지막으로 영조는 한가지 질문을 더 했다.
"이 전각의 기와는 모두 몇 줄인가?"
다른 규수들은 목을 길게 뽑아 추녀를 쳐다보며
기왓골을 세느라 정신이 없는데
김한구의 딸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정조가 다 세었냐고 묻자,
김한구의 딸은 다 세었다고 하면서 짧게 대답을 하는데
기와의 골수를 정확히 맞추는 것이다.
영조는 너무도 신기해서 물었다.
"아니 너는 어떻게 기와 골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리 정확히 맞출 수 있단 말이냐?"
"예, 마침 비가 온 뒤라 추녀에서 떨어진
낙수자리를 세어 보았습니다."
그 말에 영조는 속으로
'참으로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이구나'
감탄에 감탄을 하고서
결국 이 규수를 왕비로 맞이했다고 한다.